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사회적 대화 | ③빅딜 VS 스몰딜 VS 스몰패키지딜

새정부 노동시장 개혁, 개별과제묶음으로 접근을

2022-06-07 11:26:02 게재

'9.15 대타협' 해놓고 미실현, 노조에 경계심만 … "사회적 대화 의지, 분위기 조성이 전제"

경제사회 주체, 의제와 함께 사회적 대화를 이루는 마지막 퍼즐은 사회적 대화의 운용전략 즉 '판짜기'다. 의제는 개혁의 내용을 구성하는 몸통이긴 하지만 판짜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개혁은 한걸음도 떼기 어렵다. 지방선거가 여당인 국민의힘의 승리로 끝났지만 여소야대 국회인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사회적 대화가 노동시장 개혁의 '지렛대'가 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대화를 운용하는 방식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더 절실해지는 이유다. 사회적 대화의 운용 전략을 국내외 사례별로 조망하고 윤석열정부가 선택해야 할 사회적 대화의 '판짜기'를 제안한다.

2015년 9월 15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는 1년 여 동안 120여 차례 회의 등 '마라톤' 협상 끝에 104개 항목을 담은 '노동시장구조개선 대타협'(9.15 대타협)을 이끌어냈지만 4개월 만에 파기됐다. 왼쪽부터 (당시) 최영기 노사정위 상임위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최경환 경제부총리,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대환 노사정위 위원장, 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태기 단국대 교수. 사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제공


사회적 대화의 방식은 크게 3가지다. 빅딜과 스몰딜 그리고 스몰 패키지딜이다. 빅딜은 그야말로 큰 거래라는 뜻이다. 서로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키기 위해 경제사회 주체들 사이에 이뤄지는 큰 교환을 이르는 말이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핵심적 이해관계가 달린 임금 근로시간 등이 교환 카드다. 사용자쪽에서는 고용유지 및 확대 등을 교환 대상으로 삼는다.

◆독일 하르츠 개혁,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 = 선진국의 빅딜은 독일의 하르츠 개혁과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 등이 있다.

하르츠 개혁은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시절 시작한 노동시장 대개혁이다.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은 1982년 노동시장 유연화와 사회 안전망 확충으로 생활 안전성을 확대하는 조치를 교환했다. 실업률은 크게 떨어졌고 경제성장은 고공비행을 했다.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빅딜'은 두차례 있었다. 한번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있었다. 기업 구조개혁, 사회보장제도, 노사관계 및 노동시장 개혁 등 광범위한 이슈를 포괄하는 90개의 합의사항을 담았다.

핵심적으로는 노동계가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 등을 수용하는 대신, 사용자는 재벌개혁과 노동기본권 조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015년 9월 15일 체결된 '노동시장구조개선 대타협'(9.15 대타협)도 빅딜이다. 1년 여 동안, 120여 차례 회의 등 '마라톤' 협상 끝에 104개 항목에 이르는 큰 거래가 성사됐다.

'주52시간 단축'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 지역·업종별 개선방안 마련' '비정규직 남용 방지 대책' '임금체계 개편' 등 굵직굵직한 과제가 합의됐다.

하지만 정부의 과속으로 합의는 파기됐고 빛을 잃었다. 빅딜은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장점은 분명하지만,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의 수준을 고려할 때 빅딜을 통해 개혁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는 "정부가 지나치게 과도하게 해석하면서 9.15 대타협이 실현되지 않았고 사회적 대화도 중단됐다"며 "또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한번에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한국노총 등 노조에서 경계심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스몰딜, 국민적 관심도 떨어져 = 스몰딜은 그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개별 의제들을 논의해 하나하나 결론 내는 방식이다. 스몰딜은 대표적으로 문재인정부의 사회적 대화에서 주로 사용됐다. 직전 '9.15 대타협'이 합의 파기로 물거품이 된 데다, 사회적 대화가 손쉬운 의제부터 논의해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반영됐다.

실제 문 정부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합의한 17건은 대개 스몰딜로 이뤄졌다. '탄력적근로시간제' '한국형 실업부조제도' '과로사방지법' '근로자대표제 개선방안' 등 대부분 개별 과제 중심이었다.

빅딜이 가능한 회의체는 '양극화해소와고용+위원회'가 유일했지만 결과 없이 종료됐다.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있었지만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밀어내기' 합의였다.

스몰딜은 빅딜처럼 큰 거래가 실패했을 경우 초래되는 부작용이 크지 않고, 하나하나 현안을 개선해나가는 장점이 있다. 문 정부의 사회적 대화도 그런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의 힘은 참여 주체들의 합의만으로는 생기지 않는다. 합의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스몰딜은 그런 측면에서 국민적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몰패키지딜, 빅딜·스몰딜 보완 = 빅딜과 스몰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사회적 대화의 대안적 운용방식은 '스몰패키지딜' 방식이다. 연관성이 높고 노사 간 교환이 가능한 의제들을 중심으로 밀도 있게 패키지로 구성해 다루는 구조다.

스몰패키지딜은 '레고'(협상) 방식의 빅딜이라고도 한다. 중범위 패키지딜을 모아서 빅딜을 이뤄내는 방식이다. '원샷'의 빅딜, 파편적인 '스몰딜'을 보완하는 것으로 윤석열정부의 사회적 대화의 판은 스몰패키지딜이 적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흥준 교수는 "윤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 공공기관의 임금체계 개편을 예전 방식대로 빅딜을 추진하려고 하겠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스몰패키지딜로 가는 것이 맞지만 이를 위해서는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작은 것들을 해결하면서 풀어가겠다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워라밸 지원 방안 논의도 = 윤 정부의 사회적 대화를 스몰패키지딜로 구성한다면 어떤 패키지가 있을 수 있을까.

예컨대 고용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패키지로 묶는 '세대상생형임금체계개선위원회'를 생각해볼 수 있다.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이라는 인구전환에 대비하면서 저성장 시대에 지속하기 어려운 연공급제에 대한 대수술을 함께 논의할 수 있다.

국민연금 재정고갈 문제 해결을 위한 고용연장을 도입하는 대신, 연공성이 높은 1차 노동시장의 임금체계를 직무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세대들은 연공급에 대해 중장년 세대들과 생각이 다르다. 능력주의가 공정인 청년들은 일하는 만큼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세대별로 생각이 다른 임금체계에 대해 미래지향적으로 고민을 해야 한다.

'일과 생활 균형'(워라밸)을 중심으로 한 패키지도 가능하다. 이른바 '워라밸위원회'다. 전통적인 '9 to 6'(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근무형태, 초과근로에 대한 유연화와 보육, 여가 확대, 직무·전직 훈련 등을 함께 논의하는 패키지다. 젊은 노동자일수록 '워라밸'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 5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MZ세대(1981~2010년 출생) 10명 중 6명 이상(응답자의 66.5%)이 일자리를 선택할 때 '워라밸'을 가장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간이 임금이 되던 시대가 저물고 업종과 과업중심의 노동시장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선택근로제, 재택근로, 특별연장근로 등 업종에 맞고 노사가 동의한다면 다양한 방식의 근로형태를 선택하고 대신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획기적인 보육정책과 실질적인 직업훈련의 기회보장 등을 확대해나가는 새로운 패키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공기관, 은행권, 대기업, IT 게임개발 등 벤처기업들은 상당 수준 워라밸이 제도적으로 도입됐다"면서 "하지만 중소기업은 재정적 여력이 없기 때문에 워라밸을 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한 노동전환 패키지로 묶어서 = 또한 산업대전환 시대에 대비한 과제도 패키지로 묶어 논의할 수 있다.

대전환의 큰 흐름은 크게 디지털화와 기후변화다. 문 정부의 사회적 대화는 대전환에 따른 노동권 문제에 집중했다. 하지만 디지털화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플랫폼노동자들의 '안전판'을 만들고 디지털 산업 활성화 대책이 함께 논의 테이블에 올라야 한다.

탄소중립에 따른 화력발전산업, 내연기관차 부품산업, 정유산업 등의 산업전환 문제와 그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공정한 전환을 동시에 다뤄야 한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와 '중소기업의 중대재해 예방대책' '중소기업 구직난 해소방안' 등 중소기업과 관련된 의제를 패키지로 묶는 방안도 가능하다.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정부는 공정한 노동전환을 위해 구인·구직, 직무·전직 훈련 등 고용서비스 체계를 활성화, 현대화해 구조화된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결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위해 정부나 중앙 중심의 사회적 대화 체계뿐만 아니라 지역이나 업종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분권화된 시스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대화 최대한 조기 소환돼야 = 중요한 건 개혁의 시간표다. 개혁은 보통 정부 출범 초에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권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개혁 성공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윤 정부도 다르지 않다. 여소야대라는 벽이 높은 데다 노동시장 개혁은 노동계와의 일전을 벌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다른 개혁보다 어렵다. 사회적 대화를 속도감 있게 진행해 노사정간의 공감대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개혁을 위해서는 노동계 특히 대화를 중시하는 한국노총과의 관계 개선이 급선무다. 대선 과정에서 한국노총이 더불어민주당 지지선언으로 노정관계가 어색해졌다.

윤 정부는 노동계를 개혁의 동반자로 삼고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이뤄내야 한다. '노동'을 개혁대상으로 삼는다면 시작도 해보기 전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비정규직·중소기업·무노조 상태인 2차 노동시장 노동자는 1800만명이 넘는다.

검찰 출신 대통령이 얼마나 빨리 사회적 대화를 '소환'하느냐에 노동시장 개혁의 성패가 달렸다.

박태주 경사노위 전 상임위원은 "윤 정부가 사회 통합이나 사회적 합의를 추구해나간다는 적극적인 의지와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석열정부 사회적 대화" 연재기사]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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