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급등에 대출 부실화 높아져 … 소상공인 채무조정 시급

2022-06-22 11:05:23 게재

14년 만에 처음으로 '대출금리 8%' 시대 예상

"정부 대책은 일시적 상환연장으로 한계 뚜렷"

인수위서 검토된 '배드뱅크' 국정과제서 빠져

국내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대출금리 8%'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한꺼번에 0.75%포인트 인상) 탓에 다음달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은행도 '중립금리' 이상 수준의 금리인상 필요성을 처음 언급했다.


자영업자 부채는 2021년 하반기에 이미 900조원에 육박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부채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기준 1인당 자영업자 대출액은 3억5000만원으로 비자영업자(9000만원)의 거의 4배 규모다.

만기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등 코로나19 금융 지원이 오는 9월 종료되면 소상공인 대출 부실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소상공인 채무조정 방안이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해외 각국에서는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채무조정에 나서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의 부채를 탕감해 주는 특별구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특별구제제도 운영 = 소상공인 채무조정은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첫번째 과제인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완전한 회복과 새로운 도약'에 포함돼 있다. 담보·보증대출, 부실우려 채권까지 종합·선제적으로 지원하는 긴급구제식 채무조정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16일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소상공인 채무조정 계획을 내놓았다.

채무조정을 위해 10월부터 연체채권을 매입하는 차주별 맞춤형 채무조정 프로그램 운영하기로 했다. 상환일정 조정과 상환기간 등에 따른 조정금리 차등화, 연체채무에 대한 원금감면 등이다. 또 소상공인진흥기금 대출의 경우에도 대출상환이 어려운 소상공인 원금을 감면할 수 있는 채무조정 근거 규정을 마련한다.

9월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에 지원했던 만기연장,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 종료에 대비해 저금리 대출 전환 정책을 추진한다. 정부는 금융권 고금리 대출의 저금리 전환을 위해 총 8조7000억원 규모의 보증·융자를 공급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신용보증기금이 각각 올해 7월과 10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특히 신용보증기금의 특례보증 8조5000억원을 통해 은행·비은행 고금리 대출(금리 연 7% 이상)을 저금리 대출(금리 연 4~7% 수준)로 전환한다. 성실상환 중인 소상공인 대상 고금리 비은행권 대출(금리 연 12~20% 수준) 2000억원을 소진기금 융자(금리 연 4~7% 수준)로 전환한다.

정부의 채무조정 방안에 소상공인들은 실망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19일 논평을 내고 온전한 손실보상과 함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지원정책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촉구했다. 연합회는 "정부는 소상공인의 금융대출 만기연장과 원리금 상환유예를 4차례 실시했다"면서 "그러나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일시적인 채무상환 연장은 소극적 지원일 뿐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김대중정부부터 채무조정 시작 = 특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소상공인 채무조정 방안으로 검토했던 '배드뱅크'(bad bank)가 윤석열정부 국정과제에서 빠졌다. 배드뱅크는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는 부실채권이나 자산을 처리하는 기관이다. 역대 배드뱅크는 위기상황마다 기업과 개인의 부채문제를 해결해 경제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전문가들과 소상인들이 소상공인 부실채권 해소 방안으로 '배드뱅크' 도입을 거론하는 이유다.

소상공인 채무조정은 김대중정부 때 처음으로 시작했다. 김대중정부는 IMF 이후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방지하기 위해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설립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배드뱅크로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운영됐다. 기금재원은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와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2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다. 매입채권은 금융기관이 보유한 부실채권과 기업의 회사채를 대상으로 했다.

노무현정부는 '한마음금융'을 운영했다. 한마음금융은 개인 신용불량자를 구제하기 위한 국내 최초 배드뱅크다. 캠코와 함께 620개 금융기관이 2조원의 초기재원을 마련해 2004년 5월부터 6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했다.

노무현정부는 2005년부터는 두번째 배드뱅크 '희망모아'를 한마음금융의 연장 프로그램으로 추진했다. 재원은 한마음금융의 금융기관 출연금과 회사채 발행으로 마련했다. 취약계층 원금의 최대 30~50%를 감면했다. 연체중인 채권을 최장 10년간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이명박정부는 신용회복기금(2008~2013년)과 연합자산관리(UAMCO, 2008년~현재)를 설립했다. 신용회복기금은 720만명의 신용불량자의 정상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됐다. 캠코 대여금과 부실채권정리기금 출연금(6760억원)을 재원으로 상환기간연장과 대출이자조정을 지원했다.

UAMCO는 금융기관의 누적된 부실채권을 민간주도로 정리하기 위해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됐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을 추가해 현재 8개 금융기관이 주주은행으로 활동하고 있다. 범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부실회사채를 매입하고 일정기간 뒤 환매해 수익을 창출한다.

박근혜정부는 신용불량자의 신용회복을 지원하고 서민의 과다한 부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국민행복기금(2013년~현재)을 도입했다. 총 1억원 이하의 대출을 6개월 이상 연체한 신용불량자를 대상으로 지원했다.

◆금융기관 책임있는 자세 필요 = 역대 정부에서 추진했던 채무조정은 의미있는 성과에도 한계를 나타냈다.

역대 배드뱅크는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지원했으나 소상공인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사례는 없었다.

또 사후지원 방식을 채택해 기업과 개인의 부채를 사전에 해결하는데도 소극적이었다. 지원 방식도 '상환기간 연장' '이자율 조정'에 국한하고 있어 사회구조적 관점에 대한 고려도 부족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과거 부실채권정리기금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는 견해다. 부실채권정리기금은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설치됐던 기금으로 2013년 2월 청산했다. 부실 조짐을 보이는 기업의 회사채를 선제적으로 매입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정부는 1997∼2002년까지 5년간 39조2000억원을 투입해 180여개 금융회사의 부실채권 111조6000억원을 인수했다.

최승재 의원(국민의힘)은 "앞으로 금리가 급등하면 많은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며 "저신용 소상공인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교수 출신 중소기업 전문가는 "소상공인 손실보상이 땜질식으로 진행돼 아쉬움이 크다"며 "중·장기적 차원에서 소상공인 재무 건전화, 사회구조 혁신 방향을 가지고 채무조정과 구조조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그동안 금융기관은 소상공인 대출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누렸다"면서 "소상공인 부채조정에 책임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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