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20년래 최저수준 … 꿈쩍 않는 일본은행

2022-04-15 11:01:40 게재

금리 올리면 경기 하방압력 우려 … 국채 이자 크게 늘어나 재정에 부담

일본 엔화가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는 데도 일본은행은 계속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태세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양적 축소에 들어가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완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13일 금융업계 단체와의 회동에서 "강력한 금융완화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코로나19로부터 회복 과정에 있는 경제활동에 확실한 원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로다 총재의 이날 발언은 당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20년 만의 엔저로 나타났다. 지난 13일 엔화는 달러당 126엔대까지 떨어져 2002년 5월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이날 구로다 총재가 엔저에 따른 수입물가의 급등과 주요 생필품 및 에너지 가격의 상승으로 일부 정책전환 가능성을 할 수 있다고 관측했지만 빗나갔다.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구로다 총재가 금융정책으로 엔저를 시정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 확인된 이상 시장에서는 엔화를 팔자는 분위기가 커졌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이 모두 기준금리 인상과 양적완화 축소에 나서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일본은행만 완화정책을 고집하는 이유가 주목된다. 아사히신문은 14일 일본은행이 역대급 엔저에도 움직이지 않는 배경에 대해 경기가 다시 침체할 것에 대한 우려를 들었다. 실제로 일본은 코로나19 이전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여전히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최근 2년간 경기 침체가 심각하다.

일본은 2020년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에 의한 긴급사태 발령 등의 영향으로 소비가 급락하면서 마이너스 4.5%라는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해는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1.6%에 그쳐 미국(5.5%)과 유로존(5.2%) 등 선진 경제권에서는 가장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 올해도 일본의 실질GDP 성장률은 당초 3.3% 수준을 예상했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2.4%로 하향 수정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은행이 금융완화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경기는 더욱 하방 압력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행 고위관계자는 신문과 인터뷰에서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해 현재의 어려움을 전했다.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또 다른 배경에는 이자율이 오를 경우 막대한 국채를 발행한 정부의 이자부담이 급증한다는 점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일본정부가 지난해 기준으로 매년 국채 이자부담이 8조5000억엔(약 82조4500억원)에 이를 정도로 막대해 국채 이자 상승을 용인할 경우 정부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본은행 스스로도 은행 등 금융기관이 맡겨 놓은 당좌예금이 500조엔 규모여서 이자 부담이 늘어날 위험이 크다. 아사히신문은 "금융기관이 예치한 500조엔이 넘는 당좌예금을 가지고 있는 일본은행으로서는 금리가 1%까지 오르면 연 5조엔이 넘는 이자부담 생긴다"고 했다.

한편 일본은행은 2013년 구로다 총재가 취임하면서 아베노믹스를 뒷받침하기 위해 대규모 금융완화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2016년부터 단기금리는 마이너스 0.1% 수준, 장기금리인 국채 10년물에 대해서는 0% 전후에 이르도록 하는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최근에도 국채 10년물 금리가 0.25%에 육박하자 무제한 국채 매입에 나서 이자율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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