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현장 리포트

편리한 반품이 초래한 역설

2022-06-28 10:44:56 게재
김찬송 위스콘신대

블랙프라이데이(11월 마지막 주 금요일)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연휴에 이르기까지 한달 동안 미국은 거대한 쇼핑국가로 바뀐다. 소매업체들은 1년 매출의 70%를 이 시기에 판매한다고 한다. 온라인으로 쉽게 물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고대할 정도의 행사가 됐다. 특히 2021년 연말 미국인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억제했던 소비욕구를 마음껏 발산했다.

전미소매연맹(National Retail Federation)에 따르면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붕괴, 노동력 부족 및 지속적인 코로나 사태 등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2021년 11~12월 연휴 기간 소매매출은 전년 대비 14.1% 증가한 8867억달러로 역대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어도비(Adobe) 분석에 따르면 같은 기간 온라인으로 거래된 소매물품은 2050억달러로, 이 역시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한다.

억눌렸던 소비욕구 마음껏 발산

하지만 이 기간 미국 내에서 반품되는 물품의 양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 운송전문업체 유피에스(UPS)는 연말 쇼핑시즌이 끝나고 본격적인 새해 업무가 시작되는 1월 2일을 '국가 반품의 날'로 지정할 정도다. 블랙프라이데이부터 반품 관련 택배 규모가 점차 증가해 1월 2일이 되면 하루 최대 200만건에 달하는 반품을 처리해야 한다. 2021년 연휴 시즌 UPS가 처리한 반품은 6000만건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연말 온라인으로 물품을 구매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명 중 1명 이상은 운송업체를 통해 반품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5명 중 1명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이미 반품을 처리했다고 응답했다. 전미소매연맹 조사에 따르면, 2021년에 반품된 물품의 총가치는 약 7600억달러다. 이는 2020년 미국 국방비(7500억달러)를 넘어선 금액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반품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반품 및 환불 과정의 간소화 및 편리함 덕분이다. 별다른 조건 없이 쉽게 반품이 가능해진 것은 물론, 몇몇 업체는 반품을 요구하는 소비자에게 전액 환불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온라인 소매업체로 유명한 아마존은 소비자가 별도의 포장을 다시 하거나 라벨을 인쇄하는 등 복잡한 절차 없이 콜스, UPS, 홀푸드마켓 등 오프라인 업체를 통해 쉽게 반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이같이 편리한 반품 혹은 환불 절차가 오히려 미국 경제의 어두운 이면을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부 반품된 품목은 재사용이 불가능해 바로 쓰레기로 처리돼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반품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업체인 옵토로(Optoro)에 따르면 2021년 연말 이후 반품된 물품 중 270만톤이 매립지에 폐기됐다. 이는 미국인 330만명이 일년 동안 버리는 폐기물의 양과 비슷하다. 16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미국에서만 보잉 747기 5600대분의 물품이 폐기돼 소각된다. 유행이 지나 재고상품으로 이월된 의류와 전자제품 역시 일정한 시간이 지나도 팔리지 않을 때는 소각장 신세로 전락한다.

온라인 구매를 선택한 대다수 소비자는 적은 비용으로 쉽게 교환할 수 있는 경제성과 편리성을 모두 기대하기 때문에 소매업체는 어쩔 수 없이 소비자가 원하는 반품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 반품처리 과정 역시 소비자가 기업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구매 품목 20%가 반품 및 환불

전미소매연맹은 2021년 온라인 구매 품목의 약 20%가 반환됐다고 추정한다. 제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거나 테스트할 수 없어 짐작만으로 구매했던 온라인 물품을 반품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구매는 오프라인 상점에서 구매하는 경우보다 반품할 확률이 3배 가까이 높다.

반품이 가장 빈번한 품목은 의류다. 소비자들은 온라인으로 다양한 치수의 옷을 모두 구매한 뒤 그중 본인에게 가장 적당한 크기의 옷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반품한다. 의류 품목의 반품이 다른 제품들에 비해 더 빈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품이 넘어오면 소매업체들은 해당 품목을 재평가하고 재포장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새 물품에 가깝다고 평가된 물품은 대부분 처음과 비슷하거나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재판매된다. 그러나 반품된 물품 대부분은 이미 일정 시간 사용됐거나 손상됐을 가능성이 크다.

소매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반품된 물품 중 원래 가격으로 재판매할 수 있는 경우는 절반이 되지 않는다. 경제적 손익을 고려했을 때 반품된 물품을 재판매하는 것이 더 손해라고 판단되면, 결국 그 물품은 매립지로 가야 한다.

업체들은 반품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여러가지 자구책을 모색중이다. 유통기업 갭과 월마트는 소비자가 온라인을 통해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에 투자하고 있다. 스마트폰 앱으로 소비자의 신체와 가장 유사한 형태의 3D 아바타를 구현해 옷을 입었을 때 어떻게 보일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월마트가 지난해 인수한 지킷(Zeekit)은 소비자가 본인사진을 업로드해 직접 가상모델을 만든 뒤 구매하고자 하는 의류가 본인과 잘 어울리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여성복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코바엠은 3D룩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소비자가 본인의 신체치수에 맞는 옷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몇몇 소매업체는 소비자로부터 반품을 받는 대신 전액 환불로 처리한다. 물품가격이 낮다면 반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운송비용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구나 주방용품, 유아용 의자, 보행기, 유모차 등 가격이 저렴하면서 부피가 큰 품목에 적합한 방식이다.

월마트 아마존 등의 소매업체를 대행하는 반품 전문 처리업체 고티알지(goTRG)는 매년 1억개 이상의 반품 품목을 이러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소비자의 반품 요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자 스스로 반품이 아닌 다른 방안으로 물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반품 없는 환불' 조치는 구매자들이 반품하고자 했던 물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하거나 물물교환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기록적인 고유가에 반품 늘어 이중고

이처럼 여러 업체가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최근 미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는 힘들다. 특히 기록적인 고유가 사태로 소매업체들의 반품 문제는 더 악화되고 있다.

최근 타겟(Target), 월마트, 갭, 아메리칸 이글 아웃피터스(AEO) 등 미국의 거대 유통체인들은 재고물품 때문에 골치 아픈 상황에 놓였다. 운동복을 비롯한 각종 의류, 부피가 상당한 가구 또는 어린이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을 저장하는 데 드는 비용은 상당하다. 창고에 쌓인 재고를 처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고유가 때문에 운송비용은 급증하고 반품된 상품은 물밀듯 들어오고 있다. 저장비용과 운송비용 부담이 모두 커지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매업체 10곳 중 8곳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반품되는 품목의 수량이 팬데믹 이전과 비슷하거나 늘었다고 응답했다. 향후 반품과 관련된 문제가 미국 경제에 중요한 이슈가 될 것임을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