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군, 민간인 학살의혹 쟁점 부상
블링컨 "분개" 유엔총장 '조사' 시사 … 러 "연출" 주장하며 안보리 소집 요구
러시아 군에 의해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학살된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만약 사실일 경우 '전쟁범죄', '학살자'로 규정한 미국의 주장은 입증되고, 러시아와 푸틴은 또다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을 것으로 보여진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3일(현지시간) 수복한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 민간인을 포함한 시신 410구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검찰총장은 페이스북에서 "법의학 및 다른 분야 전문가들이 부검과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현장에 갔다"면서 "이 지옥을 만든 짐승 같은 자들이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이는 기록돼야만 한다"면서 이같이 알렸다. 키이우 근처 부차 지역에서는 시신 57구가 묻힌 곳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시신 가운데 약 10구 정도는 제대로 매장되지 않아 눈에 보일 정도였고, 일부는 검은 시신 포대로 싸여 있었으며, 일부는 민간인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이날 러시아가 민간인을 학살했다며 강력히 규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집단학살을 저지르고 있고, 우크라이나 국민 전체를 말살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러시아가 "계획적인 대학살"을 벌였다며 주요 7개국(G7)에 새로운 대러 제재를 촉구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은 한목소리로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예고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전쟁 범죄를 저지른 러시아를 처벌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독일과 프랑스 외무장관이 이미 부차 사태를 거론하며 추가 제재 필요성을 언급했고,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EU 차원의 강력한 5차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올렸다.
유엔도 나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3일(현지시간) 유엔 차원의 조사를 시사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살해된 민간인들의 모습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면서 "효과적인 책임규명을 보장하기 위해 독립적인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언급했다. 유엔이 독자적으로 조사에 나설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국 반응도 격앙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3일(현지시간)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명백한 민간인 학살 증거가 나오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러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제재 방안으로는 러시아와 무역을 이어가고 있는 일부 나라에 대한 2차 제재를 비롯해 에너지를 포함한 광물, 운송, 금융 등 분야에 대한 추가 제재 가능성이 거론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CNN 방송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온'에 출연, 부차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처형된 뒤 집단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시신이 잇따라 발견되는 데 대해 "이러한 사진을 볼 때면 매우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집단학살을 저지른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직답을 피한 채 "러시아는 전쟁 범죄를 저질렀으며, 이를 자료로 만들고 정보를 제공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적절한 기관이나 기구에서 모든 정보를 하나로 모아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확인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와 관련해선 "우리는 매일 기존 제재를 강화하고 새로운 제재를 추가하고 있다"며 "그 결과의 하나로 러시아 경제는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블링컨 장관은 에너지 분야 추가 제재에 대해선 "동맹과 가장 효과적인 제재 강화 방안을 지속해서 논의 중이지만, 동시에 유럽이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이는 올해뿐 아니라 내년에도 마찬가지"라고 밝혀 러시아에 대한 제재 장기화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블링컨 장관은 오는 5일부터 사흘간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한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러시아는 강력 부인하면서 유엔 안보리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부차에서의 러시아군 범죄를 입증하려고 공개한 모든 사진과 영상은 또 다른 도발"이라며 "공개된 영상은 서방 언론을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연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부차를 점령했던 러시아군은 지난달 30일 모두 철수했다고 확인하면서 점령기간 민간인은 자유롭게 마을을 돌아다니거나 대피했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군이 마을에 주둔할 당시 폭력적인 행위로 피해를 본 주민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안보리 소집 요청과 관련,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평화 협상을 방해하고 부차에서의 도발을 빌미로 폭력 사태를 확대하려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시도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