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으로 새길 여는 중소·벤처기업│① 여의시스템

'투명경영·성과급제' 도입하니 직원이 경영주체로 우뚝

2022-02-16 10:58:13 게재

18년전부터 시행, 적자 낸 적 없어 … 코로나 대유행에도 성장세 지속

가족에게 닥친 죽음의 문턱도 넘어 … 스마트팩토리 전문기업으로 성장

기업은 사람처럼 생로병사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닥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야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한국경제는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과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으로 무장된 기업인들이 있었기에 성장해왔다. 내일신문은 기업가정신으로 새길을 여는 중소 벤처기업 20곳을 발굴해 연재한다. 산업의 대전환 시기를 헤쳐 나가는 용기와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성남시에 위치한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 사무실 벽에는 '도전'이라는 붓글씨 액자가 걸려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액자를 보며 매일 청춘의 열정으로 '도전 DNA'를 일깨운다. 인생에서 누구보다 컸던 굴곡을 경험했기에 '도전'은 성 대표에게 삶의 행동준칙이다. 31년간 기업경영 과정에서 닥친 숱한 위기를 극복한 힘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 있다.

9일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가 성남시 본사 사무실에서 회사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의종


여의시스템은 산업용컴퓨터 분야 국내 1위 기업이다. 1991년 설립 후 지금까지 산업용컴퓨터 분야에만 집중해 온 결과다. 주요 사업군은 산업용컴퓨터 원천기술에 기반한 컨트롤러, 네트웍장비, 임베디드 모듈 등이다. 최근 스마트공장 확산으로 사물인터넷(IoT)과 접목된 산업용컨트롤러 중요성이 커지면서 여의시스템을 찾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여의시스템은 회사 설립 후 지금까지 한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금융부채가 없어 안정적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9년 316억원이던 매출은 2020년 392억원, 2021년엔 446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530억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고객 요구는 무조건 해결 = 성장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성 대표는 여의시스템 경쟁력으로 고객 요구에 맞춘 다품종 소량생산시스템을 꼽았다. 9일 회사 집무실에서 만난 성 대표는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고객의 요구에 최적화된 제품을 개발해 공급한다"며 "대기업이 진입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자신했다.

실례로 지난해 6월쯤 국내 반도체장비 업체가 성 대표를 긴급히 찾았다. 납품업체가 부품이 없어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자 성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여의시스템은 2개월만에 기존 부품을 대체할 기술을 개발해 납품에 성공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기업에서 여의시스템의 자동제어장비를 채택한 것도 이러한 기술력 때문이다.

성 대표는 일을 하는 철칙으로 '신뢰'를 꼽는다. IMF 직후 여의시스템이 6개월 가량 공장을 멈추고 있을 때였다. 한 기업에서 서브모터 컨트롤 보드 제작을 의뢰했다. 연구원들이 밤낮으로 매달렸지만 개발에 실패했다.

성 대표는 해외에서 수입해 거래처에 전달했다. 개발하면 한개당 50만원 받기로 했던 제품을 100만원씩 수입해 납품했으니 손해가 컸다. 그는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과 약속을 지킨 것이다.

◆직원은 비용이 아니다 = 성 대표의 원칙은 회사 내에서는 '투명경영'과 '직원 신뢰'로 나타난다.

2003년 여의시스템에 위기가 왔다. 국내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바람이 불었다. 발주가 급격히 줄어들자 임원들이 30% 인력 구조조정을 건의했다. 그는 자신이 뽑은 직원을 해직할 수 없었다.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자'고 결심했다.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투명경영'과 '성과급제'였다. 회사경영 상태를 직원들에게 모두 공개했다. 회사 수익을 직원들에게 분배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개인과 각 팀별 성과에 따른 성과급제를 도입했다.

직원들은 회사 경영방침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이후 기적이 일어났다. 9개월간 누적적자가 계속됐던 그해 흑자를 기록했다. 2003년 이후 5년간 매출액 2.5배, 순이익 18배라는 기적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성 대표보다 성과급을 더 많이 받은 직원이 생겼다.

성 대표는 "월급쟁이 직원을 직장 경영주체로 세우기 위해서는 '투명경영'을 통한 신뢰가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직원은 비용이 아니다. 회사 발전의 핵심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지금도 수익이 나면 25% 주주배당, 25% 직원인센티브, 나머지 50%는 재투자비용으로 사용된다. 이중 절반은 직원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회사성장의 동력인 직원들의 혁신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다.

성 대표 스스로도 공부에 열정적이다.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이노비즈협회) 회원사들이 참여하는 독서토론모임에 참석하고 3권의 책을 쓴 저자로 등극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도전 정직 공부'가 여의시스템의 사훈으로 자리잡았다.

여의시스템은 2008년 금융위기를 무난히 넘기면서 지속성장을 위해 서울 성수동에서 성남시 성남공단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굴곡과 도전의 인생 = 여의시스템의 성장과 독특한 경영시스템은 성 대표가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며 얻은 깨달음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중고등학교 때 라디오를 좋아해 분해하고 조립하며 5년을 보냈다. 성적은 바닥을 맴돌았다. 고교 3학년 들어와 정신을 차렸다. 대학에 들어가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1년간 악착같이 공부해 연세대 전자공학과에 합격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연구개발을 하고 싶어 한달만에 퇴사했다. 방위산업체 연구원으로 들어가 제어장치 연구개발을 담당했다. 이 시기가 인생의 전환점이다. 미국 출장을 다녀온 친구를 통해 애플 8비트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컴퓨터와 제어장치를 결합한 자동제어에 관심을 가졌다.

관심은 창업으로 이어졌다. 당장 개발할 자금이 없어 컴퓨터를 조립하고 수리하며 준비했다. 기회가 왔다. 대전 대덕연구단지 쪽에서 시험장비 개발 의뢰가 들어왔다. 자동차 시트 내구성 시험장비와 조향장치 자동제어장비였다. 개발해 납품했다. 10개월 만에 여의도에 있는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청천병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3개월된 아들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아내도 충격과 과로로 인해 뱃속의 둘째 아이를 유산하고 말았다. 2주일에 1000만원씩 들어가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아파트를 처분했다.

또다시 아내에게 폐결핵이 왔다. 생존확률은 많아야 10%. 당시 아내 나이 스물일곱, 그는 서른살이었다. 성 대표는 이 상황을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혼신을 다했다. 다행히 아내와 아이 건강이 호전됐다.

이번에는 위암이 그를 덮쳤다. 위의 절반을 도려냈다. 행운이었을까. 30년이 지난 지금 완쾌된 아들은 손주를 안겨줬다. 아내와 성 대표 역시 병을 완전히 이겨냈다. 죽음의 위기를 이겨낸 그는 작은 것에 감사하고 나누며 살고 있다.

◆젊은 경영진 준비 착수 = 성 대표와 여의시스템은 올해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터치스크린 형태의 HMI패널컴퓨터, 스마트 IoT, 무인자동화 분야를 강화한다. 특히 젊은 경영진을 준비하기 위해 회사 내에 직원들로 구성된 '젊은 미래혁신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를 기반으로 10년 후에는 경영진을 젊은층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회사도 자동제어에서 스마트팩토리 전문기업으로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기술벤처 1세대로 꼽히는 성 회장은 기술혁신기업의 '맏형'이기도 하다. 2013년 이노비즈협회 6대 회장에 당선됐고, 8대 회장도 역임했다. 2019년에는 성남지역 기업인 추천으로 성남산업단지관리공단 17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스마트공장'이란 비전을 앞세워 성남시를 첨단산업단지 메카로 탈바꿈하려고 불철주야 뛰고 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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