코로나19, 'MMT(현대통화이론)'의 손 들어준 걸까

2022-02-09 12:25:17 게재

NYT "팬데믹 동안 성공적 실험 … 인플레이션 급등에 MMT 또 다른 실험대"

뉴욕 스토니브룩대 경제학 교수인 스테파니 켈튼은 '현대통화이론'(MMT)과 관련된 가장 친숙한 대중적 인물이다. MMT는 한 나라가 자국통화를 발행할 힘을 갖는다면,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위기 때에 실직에 내몰린 국민에 도움을 주기 위해 조폐기를 돌려 돈을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한 경제이론이다. 물론 그 나라 경제가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양산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MMT 관점에서 '돈을 찍어내는 데 얼마의 이자를 지불해야 할 것인가'는 부차적인 문제다. MMT는 의회가 얼마나 많은 돈을 쓸 수 있고 써야 하는지는 현실세계의 자원량과 정치적 우선순위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스테파니 켈튼 교수 사진출처:stephaniekelton.com

켈튼은 2020년 6월 '적자라는 미신'(The Deficit Myth)을 출간했다(우리나라에선 2021년 2월 '적자의 본질'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지난 수십년 동안 약세였다. 미국 소비자들이 팬데믹을 맞아 움츠러들면서 물가상승률은 1% 아래로 하락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위축된 가계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급속히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켈튼이 2021년 초 블룸버그통신 팟캐스트 시리즈 'MMT는 재정정책 논쟁에서 어떻게 승리했나'에 출연했을 당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2% 안팎으로 반등했다. 지난달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7%대로 급증했다. 미 정부의 부채총액은 현재 30조달러로 폭증했다. 2008년 경제침체 시작 때는 10조달러, 1990년대 중반엔 5조달러에 불과했다.

아직까지 미 정부가 국채를 판매하는 데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이는 대규모 적자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약화시킨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현재 급격히 오르는 물가가 정부의 거대한 지출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 정부는 이번주 소비자물가지수를 발표한다. 시장에선 1982년 이래 가장 급격한 인플레이션 오름세를 확인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대해 켈튼 교수 등 MMT 옹호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들은 "미 정부의 코로나19 팬데믹 재정지출이 MMT의 원칙을 그대로 따른 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대규모 부양 지출을 계획하면서 인플레이션 유발효과를 면밀히 평가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무후무한 위기를 맞아 긴급 대응한 성격이 컸다는 지적이다. 미국 경제의 약점과 제약조건이 정확히 어느 지점이었는지, 그러한 약점을 개선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당시엔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켈튼 교수는 인플레이션에 대해 '성장통에 따른 일시적 증상'으로 진단했다. 그러다 가을이 되자 그는 지속적으로 지지부진한 경제와 비교하면 인플레이션은 상대적으로 '해결하기에 편한 문제'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상승이 지속되는 현재 그는 어떤 요소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지 정확히 진단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달 트위터를 통해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MMT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자문한 뒤 "당연히 아니다"라고 썼다.

민물과 바닷물

뉴욕타임스(NYT)는 7일 "MMT가 다른 경제학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알려면 해변으로 여행을 가는 게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경제학계엔 '민물'(freshwater)로 불리는 학파가 있다. 1970년대 내륙에 위치한 대학들에서 유행하게 된 경제사상이다. 이들은 경제침체와 싸우려면 합리적인 시장과 정부의 제한적 개입이 중요하다고 본다.

반대편엔 '바닷물'(saltwater)로 불리는 경제학파가 있다. 케인스주의의 업데이트된 버전으로,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북동부 해안의 아이비리그 대학과 서부 해안의 주요 대학이 내세운 개념이다.

NYT는 "켈튼이 대중화하고 있는 경제사상은 뉴욕만과 이스트강이 만나 합쳐지는 '민물과 바닷물이 섞인'(brackish) 경제학으로 부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MMT 이론가들은 '한 사회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원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적자지출이 꼭 경기침체 시기에 한정될 필요가 없다. 도로를 건설하길 원하는가? 건설자재인 아스팔트와 건설노동자가 있는 한 문제는 없다. 아이들에게 무료급식을 공급하길 원하는가? 이 역시 그 사회에 무료급식에 필요한 음식과 급식 노동자가 있으면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MMT가 학계에서 주목을 받은 때는 켈튼이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다. 그는 UC새크라멘토 학부를 졸업한 뒤 여군으로 입대했고, 제대한 뒤 가구 판매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로타리 장학금을 받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했다. 당시 그의 학교 경제학 교수는 L. 랜덜 레이 교수를 사사하라고 조언했다. 레이 교수는 MMT 이론의 초기 선구자였다.

레이 교수와 켈튼은 죽이 잘 맞았다. 켈튼은 레이 교수와 헤지펀드 매니저 워런 모슬러로부터 배우면서 화폐와 재정에 대한 기존의 학설이 매우 낙후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켈튼은 더뉴스쿨(The New School)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비주류 경제학의 산실로 유명한 학교였다. 학위 취득 후 레이 교수가 있던 미주리대 캔자스시티캠퍼스에서 교편을 잡았다. 레이 교수와 켈튼, 그의 동료들은 박사과정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MMT라는 새로운 경제적 사고에 대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MMT 논문을 읽고 이해한 독자들은 소규모에 그쳤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미국 경제가 침체되고 이를 회복하는 데 10여년 넘는 시간이 걸리면서, 켈튼과 동료들은 MMT를 다시 한번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새로운 경제적 관점'(New Economic Perspectives)이라는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적극적인 활동에 나섰다.

현실세계에 던져진 이론적 의문

MMT 이론은 일부 열광적인 추종자를 낳았다. 하지만 일각의 노골적인 조소도 받았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MMT 이론이 과도하게 단순화했다며 혹평했다. 많은 사람들은 MMT가 무엇을 주장하는지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워 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2019년 "MMT라는 상당히 극단적인 주장을 들은 바 있다. 그 이론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른다"며 "하지만 자국통화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국가에선 적자가 중요치 않다는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켈튼은 MMT가 옳다는 신념을 꺾지 않았다. 그와 동료들은 각종 컨퍼런스를 개최해 새로운 이론을 알렸다. 2018년 더뉴스쿨에서 개최된 컨퍼런스에서 켈튼은 'MMT의 주류화'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당시 컨퍼런스는 미국 윌라멋대 로스쿨 조교수인 로한 그레이가 조직했다. 행사 뒤 한 술집에서 열린 미디어 리셉션엔 주최측과 학계 일반인 언론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리셉션은 새벽 1시까지 이어질 정도로 성황이었다. 켈튼이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그를 감쌌다. 그레이 조교수는 "켈튼은 당시에 이미 대단히 유명한 인사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켈튼은 MMT를 설명하면서 마하트마 간디의 유명한 말을 종종 인용했다. "우선 사람들은 당신을 무시할 것이고, 그 다음엔 당신을 비웃을 것이고, 다음엔 당신과 싸울 것이다. 그리고 나면 당신은 이길 것이다."(First they ignore you, then they laugh at you, then they fight you, then you win)

켈튼 교수는 2016년, 2020년 버니 샌더스의 대선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더욱 빛나는 MMT 부문의 스타가 됐다. 샌더스는 공개적으로 MMT를 지지한 바는 없다. 하지만 그가 공약한 '국가단일 건강보험 제도'(Medicare for All)와 같은 정책들은 사실상 MMT 이론을 반영한 것이었다.

켈튼은 수십만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가진 유명인이다. 게다가 MMT에 흥미를 느끼는 저명한 언론인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쌓았다. 대표적인 기자는 블룸버그 디지털뉴스 편집장인 조 와이젠털이다. 또 민주당 의원들과는 정기적으로 회합하고 있다.

켈튼의 MMT 개념은 워싱턴 주류 언론과 자유주의적 정책집단에도 영향을 미쳤다. '거대한 부채 부담이 일본의 사례처럼 국가경제 전체를 위협할 것'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예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적지근한 경제회복이 미국 사회에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는 주장이 큰 공감대를 얻었다. 위기 대응에 나선 정부의 부양책 규모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나서 갑작스레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다. 정부가 위기를 맞아 얼마나 많이 지출할 수 있느냐는 이론적 의문이 실제세계를 대상으로 한 초유의 실험을 맞았다.

"인플레이션에 해법 없어" 비판 직면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2020년 3월 말 2조3000억달러 코로나19 부양패키지를 마련했다. 같은 해 12월 또 다른 9000억달러를 추가했다. 뒤를 이은 조 바이든 정부도 2021년 초 취임 직후 즉각 1조9000억달러 부양책을 내놨다.

트럼프, 바이든 두 행정부가 MMT에 영감을 받은 건 아니었다. 주요 권력층에서 MMT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다. 그보다는 재정건전성이라는 명제의 정치적 위력이 더 셌다. NYT는 "하지만 두 행정부의 부양책은 사실상 MMT의 논리를 인정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MMT 옹호자들은 쾌재를 불렀다. 켈튼은 첫번째 부양책이 의회를 통과하던 2020년 3월 트위터에 "적자라는 미신을 죽이기 위해 바이러스가 필요했다"고 썼다. 그는 2021년 초에도 정부가 대규모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를 부양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그는 1조9000억달러는 부양책 협상에서 최소한도일 뿐 최대한도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버드대 경제학자로 재무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는 정부의 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것이라고, 미국 경제가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부양책 규모가 더 크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켈튼은 트위터에 '저리 가라'(take a hike)며 비난했다. 결국 1조9000억달러 규모 부양책은 의회를 통과했다.

이후 상황은 켈튼과 그 동료들이 옳은 것처럼 보였다. 미국 경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빠르게 반등했다. 재정적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경고하던 악몽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국채금리는 극도로 낮은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달라졌다. 인플레이션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켈튼과 동료들의 입장은 '팬데믹 부양 정책이 MMT의 핵심 교리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 즉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미국의 생산력을 사전에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MMT 측 입장에서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예상가능한 인플레이션을 사전에 정밀하게 분석해야 했고, 의회는 이용가능한 노동력과 장비, 원자재를 파악해 부족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노력했어야 했다. 예를 들면 세금인상이나 공급망 안정화 조치들이다.

하지만 2021년 상황이 보여주듯, 미국 경제는 거대하고 복잡하다.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주류 경제학계나 MMT 경제학계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2021년 3월 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집에 틀어박혔던 소비자들은 넘쳐나는 현금을 주체할 수 없었다. 과거에 비해 상품에 많은 돈을 소비했다. 그리고 상품 대신 서비스로 복귀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는 공급망을 뒤흔들었고, 자동차와 가구 등 상품 가격을 밀어올렸다. 결국 인플레이션 급등을 촉발했다.

켈튼은 지난해 3월 1조9000억달러 부양책을 적극 지지했다. 그리고 지금도 당시 부양책이 필요했다며 지지하는 입장이다. 현재 그의 관심은 인플레이션 중 부양책에 따라 촉발된 물가상승이 어느 정도냐는 것에 쏠려 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보다 더 나쁜 건 지지부진한 경제회복이라고 강조한다.

MMT 이론에서 중앙은행인 연준은 경제 관리의 모든 것에 손을 대는 존재여선 안된다. MMT 옹호자들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투자를 약화시킨다며 공장이나 화물선박이 충분치 않은 미국 상황에서 투자를 줄이는 금리인상이 미국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이냐고 지적한다.

문제는 연준의 해법에 대한 대안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항만 운영 시간을 연장하고, 전략비축유를 풀고, 기업의 바가지 요금을 경고하는 등을 통해 정부 차원의 물가잡기를 시도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이 아닌, 변죽을 울린다는 평가다.

켈튼을 비롯한 MMT 경제학자들은 국가단일 건강보험 제도 도입과 국방부 예산 삭감, 일부 관세 폐지 등을 제시한다. 하지만 켈튼 교수 본인이 인정하듯, 이 가운데 말처럼 쉬운 해법은 없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제이슨 퍼먼은 "MMT는 여전히 비주류"라며 "정책집행자들과 저명한 학계인사들은 MMT를 무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MMT 옹호자들은 연준의 역할을 묵살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막을지에 대해 실행가능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 MMT 이론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 또 다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도 MMT에 불리한 바람이 불고 있다.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부활했기 때문. 바이든 행정부의 포괄적인 정책 어젠다가 대통령 소속당인 민주당의 조 맨친 상원의원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맨친 의원은 "정부부채와 인플레이션 급등이 큰 우려를 낳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MMT 지지자들의 입장은 여전하다. 레이 교수는 "우리는 지적 토론에서 이겼다. 우리의 이론에 결함은 없다"고 말했다.

?켈튼 교수 역시 최근 '인플레이션과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라는 온라인 게시글에서 "시대가 기이하고 공급망은 제한적이다. 수십년 기업 합병의 역사 속에서 경제가 악화됐다"며 "MMT에 기반한 재정정책이었다면 세금인상이나 기타 물가 안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MMT 실험은 실패했는가'라고 자문한 뒤 "결단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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