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정기주총 주목할 이슈 | ②이사회 다양성 추구
여성 사외이사 영입 분주한 기업들 … 세계 꼴찌 벗어날 수 있을까
한국 여성임원 비중 4.2% … 중동국가 수준
OECD 국가평균 25.6%보다 턱없이 낮아
3월 8일은 1977년 UN이 여성의 권리 향상을 위해 공식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에야 법정기념일로 공식화했다.
2018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이사회 내 여성이사가 2명 미만인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여성임원 비중 확대는 글로벌 상장기업들의 큰 이슈가 됐다. 한국에서도 부랴부랴 여성임원 확대 방안을 마련하며 자산 2조원이 넘는 상장사들은 이사회 구성원이 전원 특정한 성별로 구성되지 않도록 규정하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여성임원 비중은 4.2% 수준으로 OECD 국가평균 25.6%보다 턱없이 낮다. 전 세계 72개국 가운데 꼴찌에서 네 번째로 중동국가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8월부터 시행되는 새 자본시장법을 앞두고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우리나라의 여성임원 현황과 올해 주주총회에서 여성 사외이사 영입 움직임을 살펴보며 이사회의 다양성 강화를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한지 알아본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원 남성으로 이사회를 꾸렸던 상장기업들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첫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할 계획이다. 이미 여성 사외이사가 있는 삼성전자에서는 첫 여성 이사회 의장이 탄생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의결권자문사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올해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여성 임원의 선임 안건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3분기 보고서 기준으로 볼 때, 총 152개 적용대상 기업 중 85개사 (55.9%)는 이사회 내 1명 이상 여성임원을 선임했다. 나머지 67개 기업은 이번 정기주총에서 여성임원을 선임안건을 상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8월 시행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제165조의20(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은 별도재무제표 상 자산총계 2조원(금융보험업은 자본총계 또는 자본금 중 큰 금액) 이상 상장기업의 이사회 구성원이 전원 특정한 성별로 구성되지 않도록 2022년까지 여성 사외이사를 무조건 1명 이상으로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내부 임원 아닌 사외이사 영입 = 금융지주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3일 이사회와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신임 사외이사에 여성이사 후보를 각각 추천했다. 신한지주 이사회는 김조설 오사카상업대학 경제학부 교수를 임기 2년의 사외이사 후보로 신규 선임 추천하고 기존 윤재원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도 재선임 추천하며 여성 사외이사가 2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금융지주는 법무법인 세종의 송수영 변호사를 임기 2년의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우리금융 이사회에 여성 사외이사 내정은 처음이다.
같은 날 BNK금융지주도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김수희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공시했다. 김 후보자는 오아시스 법무팀장·사내이사 및 부산은행 사외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임기는 2년이며, 25일 정기주총을 통해 최종 선임된다.
JB금융지주도 오는 30일 정기주총을 열고 이성엽 우리회계법인 회계사를 신규 선임건을 승인할 예정이다. DGB금융지주도 김효신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신규 선임했다. 임기는 각각 2년이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해 3월 권숙교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바 있다. KB금융지주의 경우 기존에 여성 사외이사가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달 24일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최명희 내부통제평가원 부원장과 권선주 전 IBK기업은행장을 재선임 후보로 추천한 바 있다. NH농협금융지주도 기존 2명의 여성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지난해 기존 여성 사외이사인 남유선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1년 연임됐고, 이미경 신재생에너지학회 이사·수소경제위원회 위원·환경재단 대표가 임기 2년의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한국 여성임원 비중, 중동국가보다 낮아 = 하지만 현재 한국의 여성 임원 비중은 해외 주요국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지난달 16일 세계 4대 회계법인 딜로이트가 발표한 'Women in the boardroom'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국 기업 이사회에 등록된 여성 비율은 4.2%에 불과하다. 전 세계 72개국 가운데 꼴찌에서 네 번째로 평균 19.7%를 크게 밑돈다. 특히 한국보다 수준이 낮은 국가는 카타르(1.2%), 사우디아라비아(1.7%), 쿠웨이트(4%) 등으로 성차별이 심한 중동 국가들이다. 심지어 아랍 에미리트의 경우엔 5.3%로 한국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이사회 의장 혹은 CEO로 활동하는 여성 비율은 각각 2.3%, 2.4%로 확인됐다.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리서치가 작년 11월에 발간한 2020년 보고서 기준 이사회 내 여성 이사 비율에서도 국내 상장기업의 이사회 내 여성 이사 비율은 4.9%로 OECD 국가들의 평균인 25.6%와 비교하여 5배 이상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주요 선진국인 미국(26.2%), 영국(34.3%), 프랑스(43.3%), 노르웨이(42%) 독일(25.2%)을 비롯해 같은 동아시아권인 중국(13%), 일본(10.7%)과 비교해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작년 3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에서도 2020년 한국 상장기업 이사회의 여성 이사 참여율은 OECD 29개 국가들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OECD 국가들의 상장기업 이사회 평균 여성 이사 참여율은 25.6%인데 이는 한국의 4.9%와 비교해 5배 이상 높은 수치다.
특히 국내 금융회사의 이사회 여성 이사 참여율은 약 4.1% 수준으로 해외보다는 월등히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보험연구원이 작년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은행, 증권, 보험회사에서 사외이사 총 209명 중 12명(5.7%)이 여성이며, 사내이사의 경우는 총 129명의 사내이사 중 여성 사내이사는 2명(1.6%)에 불과했다.
◆프랑스, 노르웨이 여성 사외이사 40% 이상 = 반면 글로벌 기업들은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이사회 다양성을 위해 여성 이사의 이사회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2003년 세계 최초로 여성이사 비율을 40%로 강제하는 법안을 시행했다. 이후 프랑스와 독일은 이사회에 여성할당제를 도입해 여성이 이사회에 각각 40%와 30% 이상 참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는 5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적어도 2명 또는 6명 이상의 이사회 구성원에 대해서 적어도 3명을 여성 이사로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2021년 6월 기업지배구조 코드와 투자자와 기업의 상호작용지침의 개정을 통해 이사회 다양성 확보를 위한 일환으로 이사회 내 여성과 외국인의 비중을 증가시키도록 하고 기업들이 이사회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정책과 수행상황을 공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ESG에서 G(거버넌스)에 해당하는 이사회 내 여성 이사의 증가는 이사회 구성 및 운영에서의 다양성 강화를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이사회에서 여성 이사 참여의 증가는 기존 남성 위주의 네트워킹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경영의사결정에 반영될 수 있게 해 이사회의 효율적인 경영감독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성별 다양성, 기업성과에 긍정적 = 이사회 내 성별 다양성 확보가 실제 기업의 성과와 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수많은 연구결과로 나타났다. 2020년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12개국 1000개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서는 이사회 내 성별이 다양한 기업의 영업이익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21% 정도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이 2018년에 발표한 보고서도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이 평균보다 높은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19% 높은 수준의 혁신수익을 달성한다고 분석했다.
성효용 성신여자대학교수가 2019년 국내 매출액 기준 상위 2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이 매출액순이익률(ROS)과 총자산순이익률(ROA)으로 측정된 기업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이사가 1명이라도 있는 기업의 성과가 남성이사들로만 이사회가 구성된 기업의 성과보다 2.1%p(ROS)와 1.2%p(ROA) 높았다.
김준섭 KB 증권 연구원의 연구는 국내 기업에서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이 높은 기업이 낮은 기업에 비해 더 높은 주가수익률을 올린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사회 내 성별 다양성과 기업의 ESG 지수 간에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양(+)의 관계를 발견하며 이사회의 여성 참여의 증가는 기업의 ESG 평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한국 상장기업 여성임원 대부분(90%)이 내부 승진이 아니라 외부에서 초빙한 사외이사라는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률 준수 관점에서 어쩔수 없이 사외이사를 영입하며 구색만 맞추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사회 내 성별 다양성 확대가 단순히 여성 이사의 수적 증가에 국한될 경우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 이사회가 견제와 감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사외이사가 경영진과 지배주주로부터 실질적인 독립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비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사회의 표면적인 다양성을 위해 단순히 여성 이사의 숫자를 늘리는 것은 기업의 성과증대로 이어지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상용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양한 관점과 가치가 기업 경영에 반영되는 질적 다양성의 확보가 가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단순히 남녀 비율의 특정 수치를 맞추는 것이 아닌 전문성과 소통능력을 갖춘 여성을 사외이사로 임명하는 동시에 사내에서도 자체적으로 여성 임원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