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살인, 조직범죄 가능성 높아"

2022-04-20 11:25:49 게재

전국 돌며 도피행각, 다수 조력자 등장 … 묵비권 행사, 직·간접 정황증거 넘쳐

이른바 '계곡 살인'이 피의자 이은해씨와 공범 조현수씨뿐 아니라 다수의 공범이 참여한 조직적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또 피의자들은 진술거부로 사건과 관련해 입을 다물고 있지만 직·간접 증거가 많아 혐의 입증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공개 수배 후 경찰은 조력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수사 범위를 넓혔고, 도피 중 이들이 사용한 다른 사람의 카드를 확인해 꼬리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계곡살인' 피의자 이은해·조현수 구속심사│'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왼쪽)·조현수씨가 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검찰, 조력자 조사도 본격화 = 실제로 두 사람이 전국 곳곳으로 도피처를 옮겼고,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의 조력자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경도 이씨와 조씨의 도피를 도운 조력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특히 검찰은 이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수사망을 피해 도피할 수 있도록 신용카드를 빌려준 A씨를 특정했다. 이씨와 조씨는 공개수배 나흘 뒤인 지난 3일 지인의 승용차를 이용해 경기도 외곽으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때 A씨 신용카드로 숙박비를 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차량 조회 등을 통해 여행에 동행한 지인을 확인하고, 신용카드 명의자인 A씨 신상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는 "이번 사건은 두사람이 저지른 단순한 보험사기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일반적인 범죄라기보다는 오랫동안 함께 활동한 남녀 여러명이 가담한 조직범죄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씨가 과거 2년간 결혼을 3번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범죄의 타깃'을 고르는 과정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보험사기를 설계한 사람들이 피해자를 선택한 것으로, 여러 대상 중 윤 모씨가 이씨에게 완벽하게 속아 희생됐다는 것이다.

검찰도 지난 16일 고양시 소재 한 오피스텔에서 이들을 체포하면서 압수한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에 따라 조력자가 몇 명이나 연루돼 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피 등에 관여했는지 등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검찰 관계자는 20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조력자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진행 중인 피의자들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사건의 전모가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정황증거 인정 =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살인에 대한 입증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교수는 이씨의 살인 혐의 입증과 관련해 "직접 밀어서 떨어뜨린 건 아니다"면서 "(윤씨가) 계곡에서 자기 발로 뛰어내린 그 부분을, 과연 살인의 고의를 어떻게 입증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은해와 남편의 관계, 이런 것들에 대해 심리분석보고서가 있어야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던 사람의 정신을 지배해서 자기 발로 뛰어내리는 데까지 이르게 한 건지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는 "복어 독 등 연속된 살인미수 이후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라며 "이전 범행이라고 하더라도 고의를 입증할 수 있는 정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피의자들이 살인이나 사기죄의 범의나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면서 "이 사건의 경우도 직접 증거가 별로 없다고 하더라도 동기, 경위, 범행방법, 수단, 범행 후의 정황까지 전체적으로 세밀히 인과과정 등을 관찰하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직접 간접 정황 증거까지 고려해 살인죄의 범의나 범행 입증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천 변호사는 특히 "가입한 보험의 수령조건이 특이하고 많은 보험금을 납부해도 기간이 짧았던 점, 사람 죽은지 얼마 안되서 보험금 내놔라 그 중 일부금이라도 빨리 지급하라고 했던 점, 금감원에 이의를 신청하고 남자를 대동해서 빨리 받고 싶어한 점,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잠적한 것, 도주계획이 비교적 치밀했다는 점, 일부러 얼굴을 가리고 생필품만 살 때 나갔다는 점 이런 것들이 모두 간접증거"라면서 "현장의 다른 목격자들의 진술은 직접증거에 가깝고 간접증거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대법원도 살인죄에 대해 살해의 직접증거가 아닌 간접증거만으로도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형사재판에 있어 유죄의 인정을 위한 증거는 반드시 직접증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를 상호 관련 하에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에 의해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한편, 인천지방검찰청 형사2부(김창수 부장검사)는 19일 살인·살인미수·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미수 혐의로 이씨와 조씨를 구속했다.

소병진 인천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3시 30분부터 1시간 10분동안 이들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씨는 내연남인 조씨와 함께 2019년 6월 30일 오후 8시 24분쯤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씨와 조씨가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피해자를 4m 높이의 바위에서 3m 깊이의 계곡물로 스스로 뛰어들게 한 뒤 구조하지 않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피해자 명의로 든 생명보험금 8억원을 노린 이씨와 조씨 등이 당시 구조를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보고 이른바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씨와 조씨는 2019년 2월과 5월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 물에 빠뜨려 피해자를 살해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피해자가 사망하기 전 계곡에서 함께 물놀이를 한 조씨의 친구 B씨도 살인 등 혐의를 받고 있다. 전과 18범인 그는 다른 사기 사건으로 구속된 상태다.

이씨와 조씨는 지난해 12월 14일 검찰의 2차 조사를 앞두고 잠적한 뒤 4개월 만인 지난 16일 경기도 고양시 삼송역 인근 한 오피스텔 22층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안성열 김형선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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