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석 칼럼

균형과 관용의 에너지정책

2022-05-24 12:05:12 게재
조 석 현대일렉트릭 대표이사

에너지 문제는 언제나 논쟁적 이슈다. 원자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다투는 탈원전 이외에도 해외자원개발 재생에너지 기후변화 등등 많은 이슈에 대해 전문가들마저도 생각이 엇갈린다. 생각의 차이뿐 아니라 이해관계의 충돌도 크고 그런 만큼 논쟁은 격화된다.

원전은 경제적이며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되지만 안전성과 폐기물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 자동차로 전환하면 자동차 생태계가 크게 바뀌고 종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해외자원개발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기에 기업과 정부가 어떤 비중으로 투자비용을 분담할 지가 문제가 된다. 대형 에너지시설은 꼭 필요하지만 입지를 어디로 할 것인지가 어렵다.

이렇듯 거의 모든 사안이 이해관계의 충돌을 가져온다. 더 나아가서는 몇가지 사안은 이념적으로도 부딪힌다. 원전의 문제는 핵무기라는 군사적 성격이 있고, 해외자원개발은 각국의 외교정책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태양과 바람은 자연 에너지이지만 비싼 단가를 일정 기간은 국가가 보전해 줘야 하고 이것은 부담의 공정성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에너지원 간에 서로 자신만이 옳다고 다투는 것이 아닌 균형과 관용의 에너지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의 에너지정책에서 고려되어야 할 균형과 관용은 무엇일까?

에너지정책, 구호정치에 휘둘려선 안돼

첫째,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해 에너지 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는 온실가스 배출이 문제라고 하지만 아직은 꼭 필요한 에너지다. 그리고 모두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에너지다. 구체적인 도입 계약은 개별 기업이 하지만 도입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효과적인 대외정책을 통해 안정적이고 경제성 높은 에너지 수입을 뒷받침해야 한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는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국산 에너지다. 적절한 기술과 산업정책으로 에너지 보급과 국내 산업발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특정 에너지원을 배제하는 탈원전이나 탈석탄 같은 '구호정치'다. 냉정한 이성으로 국가 전체 에너지 수요를 만족시키면서 기후변화 대응도 차질이 없도록 하는 균형의 에너지정책이 필요하다.

두번째는 기술적으로 제도적으로 우리가 에너지 관련 설비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발전소를 만들거나 운영할 능력, 원유를 가져올 수 있는 운송수단이나 정제해 사용할 능력 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한국형 원전, 세계 최고 수준의 원유정제시설, 그리고 천연가스 운반과 저장시설 등의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러한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는 한편 새로운 에너지원인 태양과 풍력 관련 기술의 개발도 시급하다.

특히 최근 세계적인 추세인 해상풍력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술적 능력과 더불어 에너지의 보편적 사용을 보장하는 법과 제도가 작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는 에너지 운영에 관한 여러가지 법령(에너지기본법, 전기사업법 등)과 에너지 기본계획, 전력수급 계획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를 현실에 맞게 작동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 국민의 에너지 보편적 사용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세번째로 에너지 공급의 불규칙성을 해결하는 일도 중요한 숙제다.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에너지 보급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불규칙하게 부는 바람 때문에 또는 태양이 없는 밤에는 필요한 전기를 필요한 시간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성공한 에너지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에너지의 간헐성과 경직성을 모두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간헐성을 통제하지 못해 강제로 풍력이나 태양광발전기를 세우는 일(Curtailment)이 여러차례 반복되고 있다.

에너지 저장장치(ESS)나 전기차 충전을 이용하는(Vehicle to Grid) 등 새로운 기법과 스마트그리드, 마이크로그리드 등의 통제 방법이 필요하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 제주도 같은 일이 전국 단위로도 발생할 수 있다. 제주도 사례를 잘 벤치마크해 미래 한국의 에너지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소통 통한 정당성 확보가 가장 큰 동력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갈등관리다. 부안 방사선폐기물처리장 부지 선정 사례에서 나타났듯이 에너지 관련 시설이 들어설 지역 주민의 수용성을 확보하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 심각한 갈등이 발생한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원만하게 조정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모든 관계 부처, 의회와 시민단체의 입장을 경청하고 소통해야 한다. 언론을 통해 반영되는 여론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끈기를 가지고 절차를 준수하면서 소통해야 한다.

소통을 통해 확보한 정당성만이 일을 성취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임을 새겨야 한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관용의 에너지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조 석 현대일렉트릭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