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술혁신, 미국과 어떻게 달랐나

2022-04-27 10:26:03 게재

미, 재원 대고 나머지는 시장에 … 중, 정부가 승자와 패자 선택해 효율성 높여

미국의 많은 이들이 지난 수십년 동안 '획기적 혁신은 고사하고 창의성이 없는 카피캣(copycat) 국가'라며 중국을 조롱했다. 독재와 계획경제는 본질상 혁신적 아이디어와 배치되는 것으로 여겼다. 급속한 기술발전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두려움 없는, 파괴적인 사고를 가져야 가능한 것이었다.

지난 수년 동안 그같은 생각은 바뀌었다. 그리고 미국의 기술적 우월감에 대한 자아도취는 사라졌다. '중국에서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언론 기사는 '중국이 인공지능(AI)과 5G 등 전략적 기술에서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경고성 기사로 변했다. 오랫동안 실리콘밸리에 기술을 맡겨두던 미국정부는 이제 자국의 기술적 능력을 북돋우고 중국의 발전을 막는 방법을 찾느라 분주하다.

그렇다면 미중 양국이 현재에 이르게 된 경위는 어떻고, 그것이 향후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연구원으로 '범태평양 실험 : 중국과 캘리포니아는 미래를 놓고 어떻게 협력하고 경쟁하나'의 저자인 맷 시언은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그 해답을 추적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미국 내 전통적 이해는 주로 지적재산권 탈취에 쏠려있다. 그는 "중국 제조업체들이 특정상품을 모방해 대량으로 찍어낸 건 사실"이라면서도 "지적재산권 탈취만으로 중국의 급부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이같은 오해를 기반으로 미국정부는 기술경쟁력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이 신흥기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기술적 약진을 이뤄낸 기반은 보다 복잡하다는 게 시언 연구원의 분석이다.

국가개입

미시적인 수준에서 중국의 개별적 혁신은 과학기술자들의 창조적 산물이다. 하지만 중국의 기술적 부상을 거시적으로 보려면 중국정부가 전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혁신생태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취한 조치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시각에서 혁신은 특출난 몇몇 사람들이 이뤄내는 게 아니다. 또 정부의 개입으로부터 보호받아야 가능한 것도 아니다. 중국은 혁신을 사회적·경제적 과정으로 본다. 이 때문에 물리적 자원과 정부의 결의를 버무려 지도할 수 있고 가속화할 수 있다.

이같은 시각은 자유시장과 언론자유를 강조하는 실리콘밸리의 관점과 충돌한다. 하지만 중국은 기술적 발전과 상업적 성공을 이뤘다. 그것도 미국의 주요 전문가들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크게 성공했다.

시언 연구원은 중국의 기술혁신 과정을 3단계로 나눴다. 1단계는 2000~2010년으로, 거대한 기술시장을 구축했다. 신생 혁신생태계를 육성하기 위해선 시장이 필요했다. 이 시장은 치열한 경쟁을 자극할 정도로 충분한 수익성을 갖춰야 했다. 동시에 어느 정도 보호가 필요했다. 실리콘밸리 거대기업들이 갓 태어난 중국 스타트업들을 깔아뭉개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중국은 수십년 동안 가파르게 성장한 경제와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을 결합하면서 '시장'과 '보호'의 균형을 달성했다. 광활한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예상에 해외의 거대한 자본이 중국에 투자됐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을 이끌었다. 만리방화벽 역시 중국 스타트업들이 외국 경쟁자들과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중요한 지점은 만리방화벽이 물샐 틈 없이 완벽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난 20년 중 상당기간 동안 만리방화벽엔 이런저런 구멍이 많았다. 중국시장을 외국과의 경쟁에서 보호하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에 완전히 고립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구글과 페이스북, 트위터는 중국에서 완전 봉쇄되기 전 수년 동안 중국시장에서 경쟁했다. 정치적으로 덜 민감한 에어비앤비와 우버, 아마존, 링크드인 등과 같은 소비자플랫폼은 봉쇄된 적이 없다. 대신 왜소해 보였던 중국 스타트업들에게 패했다.

미중 협력

이런 상황은 두번째 단계이자 가장 논쟁적인 단계로 진화했다. 중국은 수십년 동안 선도적인 서구 기업과 대학, 연구소들과 과학적·상업적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미국 기관들을 선호했다. 미중 양국 교수들의 AI 협력연구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에 대한 중국 벤처투자 등 다양한 관계였다.

미국의 대중 비판가들은 이런 관계를 지적재산권 탈취 통로로 본다. 중국 스파이들이 미국 혁신기술을 훔치도록 도왔다는 것. 하지만 시언 연구원은 "미중 관계의 가장 큰 파급력은 훔치는 게 아니라 배우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의 혁신과정을 보고 배우며 지적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미국의 혁신 아이디어와 사례, 운영모델 등은 중국이 초기단계 기술생태계를 육성하는 데 절실한 것이었다.

2008년 즈음부터 구글에서 일하던 중국 공학자들이 자신의 스타트업을 세우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들 덕분에 실리콘밸리 문화가 중국으로 유입됐다. 중국 대학의 연구자들은 해외 과학자들과 더 많이 더 자주 협력하기 시작했다. 중국 기술기업들은 미국·유럽의 경쟁기업들을 연구하며 최신 기술트렌드를 소화하고 이를 중국적 맥락에서 응용했다.

이같은 상호작용 대부분은 상향식이었다. 서로 협력하고 서로 배우기를 원한 양국의 과학기술자들이 이를 주도했다. 중국 정부도 이같은 협력관계를 증진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 미국 기술기업들에게 시장접근성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며 중국에 연구센터를 개설하도록 독려했다.

시장이 조성되고 국제적 연계가 정착되면서 중국은 3번째 단계를 밟았다. 중국정부는 투자자본과 물리적 인프라, 훈련된 공학자 등 각종 자원을 쏟아냈다. 미국의 관점에서 이같은 투자는 낭비적이고 비생산적으로 보였다. 정부가 승자를 골라서는 안된다는 신성한 계율을 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현지에서는 기술의 확산과 상업화를 가속하는 효과적인 방법임이 증명됐다.

대표적 사례는 2017년 발표된 'AI 이니셔티브'다. 2030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AI 허브를 만들겠다는 목표였다. 이니셔티브의 가장 큰 효과는 민관 부문을 따질 것 없이 수많은 실험과 도전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중국 각 도시들은 AI 스타트업 육성센터를 지었다. 농업 담당 공무원들은 스마트 드론으로 비료를 살포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공공병원들은 대학과 협력해 AI 의학연구소를 열었다. 중국 전역의 경찰서는 수많은 돈을 들여 감시기술을 도입했다.

개별 프로젝트를 하나씩 따지면 터무니없는 낭비로 보였다. 벽지도시에까지 개설된 창업보육센터 상당수는 수년 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보였던 정부의 노력은 민간의 AI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굵직한 벤처투자가 이뤄지며 성공적인 스타트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8년 전세계 AI 스타트업들에 대한 총투자 중 약 절반이 중국에서 이뤄졌다.

미국의 과잉반응

미국은 지난 4년 동안 자국의 기술생태계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데 집중했다. 중국이 최첨단 반도체를 제조하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전략적 가치를 입증한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미국의 혁신을 약화시키고 중국의 발전을 돕는 전략적 실수였다. 미국 대학에 종사하는 중국 출신 과학자들을 비난하면서 외국계 과학집단 전반에 공포를 줬다. 뛰어난 인재들 상당수가 중국으로 귀환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배제와 고립으로 중국의 발전을 막을 수 있는 시기가 이미 지났다는 점이다. 시언 연구원은 "미국이 만약 2005년 중국과의 기술적 연계를 끊어냈다면, 중국에 보다 큰 타격을 안길 수 있었다. 당시 중국은 지속가능한 기술생태계를 갖지 못했다"며 "중국이 그때부터 독자적으로 생태계를 구축했다면 훨씬 큰 어려움을 맞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늘날 중국은 이미 기술적 성공을 위한 원재료 대부분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양국의 연계를 마구잡이로 끊어내는 건 비생산적이다. 대안은 중국 출신 혁신가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면서 중국이 계속 외국 기술에 의존하도록 정교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지렛대는 반도체다. 미국의 소수 동맹들만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반도체 제조장비를 만들 수 있다. 또 중국 인재를 끌어들이는 데 있어 미국 대학은 강력한 자석이다. 이를 활용하기 위해선 미국 이민시스템의 개혁이 긴요하다.

중국이 기술생태계를 자체 발전시키는 현재, 미국이 중국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양국은 극과 극을 달리는 정부체제를 갖고 있다. 중국의 국가주도 모델을 단순히 베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 주요 도시들이 연방정부 지시에 따라 갑자기 자율주행 드론을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시언 연구원은 "더 중요한 교훈이 있다"며 "미국이 중국보다 우수한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기술발전 동기를 자극하는 새로운 방법을 실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시도는 세금낭비 논란을 빚을 수 있다. 또 완전히 실패할 수도 있다. 그는 "하지만 그같은 시도에 당파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면, 미국의 혁신정책은 멈추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의회는 미국 국립과학재단에 기술혁신국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는 학계와 정부, 산업계를 묶는 새로운 부서로 10대 첨단기술 분야의 과학진흥 업무를 맡게 된다. 상하원은 조만간 집중토론을 거쳐 기술혁신국 신설안을 매듭지을 계획이다.

물론 이는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중국의 '지대 범람'(flood the zone) 전략과는 다르다. 하지만 민관학 통합부서의 등장은 정부가 기초연구에 재원을 대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겨두는 기존 전략만으로는 기술우위성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자각했음을 시사한다.

시언 연구원은 "그 어떤 단일 법안이나 혁신정책도 미국의 기술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충분치 않을 것"이라며 "중국의 궤적이 미국정부에 주는 교훈은 기술혁신을 북돋우는 과정은 때로 엉망이고 혼란스럽고 모순적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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