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공전 장기화 … 민주당 '국회의 시간'도 멀어진다
의장·상임위도 없이 17일째 공백, 여야 모두 부담
교육부·복지부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 대기 중
법사위·예결특위 상설화·시행령법 등 뇌관 여전
◆원 구성 지연에 국세청장 임명 강행 =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김창기 신임 국세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김 청장은 2003년 국세청장 인사청문회제도 도입 이후 청문회 없이 임명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 국회가 소관 상임위조차 꾸리지 못해 인준 시한(6월 10일)을 한참 지나서도 청문회를 열지 못한 원인이 1차적이다. 박순애(교육)·김승희(복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시한(18일)도 목전이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국회 사정에 따라 '청문회 패싱'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으로선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견제수단을 시작도 하지 못하고 넘긴 셈이다.
민생 현안에 대한 대응도 늦어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14일 민생 안정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당 차원의 '민생우선실천단'을 발족했다. 단장은 박홍근 원내대표가 맡았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생우선실천단은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약속드린 유능하고 겸손한 민생정당을 향한 첫걸음"이라며 "물가와 화물자동차 파업부터 시작해 종합적인 민생안정대책을 마련하고 필요한 입법조치를 서두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국회 안에서 화물연대 파업의 핵심 쟁점인 안전운임제 등 입법 논의는 멈춘 상태고, 정무위의 가상자산시장 규제 관련 논의도 헛돌고 있다. 물가 급등으로 민생에도 비상등이 켜진 상태다.
◆법사위 대치, 여야 '네 탓' 공방 = 국회 공전 장기화의 책임을 두고 여야는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다수당의 권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며 야당 책임론을, 민주당은 "국회 정상화는 여당의 양보로부터 출발한다"며 여당을 탓했다. 법사위 배분을 둘러싼 공방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여야가 합의한 대로 원내 1당인 민주당이 국회의장을 가져간다면 법사위원장은 자당 몫이라는 점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14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과거 국민의힘도 다수당이었던 적이 있지만, 법사위는 전·후반기 모두 민주당이 맡았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야당을 존중하고 협치하기 위함이었다"고 강조했다. 권 원내대표는 또 지난해 국회법 개정을 통해 법사위 심사기한·범위를 한 차례 축소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더 축소하자는 것은 사실상 견제와 균형 기능 없애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법사위를 없애자는 말이 솔직해 보인다"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로 자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오거나, 또는 국회 내 상원 역할을 하는 법사위의 권한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1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힘에 법사위원장을 넘기기로 한 지난해 7월 합의는 원점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박 원내대표는 "전직 원내대표 간 합의는 그동안 상원처럼 월권을 행사해온 법사위의 기능을 정상화하라는 것이 전제였다"며 "그 전제가 된 여야의 약속이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 법사위원장 자리를 넘기더라도 법사위가 가진 '체계·자구 심사권'은 폐지해야한다는 조건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행정부 견제 입법에 여론 향방 주목 = 법사위 문제가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정부 견제를 위한 입법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조응천 의원은 14일 행정기관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소관 상임위가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윤석열정부가 야당이 반대하는 사안에 대해 시행령 등을 통해 추진하는 것에 제동을 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또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맹성규 의원은 현행 1년 단위로 운영되는 예결위를 상임위로 전환하고 3단계의 예산심의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민의힘 측 간사인 김성원 의원도 "민주당은 윤석열정부의 국정운영을 훼방 놓는 데만 골몰하고 있는 것 같다"며 '예산편성권 침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이 '국정 발목꺾기'라는 반발에도 불구, 민주당이 해당 법안들을 실제로 추진할지는 미지수다. 국회 내 갈등을 지켜보는 여론의 향방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협상보다는 여론전에 집중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국회 법사위원장 배분과 관련한 여론조사에선 '국민의힘이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게 나타났다. SBS·넥스트리서치 조사(8~9일. 1010명.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법사위원장 임명과 관련해 '국민의힘이 맡아야 한다' 56.1%, '민주당이 맡아야 한다' 32.6%로 나타났다. '정부 견제'라는 민주당의 명분보다 '여야 약속'이라는 국민의힘의 주장에 공감하는 응답이 높았다.
이와 관련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여당은 실리를, 야당은 명분을 가져야 산다"면서 "국회의장을 민주당이 맡으면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했다. 박 전 원장은 15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야당에게 가장 강력한 투쟁장소는 국회이니만큼 순리대로 풀어가야 한다"면서 "국회 원구성을 대통령과 연계할 것이 아니라 국회 안에서 의장과 법사위원장은 상대 당이 각각 맡고 실무적 문제를 협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