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에너지 난세와 한국전력

2022-04-04 11:19:55 게재

에너지 난세(亂世)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에너지값에 대한 전망이 어둡기만 하다. 지난해 여름부터 유럽에서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소비 억제심리가 풀리면서 천연가스값이 뛰기 시작하던 터에 2월 24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으로 석유 천연가스 석탄값이 널뛰기 하고 있다.

에너지를 전적으로 해외수입에 의존하는 한국도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에너지가격 상승이 고스란히 전 산업분야에 전가되면서 생산비와 물가 상승을 부채질한다. 서민 식당이나 마트 식품점에 가보라. 물가상승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새정부의 에너지문제에 대한 시각변화 절실

우리나라에서 쓰는 전력을 독점 배급하는 한국전력의 올해 적자 규모가 무려 3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문가 예측이 나왔다.<내일신문 3월22일자 보도> 지난 2월 석유값 배럴당 92달러를 기준으로 20조원 적자를 예상했으나 우크라이나전쟁이 발발하면서 유가가 127달러로 오를 것을 고려하면 30조원 적자 규모가 나온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전기료 인상 권한을 가진 정부는 올해 2분기에 당연히 계상되어야 할 연료비 인상분에 대한 전기료 조정단가를 제로(0)로 처리했다. 이 적자는 메꾸지 않으면 부채로 남게 되고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니 결국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물어내야 할 것이다.

국제 에너지가격 파동을 무시한 정치력의 개입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연료비 인상을 반영한 전기료 인상은 작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대선을 앞둔 정부의 물가억제 방안으로 미뤄졌고 올해 2분기를 앞두고는 6월 지방선거가 또 발목을 잡았다. 여기다 문재인정권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전기료 인상 책임 떠넘기기가 더해져 정부 눈치만 보던 한국전력은 꼼짝없이 적자를 끌어안게 됐다.

전기료 인상의 공은 이제 윤석열정부로 넘어가게 됐다. 아마 탈원전 정책이 전기료 폭동의 원인이라고 외쳤던 윤 당선인측은 원자력발전 가동을 통해 전기료 인상 요인을 완화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폐로 중인 원전을 재가동하거나 중지된 원전 신규건설 계획을 재생해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전기료 원가 인하에 당장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새정부는 요금인상의 타당성을 합리적으로 국민에게 설득하고 문제를 풀어나갈 자세를 가져야지 그때그때의 대증요법으로 대처하면 문재인정부 땜질처방의 재판이 되고 말 것이다.

에너지 문제를 보는 근본시각의 변화가 절실해졌다. 한국만 아니라 전세계 에너지 시장이 난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국가들이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석탄 석유는 물론 천연가스 사용마저 급격히 줄여나가는 파리기후협약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전쟁이 터지면서 전세계가 에너지가격 폭등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에너지 파동의 뇌관은 바로 유럽에 에너지를 공급해온 러시아가 전쟁 당사자가 된 점이다. 미국은 러시아 제재 방법으로 러시아 산 석유와 가스 수입을 금지했고, 유럽국가들도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줄이기 시작했다. 유럽의 지역 안보와 에너지 안보가 결부된 석유값 폭등에 한국도 벗어날 수 없다.

탄소중립과 전쟁에 의한 석유값 폭등이 교차하는 이 난세의 풍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에너지자원외교 강화, 에너지기술 개발, 재생에너지 원자력 화석연료의 지혜로운 에너지 배합(MIX), 효율적 에너지 이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긴요하다.

한국전력의 관료적 기업문화 탈피 시급

에너지 난세를 풀어갈 현장의 중심에 있는 기관이 한국전력이다. 지금까지 한국전력은 산업통상자원부의 하부구조의 역할에 충실했다. 대체로 정부 고위관리가 퇴직하면 최고경영자가 됐다. 이런 관행으로 에너지 전환시대를 헤쳐나가기는 버겁다는 게 한전 내부사정을 잘 아는 에너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탈탄소 시대와 러시아 발 에너지 파동이 겹쳐진 오늘의 상황은 평시가 아니라 전시상태라는 것이다. 스마트그리드(지능형송배전망) 없는 에너지 전환은 사상누각이다. 한국전력은 관료적 기업문화를 탈피해야 하고 스마트그리드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한국전력의 독점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그런 제도적 변화는 5년 단임 정부에선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경영적 혁신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얘기도 상존한다. 새 대통령이 한국 최고의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의논하고 고민해야 할 일이다.

김수종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