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말하는 산재예방 ④

예방된 사고

2022-04-22 11:55:50 게재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

2021년 산업현장에서 828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 사고로 사망했다. 현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당연한 고민을 하고, 이를 위해 신호수 배치, 난간 설치, 작업자 교육 등 다양한 조치들을 한다. 안전조치를 하다 보면 혹시나 일어날 사고 중 예방된 것도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자연스레 일 것이다.

예방된 사고를 확인할 수 있다면 사고는 훨씬 더 드문 사건이 될 것이다. 안전보건공단 재직 중에 직원들과 이 사안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 직원이 건축공사 현장의 높은 작업위치에서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추락 중에 그 아래에 설치돼 있었던 추락방지용 망에 떨어져 목숨을 구한 경우를 예로 들었다. 그러나 그 경우가 선행된 안전조치의 성과로 나타난 결과이지 노동자의 추락은 예방되지 않은 사고다. 예방된 사고(Accident)는 세상에 드러나는 사건(Event)이 아니다.

동적 비사건(Dynamic non-event)

'예방된 사고'는 동적 비사건의 범주에 속한다. 동적 비사건은 조직이론 학자인 미국 미시간 대학의 칼 웨익(Karl Edward Weick) 교수의 뛰어난 통찰로 제시된 개념이다. 실제 어떤 것이 작동해서 얻어진 결과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건을 의미한다. 예방된 교통사고나 범죄와 같은 경우도 그 범주에 속한다. '예방된 사고'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노동자 1만명 당 사고사망자수(2001년 1.23 → 2020년 0.46)와 같이 통계를 통해 간접적으로는 확인할 수 있다.

생산과정에 관계되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요소들은 동적이다. 설비와 도구들의 마모 부식 등 기능저하, 원료의 온도, 압력, 농도 등의 물성, 온도, 습도, 유해물질에 노출, 조도 등의 작업환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리적 상태와 작업자들의 피로 수준, 심리상태에 따른 말과 행동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절대적 정적인 요소는 단 하나도 없다. 또 모든 관계자들은 의식, 무의식 간에 모든 작업 상황을 안전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기여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은 기대 범위 내의 결과를 얻게 된다.

일의 결과가 정상인 경우 그 과정에 있었던 '예방된 사고'는 관심 밖에 있기 마련이다. 그와 상대적으로 원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사건인 사고가 발생하면 발생된 '사고'를 막기 위해 생산과정과는 별도의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생각이 보편적이긴 하지만 안전을 위해 생산과 별개의 무엇인가를 하게하는 비효율을 만들게 된다. 축구에서 슛하는 기술과 실축하지 않는 기술을 별도로 연습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겠다.

사고예방은 안전한 생산으로

사고의 위험은 생산과정에서 조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과정에서 조성될 수 있는 위험을 식별하고 제어하는 것이 안전업무이고 이는 생산에 관한 구체적인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대형 철강업체에서 안전 실무자들을 실제 생산라인의 경험이 많은 직원들로 배치한 사례는 이들이 오랜 경험과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게 된 이와 같은 직관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이미 30년 전(1990년 전면 개정)에 사고예방 업무의 실행을 생산라인(관리감독자)에 부여했다. 그리고 안전관리자는 '지도·조언하는 업무' 즉, 실행이 아닌 훈수를 두는 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현재도 대다수의 생산현장에서 사고예방 업무를 생산라인이 아닌 안전담당자이 하는 것이 관행화돼 있다.

게다가 산업안전감독 시에 법규에도 없는 관리감독자 선임 또는 지정을 요구함으로써 다수의 관리감독자 중 1인 만 안전에 관여하게 함으로써 안전인력을 대폭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리고 감독 또는 사고조사 시에 법규에서 요구한 사항들의 실행내용 확인보다는 기록 위주의 확인 관행으로 안전 전문인력을 서류 작성에 매몰시키고 있는 것이 산업안전정책의 현주소다. 제조업의 경우 노동자수가 수만명에 달해도 법정 안전관리자수는 2명임이 정책에 고려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규제기관은 처벌이 아닌 준수를 유도하기 위해 존재한다. 또 그들의 규제는 사회에 내어놓는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 따라서 현장상황을 면밀히 살펴서 현장상황에 맞게 법규를 정비함과 더불어 현장의 공감을 얻는 규제가 돼야 유익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난다.

부적절한 규제의 대다수는 하지 않는 것이 사회에 더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