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사회적 대화 | ② 의제가 답이다

'최저임금제도 개선' 새정부 국정과제에서 빠져

2022-05-17 11:43:11 게재

사회적 대화 의제는 '사회적·균형적·선제적'이어야 … '디지털·인구·에너지 대전환' 새과제로

사회적 대화는 참여 주체와 논의 의제, 논의 방식 3가지로 이뤄진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의제다. 대화 테이블에 오르는 이슈가 무엇이냐에 따라 개혁의 성패까지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 의제의 원칙은 먼저 말 그대로 '사회적(social)'이어야 한다. '사회적'이란 말은 '개인이나 특정 계층이 아닌 사회성을 지닌 것'이다. 의제는 그 시대 다수 사회 구성원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대화 의제는 또한 '노사 균형적이고 종합적'이어야 한다. 노동과 자본 어느 한쪽에 기울어져서는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렵고 대화 과정에서 합의를 만들기 어렵다. 노사 모두가 공감하는 의제를 찾기 어렵다면 노사가 요구하는 의제를 균형적으로 종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의제는 '구조적이고 선제적'이어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2020년 7월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처럼 현안을 중심으로 원포인트로 대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령은 경제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선제적으로 풀어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
오늘의 문제뿐만 아니라 내일 닥칠 과제에 대해 미래 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의제를 함께 고민해야 의미를 갖는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2020년 7월 28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을 체결했다. 고용유지 노력과 위기 업종 지원, 사회안전망 강화 등이 담겼다. 문재인 전 대통령(가운데)은 노사정을 격려하기 위해 협약식을 찾아 '노사의 상생 협력 의지'와 '사회적 대화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 경사노위 제공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다. 지난 20여년 동안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 의제는 △국난극복 △노동시장 정책 △경제정책 △사회보장 △노사관계 △안전 △구조조정 등이었다. 외환위기 등 특수상황을 빼면 주로 노동기본권, 노동·고용 규제 완화와 관련된 제도적 의제였다.

지금까지 많은 대화를 통해 우리나라 노동관계법은 선진화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가 풀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있다.

윤석열정부는 3일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특히 고용·노동 분야는 사회적 대화로 풀어야 할 것들이다. 노사도 이미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올릴 메뉴를 꺼내놨다.

◆윤 정부 '노동가치 존중받는 사회' = '노동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9일 출범한 윤석열정부의 고용·노동 분야 국정과제 슬로건이다.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한 문재인정부와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부과제를 보면 차이가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유연화'가 강조된 노동시장 개혁이다. 근로시간 제도의 노사 선택권 확대와 '상생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을 강조했다.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현행 1~3개월에서 1년 이내로 확대하고, 연간 단위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이 포함됐다.


이밖에도 전일제·시간제 근로전환 신청권 부여, 연장근로시간 특례업종·특별연장근로 대상에 스타트업 포함, 화이트컬러 이그젬션,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임금제도 개선 등이 세부 내용이 될 전망이다. 이그젬션(exemption)은 일정 금액 이상의 임금을 받는 전문직·고액연봉 노동자의 경우 연장근로수당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미국의 근로제도다.

올해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손질도 과제에 포함됐다. 현행법에서 모호한 일부 법 규정의 개정을 통해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탄소중립 등 전환노동에 대한 대응은 다소 단편적이다. 고용안전망 확대와 직무전환 지원 정도로 과제를 구성했다. 일자리 문제는 고용서비스 강화에 방점을 뒀고 노사관계는 공정성을 강조했다.

사용자의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노조의 불법파업 등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며 공무원·교원노조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는 도입하겠다고 했다.

당선인 시절 이야기됐던 최저임금제도 개선은 국정과제에서 빠졌다. 최저임금을 지역과 업종에 따라 차등 적용하자는 것인데, 지역 차등은 법적 근거도 없고 업종 차등도 현실에서 어려움이 많은 까닭으로 보인다.

◆노 '일하는 사람을 위한 권리' 보장 = 한국노총은 4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간담회에서 '12대 정책 및 제도개선 요구'를 전달했다.

먼저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권리 보장'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소상공인 등 '권리 밖 노동'에 대한 권리보장 강화를 강조했다. 산업·직종·업종 단위로 체결된 단체협약의 효력확장 요건 완화, 초기업 단위 사용자단체 구성 등을 통한 산별교섭 촉진도 요구했다.

'노동자 경영참가 제도 도입'도 제안했다. 플랫폼노동공제회 활성화 방안, 노동회의소 제도 도입이 포함됐다. '시간주권 보장 및 실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자의 휴식권과 노동시간 선택권 보장, 주 4일제 또는 주 35시간제 선도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이 담겼다.

'비정규직 감축 및 차별 해소'는 상시·지속적 업무에서의 정규직 직접고용 원칙 확립,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화, 비정규직 사용부담금 도입을 제시했다.

이밖에 최저임금 현실화 등 '적정임금 보장', 고령화에 따른 법정 정년연장 등을 통한 '고용안정 실현',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 50% 이상 확대 등을 통한 '노후소득보장' 등을 요구했다.

◆사 '부당노동행위 사용자 처벌' 삭제 = 경영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대선 국면에서 제시한 주요 과제는 5개 분야다.

'일자리 창출' 관련해서는 청년, 고령자 일자리 창출 기업에 세제 지원, 기간제·파견·도급 등 생산방식 다양성 보장,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제시했다.

'노사관계 선진화' 관련은 부당노동행위시 사용자 형사처벌 조항 삭제, 노조 부당노동행위 신설, 쟁의행위시 대체근로 허용,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금지 명문화를 주장했다.

'미래세대와 함께하는 사회' 분야에서는 국민연금 수익률·운용 독립성 제고와 산재보험 제도·기구 개편을, '안전한 산업현장과 환경' 분야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과 저탄소 분야 투자시 재정·금융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해묵은 과제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 = 문재인정부 때 사회적 대화의 성과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입법 기준'이 마련됐고 국제기준에 맞는 노동기본권 이슈는 어느 정도 해소됐다.

'주52시간 상한제 연착륙'을 위한 탄력적근로시간제-과로사방지법-근로자대표제를 시차를 둔 패키지 합의와 '한국형 실업부조제도' '전국민고용보험제 등 고용안전망 강화' 등을 안착시켰다.

다만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과제도 있다. 경사노위는 '고용+양극화해소위원회'를 발족하고 2년 넘게 논의했지만 노동은 노동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결실을 맺지 못했다.

새롭게 떠오르는 과제는 디지털·인구·에너지(기후위기) 대전환 의제가 있다.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플랫폼 고용의 증가는 기존 노동법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0.8명도 안되는 합계출산률과 초고령사회 진입은 국민연금 등 재정적 위기와 세대간 일자리 갈등 등 위기를 예고한다. 기후 위기는 직접적인 산업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불안요인이다.

노조법 개정으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지난해 7월부터 8년여 만에 경사노위에서 논의를 시작했지만 노사 이견으로 심의 시한을 넘긴 상태다. 공무원과 교원의 근로시간면제 심의도 경사노위에서 정하도록 공무원·교원노조법이 최근 개정돼 타임오프를 둘러싼 의제는 사회적 대화의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노동법 제도 관련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이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용자가 다양한 측면에서 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사회안전망과 관련해서는 자영업자 고용보험 적용방안과 상병수당 제도 도입이 현안이다.

◆대전환에 따른 고용노동 과제 필수 = 경사노위 의제 채택은 산하 '의제개발조정회의' 논의와 노사정 정상급 회의인 '본위원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윤석열정부의 사회적 대화 의제에 대한 노사정 주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크게 3가지 분야로 모아진다.

먼저 구조적이고 선제적 과제다. 특히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의제는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의제다. 기업규모별, 고용형태별, 성별·지역별 격차로 나눠 해법이 논의될 수 있다.

대전환에 따른 고용노동 과제도 필수적인 의제다. 디지털 전환에서는 디지털 산업 경쟁력 강화와 디지털 노동자의 권익 보호 문제가 플랫폼 업종의 특성상 세부 업종별로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인구전환 의제에서는 국민연금 개혁과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일-가정 양립 제도가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고령자 고용을 위해 퇴직 후 재고용 문제와 업그레이드된 임금피크제 등 실질적 고용연장 방안이 의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 전환 측면에서는 다른 업종에 비해 전환 속도가 빠른 석탄과 석유 발전 산업의 전환과 자동차부품 업종을 중심으로 연착륙과 지원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전환 의제는 집적단지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적 대화와 연계돼 논의될 수 있다. 내용은 고용유지를 위한 방안, 전직훈련, 고용서비스 강화방안 등이 될 것이다.

◆직무급제, 유연근로제 논의될 수도 = 노동시장개혁의 두축인 근로시간과 임금제도에 대한 의제도 불가피해 보인다. 과거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려던 '일반해고' 등 수량적 유연화는 노동계의 반발이 크다. 유연화의 정도가 고용형태별로 격차가 심한 상황에서 다루기가 어렵다.

다만 이를 제외한 직무급제와 유연근로제 등은 논의될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노사의 합의 여지가 생긴 만큼 기능적 유연화를 통한 노사 경쟁력 강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개선 또는 연착륙 논의는 지금도 진행중이며 새정부에서도 다뤄질 것이다.

이세종 경사노위 협력홍보팀장은 "새정부가 출범한 만큼 새로운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새로운 의제들이 구성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다만 노사정이 그동안 고민했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원과제에 더해 새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 과제가 담기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핵심 개혁과제를 주요 의제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임금위원회, 근로시간위원회, 산업안전위원회 등 3개가 핵심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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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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