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노조, 일괄 임금인상 포기 … 노총, 야당 일방지지 중단

2022-02-22 11:24:23 게재

전조합원 일괄 기본급 인상에서 12개 직종별 요구안 내놔 … 올해 참의원 선거, 민주당 등과 등거리 협력 방침

일본 노동계에 변화 바람

일본 노동계가 노사교섭과 정치활동의 전통과 관례를 깨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임금인상 투쟁의 전형으로 불리는 '기본급 일괄 인상'의 획일적 방식과 민주당 등 야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 움직임을 재고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도요타, 기존 방식 춘투에서 탈피 = 일본 노동계는 매년 봄 이른바 '춘투'라는 임금협상을 벌인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대공장 기업별 노조는 이 과정에서 '기본급 인상'을 주된 과제로 삼는다. 하지만 도요타 노조를 중심으로 기본급 인상 투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도요타 노조는 올해 춘투에서 '전조합원 일괄'로 금액을 정해 요구했던 지금까지의 방식을 중단했다. 노조는 지난 16일 사무직과 생산직 등 직종과 직위에 따라 12가지 각기 다른 요구안을 회사측에 정식으로 요구했다.
요시노 토모코 일본노총(렌고) 회장이 TV 토론회에서 "민주당과 공산당의 공동투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TV도쿄 유튜브 채널


노조는 조합원의 입장과 처지를 고려해 구체적인 요구안을 제시한 것과 관련 "조합원 한사람 한사람이 당사자로서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상당수 조합원들도 자신들의 직종과 직위에 따른 세부적인 요구가 담겨있어 "보다 합당한 요구안으로 잘 정리했다"는 긍정적 반응이 다수로 전해졌다.


도요타 노조는 전통적으로 전체 조합원의 기본급을 일률적으로 인상하는 이른바 '베이스 업' 방식의 임금인상 교섭과 투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러한 방식의 요구를 했는지 자체에 대해서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상여금에 대해서는 지난해를 소폭 웃도는 기본급 6.9개월치를 요구했다고 발표했다.

아사히신문은 "올해부터 도요타 노조는 전조합원 기본급 인상의 유무도 전조합원 평균의 내용도 알수 없어 임금인상의 전체적인 내용을 외부에서 알 수 없게 됐다"면서 "전통적으로 도요타 노조가 주도했던 춘투에서의 견인차 역할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 도요타 노조의 이런 변화는 2018년 춘투를 계기로 시작됐다는 평가다. 당시 회사측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대처했다. 정규직 사원의 기본급액 공개를 중단하고, 정규직만이 아니라 기간제 종업원을 포함해 전조합원 평균의 임금인상과 액수를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기간제 종사자의 수당을 좀 더 두텁게 인상했다.

회사측이 이런 방식으로 전환한 데는 도요타 정규직 사원에 대한 임금인상이 도요타그룹 전체, 나아가서 자동차산업 및 타산별 노조의 목표나 지향이 됐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모든 직종과 직위의 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임금인상에 따른 고정비용의 증가도 부담이었다. 노조는 그 해에 이러한 회사측 요구를 수용했다. 당시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자동차산업의 상황을 언급하면서 "100년에 한번 있을 전환기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이다"라면서 경각심을 불어넣기도 했다.

도요타 노사는 이후 전세계적인 탈탄소 경영과 전기자동차의 확산 등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변화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인식에 공감했다. 춘투의 중심적인 과제가 '임금인상'에서 '경쟁력 향상'으로 큰 축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도요타의 이런 움직임에 노동계 내부에서는 불만도 있다. 도요타 노조의 상급단체인 일본노총(렌고) 간부는 "노동운동을 이끌어 가는 역할로서 도요타와 도요타그룹 노조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도요타 노조는 지나치게 내부 지향적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도요타의 이러한 흐름이 앞으로 노동운동과 노사교섭에서 더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야마다 히사시 일본총합연구소 부이사장은 "도요타 노조의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있지만 제조업의 해외이전이 빨라지고,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기존과 같은 춘투는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노사정이 합의하는 제3의 기관이 목표를 제시하는 등 임금인상의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민당에도 우호적인 노조 = 일본 노동계는 전통적으로 지금의 야당을 줄곧 지지해 왔다. 1989년 옛 사회당 계열의 '총평'과 민사당 계열의 '동맹'이 통합해 결성한 렌고는 지금까지 민주당 계열과 정책연대와 후보자 지원, 비례대표 추천 등의 정치활동을 했다.

하지만 렌고는 지난 17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올해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총선거에서 정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와 소속 후보 지원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정당보다 후보자를 보고 지원활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렌고는 이날 정치활동 기본방침을 정하면서 야당(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과의 연대를 추진하되, 당 차원의 전면적인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요시노 토모코 렌고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의원 선거는 개인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목적과 기본정책이 크게 다른 정당과 연대하고 협력하는 후보자에 대해서는 지원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렌고가 이른바 '인물중시·후보자 본위'의 기본 방침을 결정한 데는 다분히 공산당을 경계한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일본 노동계 전국조직은 조합원 699만명이 가입한 상대적으로 온건한 렌고, 조합원 55만명이 가입해 있는 공산당 계열의 '전노련'으로 양분돼 있다. 다만 그 세력의 규모에서 렌고가 사실상 전국조직으로서 대표성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정치방침도 다분히 공산당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이 공산당과 전면적인 선거연대와 후보단일화를 이뤄 공조한 것에 대한 반발이 강하다. 요시노 렌고 회장도 회견에서 "야당이 공산당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노조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면서 "공산당의 정책과 노선을 현장에서 혼란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정치활동을 둘러싼 미묘한 변화는 하급 지방조직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도요타 노조가 사실상 민주당 계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이른바 '도요타 선거구'라고 불리는 아이치현 제11선거구에서 노조의 지지를 업고 6번 당선된 민주당 후보가 출마를 포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노동계에서는 도요타 노조가 사실상 노조 일방지원 정책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특히 지난 1월 렌고가 주최한 신년인사회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총리로는 7년 만에 참석한 것을 두고도 해석이 분분하다. 노동계가 탈야당을 넘어 자민당과도 연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아사히신문은 "도요타그룹 노조연합이 지난 2020년 가을, 자민당과의 연계도 할 수 있다는 방침을 정했다"면서 "자민당 고위 관계자와 도요타그룹 노조 간부가 지난해 4월 나고야 술집에서 회동한 것을 두고 자민당 내에서는 '역사적인 회합'이라며 들떠 있다"고 전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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