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상의 기후행동

탄소중립 드림케팅·공포마케팅은 '이제 그만'

2022-05-25 11:54:35 게재
조영상 연세대 교수 산업공학과

최근 탄소중립과 관련한 다양한 기술들이 국내외에서 소개된다. 어떤 기술은 기존 기술 대비 효율성이 높아서 온실가스를 지금보다 덜 배출할 것으로, 또 어떤 기술은 기술 그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온실가스가 전혀 배출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들 기술 대부분은 아직 상용화나 실용화 단계가 아닌 개발 단계인 경우가 많고, 기술적 혹은 사회적으로 장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특정 기술을 선호하는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기술이 구현할 미래의 장밋빛 모습들을 묘사하며 해당 기술의 개발·보급·확대를 주장한다. 마치 소비자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며 꿈을 파는 마케팅기법 중 하나인 '드림케팅'(Dreamketing)과 비슷하다.

기술개발과 인프라구축이 100% 완료된 상황을 가정한 이상적 미래사회의 모습은 해당 기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 증가와 관련 업계의 기술개발 동기 부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환상은 높은 기대를 형성하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해당 기술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특히 탄소중립에서 베이퍼웨어(vaporware)가 나타나는 경우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퍼웨어란 언제까지 출시할 것이라고 소비자에게 약속했지만, 여전히 개발 중이거나 개발에 실패해 결국 출시되지 못한 제품을 의미한다.

기업 단위의 베이퍼웨어는 해당 기업의 신뢰 하락에 그치지만,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전환 과정에서 베이퍼웨어가 나온다면 그 원인이 기술개발 실패든 국민수용성 부족이든 이는 장기적 국가에너지정책과 전력시스템 전환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기술개발은 성공과 실패가 모두 발생할 수 있는 기술투자 행위라는 측면에서 베이퍼웨어가 될 만한 기술을 기반으로 한 탄소중립 정책과 로드맵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집단이동'에 의한 극단적 결론이 가장 위험

드림케팅과 달리 사람들이 인지하는 위험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공포마케팅' 역시 종종 목격된다. 다른 기술의 단점을 확대해 이로 인한 국민과 산업계의 피해를 보다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기술을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 이 경우 대부분 극단적인 상황 묘사가 동원되기도 한다.

단계적 원전 비중 감축을 '급격한 탈원전'이라는 표현으로 그 실질적 내용을 완전히 바꾸어 당장 전력가격이 엄청나게 인상되는 원전이 없는 한국 경제를 묘사하거나, 반대로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과대 해석하면서 탈원전 정책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것, 특정 신재생발전원의 높은 발전단가를 이야기하면서 신재생 중심의 전원믹스 개편을 반대하는 것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제시된 중장기적 계획들에 기반할 때 논리적 근거도 현실성도 빈약하다.

유토피아적 관점의 드림케팅과 디스토피아적 관점의 공포마케팅에 기반한 두 집단의 대화나 논의가 진행될 때 책임의 분산과 '집단이동'(group shift)으로 인해 극단적인 결과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일반적으로 집단의 의사결정은 개인의 의사결정과 다르다.

집단이동이란 집단의 논의와 토론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원래 개인이 가진 생각보다 극단적인 사례들을 이용하면서 집단이 도출한 결과가 원래 개인이 가진 생각보다 극단적으로 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탄소중립과 관련한 기술들에 대해 유토피아적 관점도 반대로 디스토피아적 관점도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객관적 평가와 합리적 의사결정이 중요

드림케팅과 공포마케팅의 대상이 되는 신재생 수소 원자력 등은 우리 전력산업이 안고 가야할 다양한 발전원 중 하나이며, 해당 기술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시나리오적 접근을 통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특히 에너지안보와 기술 특성을 고려할 때 특정 발전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저탄소·무탄소 전원들이 각각의 장단점을 상호보완하면서 외생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안정적인 탄소중립적 전력믹스의 관점이 요구된다.

탄소중립은 꿈이나 공포가 아닌 우리의 객관적인 현실과 기술수준, 대내외 여건, 국민의 수용성 등을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고려한 합리적인 논의에 기반해야 한다. 중차대한 국가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정보전달의 수준을 넘어 상상이나 공포를 전파하지 않았으면 한다.

조영상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