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사이버 전쟁
극한상황에 가짜뉴스 횡행 … 러시아 대내외 여론전 참패
우크라이나전쟁이 한창이던 3월 16일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에 항복을 선언하는 동영상이 유포됐다. 영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결사항전을 선언한 젤렌스키가 항복을 권하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조작된 '딥페이크'(deepfake) 영상이었다. 인공지능(AI)으로 얼굴과 음성 등을 합성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인스타그램과 텔레그램을 통해 "해당 영상은 조작된 것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고 있으며 무기를 내려놓고 귀국해야 하는 것은 러시아군"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는 딥페이크 동영상을 삭제했다.
#사례2. 전쟁 피해자가 재난 전문 배우?
3월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동부 도시 마리우폴에서 어린이 병동과 산부인과 병동이 폭격당했다. 마리우폴 시의회는 이 공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3명이 숨졌고, 출산을 앞둔 임신부와 직원 등 17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특히 임신부가 피를 흘리며 황급히 대피하는 사진이 퍼지면서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고조됐다.
그런데 당시 영국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이 여성이 피해자가 아니며 '재난 전문 배우'(crisis actor)라고 주장했다. 병원에는 민간인이 없었고, 러시아군의 병원 폭격과 민간인 피해는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공습은 서구의 대중들을 속이기 위한, 완전히 연출된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입증할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트위터는 이례적으로 주영 러시아 대사관의 공식 게시물을 삭제 조치했다.
더군다나 AP 통신과 USA투데이 등은 후속 보도를 통해 해당 인물인 마리아나가 러시아 주장처럼 재난 전문 배우가 아니라 뷰티 블로거이며, 수개월 동안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임신사실과 화장품 등을 홍보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3월 11일 출산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러시아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달을 훌쩍 넘겼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양측이 주장하는 명분과 전쟁상황에 대한 엇갈린 평가만큼이나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한 것이 바로 사이버전과 가짜뉴스다. 러시아는 침공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에 피해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러시아군의 잔혹함에 맞서고 있다.
러시아는 안보위협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및 탈나치화'를 침공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국제 여론은 냉담했다. 러시아가 주장하는 나토의 동진에 따른 안보위협 등은 거의 부각되지 않고, 우크라 침공의 부당함과 민간인 피해 상황 등이 집중 조명됐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3월 24일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다. 우크라이나 인도주의 위기에 관한 결의안을 찬성 140표, 반대 5표, 기권 38표로 채택했다. 3월 2일 러시아에 대한 철군 요구 결의안에 이은 두번째 결의안으로 국제 여론이 어디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미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전쟁범죄' '학살자'라고 규정하며 푸틴과 러시아에 대한 고립화에 나섰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쟁반대 시위가 끊이질 않을 정도로 민심의 이반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전쟁이 장기화되고, 내부 민심 이반에 국제여론까지 나빠지면서 러시아는 최근 전략을 수정하는 분위기다. "돈바스 지역의 분리 독립에 집중하겠다"며 애초에 내세웠던 목표를 축소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출구전략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내부단속과 국제여론 돌리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면서 국내외 여론에 대해 두가지 전략을 병행 추진했다.
하나는 언론통제 등을 통한 내부 여론에 대한 철저한 단속이다. 최고 15년형까지 가능한 '가짜뉴스 처벌법'을 통과시키고, 페이스북 트위터 틱톡 등 글로벌 소셜미디어에 대한 접속 차단까지 단행했다. 민심의 동요를 막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전쟁 기간이 길어질수록 민심 이반은 불가피해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두번째는 대외적으로 해킹이나 가짜뉴스 유포 등 사이버전을 준비했다. 러시아가 내세우는 전쟁 명분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전쟁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군의 사기 관리를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가짜뉴스 유포 등을 통해서도 국제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또 우크라이나를 향해서는 이미 해킹 등 사이버전을 펼쳤지만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서 미국 등 서방세계를 향한 사이버전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해커, 테크기업 등 사이버 반격
러시아의 공세에 우크라이나만 저항한 것이 아니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의 저항이 이뤄졌다. 러시아의 사이버전에 대해 글로벌 테크기업들이 맞서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저궤도 통신위성인 '스타링크' 서비스를 제공해 달라는 우크라이나 부총리의 요청을 즉각 받아들였다. 이 인터넷망이 우크라 군의 선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러시아의 사이버전에 맞설 사이버 의용군에 전 세계 해커 20만명이 자원했다. 이들은 러시아 국방부, 크렘린궁 웹사이트, 타스통신 등을 공격해 기능을 일시 마비시켰다.
국제적인 해커 집단인 어나니머스의 활약도 눈에 띈다. 어나니머스는 러시아와 사이버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이들은 러시아 정부기관과 언론, 통신 감독기구 등을 해킹하는 데 성과를 내면서 '사이버 로빈후드'란 평가까지 받고 있다고 경제매체 CNBC가 3월 16일 보도했다.
어나니머스 핵티비스트(hacktivist)는 러시아 TV방송을 해킹하는 기상천외한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핵티비스트(hacktivist)는 해커(hacker)와 활동가(activist)의 합성어로 인터넷을 통한 컴퓨터 해킹을 투쟁 수단으로 사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행동주의자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러시아TV가 정규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도중 우크라이나에서 폭탄이 터지는 장면과 전쟁의 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군인의 짧은 영상을 내보냈다. 이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광범위하게 공유됐다.
팩트체커들도 국제 연대활동
해커들만 나선 것이 아니다. 사실검증 전문가인 팩트체커들도 국제적인 연대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팩트체커들의 연대기구인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는 커뮤니티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허위정보가 만연하다는 지적과 함께 국제적인 연대활동을 제안했다. 전쟁 초기인 2월 말에는 우크라이나 언론매체이자 IFCN 회원사인 '복스우크라이나'(VoxUkraine) '스톱 페이크'(Stop Fake)를 통해 검증된 내용을 전파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허위정보가 갈수록 만연하면서 두 매체가 감당하기엔 벅찬 수준이 됐다. 이때부터 IFCN 중심으로 세계 여러나라의 팩트체커들이 연대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불과 3주만에 1600여건의 허위정보를 검증했다. 검증한 내용은 해시태그 유크레인 팩츠(#UkraineFacts)를 통해 공유했다.
특히 스페인의 팩트체크 팀인 말디타(Maldita.es)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허위정보를 검증한 결과를 세계지도에 표시(ukrainefacts.org)함으로써 어떤 나라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관련 허위정보가 많이 유통되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전세계 70여개국 100여개 팩트체크 기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는 군사작전에서도 예상치 못한 고전을 하고 있지만 대의명분과 민심을 놓고 벌인 사이버전에서 이미 완벽한 패전을 기록하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