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통상과 산업 정책은 동전의 양면"

2022-03-11 10:36:57 게재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금 우리나라는 59개국과 22건(타결 기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보유했고, 세계 GDP의 85%를 차지하는 방대한 FTA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며 "이를 통해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소부장 공급망을 튼튼히 하며, 1조달러 수출시대를 앞당기는 게 통상 전략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코로나19 이후 자국보호주의 심화, 기술패권주의 확대 등 통상환경의 패러다임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어떻게 진단하나.

과거 통상환경은 안정된 다자체제 하에서 시장 개방 위주였다. 하지만 인류 삶을 바꿔 놓은 팬데믹과 그 와중에 급속히 진전된 디지털화, 신기술 패권 경쟁, 반도체·배터리 등 미래 산업의 지형을 바꿔 놓을 공급망, 기후변화와 백신 대응 등 글로벌 통상 질서의 판이 새롭게 짜여지고 있다.

B.C.(Before Covid)의 구 통상질서가 A.C.(After Covid)의 새로운 통상질서로 급속히 재편되는 글로벌 통상환경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FTA 불모지였던 시기 최우선 통상과제는 '동시다발적 FTA'와 'FTA 양적 확대'였다. 지금 시대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통상전략은 무엇인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조금 각색한다면 '그때는 그게 맞고 지금은 이게 맞다' 라고 하고 싶다.

'그때'는 FTA의 볼모지였기 때문에 최단기간내 많은 FTA를 동시에 하는 전략이 우리나라에 맞았다. 협정문을 많이 다룬 경험있는 외교 담당부처에서 효율적으로 그 일을 잘해 내었다.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지금은 통상정책과 산업정책이 동전 양면이고, 공급망 이슈를 적기 해결하려면 실물경제와 밀접히 연계돼야 한다.

요소수 사태가 재발되지 않으려면 해외에서 들어오는 공급망 정보를 갖고 개별 품목·기업·시장의 반응을 정확히 분석, 민간과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 통상과 실물경제 부처가 연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우리나라 통상정책 방향은 기존의 '교섭형'에서 '국부창출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앞서 말씀드린 것 같이 '그때'는 시장개방 중심의 FTA 확대 등 '교섭형' 통상이 유효했다. 하지만 '지금'은 통상을 통해 공급망 안정화, 신흥기술에 대한 새로운 룰 제정, 디지털 및 녹색 전환 등을 추진해야 한다.

지난해 LG와 SK간 미국에서 벌어졌던 배터리 지재권 소송시, 이 공급망의 파국을 극적으로 막은 게 미국 무역대표부(USTR) 캐서린 타이 대표였다.

미 통상당국이 적극 중재에 나서면서 한미 양국의 배터리 공급망과 일자리를 살린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통상당국은 △공급망 △기술 △디지털 △보건백신 △탄소중립 등 5대 전략분야를 중심으로 통상- 산업 -에너지 정책간 연계를 강화하며 '국부창출형' 통상정책을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유한 통상네트워크를 활용해 미국(반도체 파트너십 대화 신설), 호주(핵심광물 MOU), 영국(공급망 협력 MOU), 인니·베트남(요소 협력 MOU) 등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통상과 산업을 융합한 새로운 질서 확립에 나서고 있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통상 리더십을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 글로벌 통상의 트렌드는 단순 시장 개방보다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등 핵심 산업의 공급망 우위를 자국내에서 확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통상정책의 핵심은 산업정책이고, 공급망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가 좋은 예다. 여기에선 전통 통상이슈 뿐 아니라 공급망, 디지털, 인프라, 녹색기술 등 다양한 실물경제 이슈를 함께 다루고 있다.

둘째, 대한민국의 글로벌 위상은 G7 국가 수준으로 인식되는 등 과거와 현격히 달라졌다.

다자체제 복원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개혁을 위해 우리나라가 적극적인 글로벌 리더쉽을 보여야 할 때다.

또 최근 통상 환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경제와 안보의 접점이 확대되는 추세다.통상과 실물경제, 그리고 외교안보적 고려가 종합적으로 고려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USTR, 상무부 등 경제부처와 국무부 등 외교안보부처간 조정이 필요할 경우 백악관의 국가경제위원회(NEC), 국가안전위원회(NSC)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좋은 사례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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