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아베 그늘 벗고 리더십 시험대

2022-07-11 11:06:07 게재

치솟는 물가에 '아베노믹스' 수정 가능성 … 개헌·외교안보 큰틀 유지속 속도는 유동적

일본 집권여당 총선서 압승

포스트아베, 자민당 후폭풍

일본 집권연립여당이 10일 치러진 참의원 총선거에서 과반을 넘어 압승했다. 지난해 10월 일본 100대 수상으로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내각과 여당에 대한 장악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향후 3년간 전국적 선거가 없는 이른바 '황금의 3년'이 기다리고 있어 특단의 이변이 없으면 실각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총선 이후 일본 언론은 기시다정권의 향후 정국운영과 관련 △개헌 시기와 내용 △외교안보 정책과 방위력 증강 속도 △금융완화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의 지속 여부 △포스트 아베 자민당 권력지형 등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현안을 두고 야당은 물론 여당 안에서도 이견이 있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아베의 숙원, 개헌 속도와 방향 논란

참의원 총선에서 자민당을 비롯한 개헌추진세력은 248석 중 최소 177석을 확보해 개헌의석(166석)을 넘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도 개헌세력은 전체 465석 가운데 352석(75.7%)으로 개헌선을 크게 웃돌았다. 중의원과 참의원 의석 2/3 이상이 발의하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개헌절차가 언제라도 시작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일본 언론도 11일 일제히 개헌세력이 크게 약진했다는 점을 집중 보도했다. NHK는 이날 "개헌에 적극적인 4당의 의석이 헌법개정에 필요한 2/3 의석을 웃돈다"고 했다. 개헌에 대한 국민여론도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5월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개헌 찬성이 56%로 반대(37%)에 비해 19%p 높았다. 이런 추세는 대부분 여론조사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된다.

국회내 논의도 기시다정권 들어 활발하다. 아베정권 때는 입헌민주당과 공산당 등 야당의 보이콧 전술로 중·참의원 헌법심사회 논의가 겉돌았지만 올해 들어서만 중의원(16회)과 참의원(6회)에서 여러차례 회의를 열었다. 특히 중의원은 정기국회 예산심의 중이거나 야당이 반대하면 심사회를 개최하지 않던 관례도 깨고 밀어붙이는 추세다.

남은 문제는 개헌 시기와 내용으로 좁혀진다. 향후 총선거가 없는 이른바 '황금의 3년'이 개헌을 추진하기에 적절하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국회 논의와 발의를 거쳐 국민투표까지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되는 헌법 개정은 국론을 분열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집권세력은 정권을 내놓고 추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황금의 3년'이 적절한 타이밍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가 있는 2024년 하반기 이전까지를 유력한 시기로 꼽는 분위기가 강하다. 자민당은 이번 총선 공약에서 '조기 개헌'을 내세웠다. 기시다 총리도 10일 밤 문화방송 인터뷰에서 "국회에서도 오래간만에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 개헌 발의에 필요한 2/3 결집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며 "가능한 빨리 발의해 국민투표로 연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개헌추진세력 내부에서도 시기와 방향을 두고 차이가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헌법의 핵심인 9조를 개정해 자위대를 명기하자는 주장이지만, 공명당과 국민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은 10일 밤 NHK 인터뷰에서 "헌법개정 원안의 국회제출, 발의를 목표로 개헌에 적극적인 정당과 어떤 항목을 우선할지 어떤 일정으로 진행할지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민당 내부에서도 속도를 두고 미묘하게 갈린다. 아베 전 총리의 노선을 잇겠다고 자부하는 타카하시 사나에 정조회장은 10일 "아베 전 총리의 유지는 헌법개정이고 국방력의 강화"라며 "동지들과 유지를 계승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속도감 있는 추진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후쿠다 타츠오 총무회장은 "개헌도 있지만 우리가 당장 처리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했다.

기시다 당면한 과제는 경제와 민생

이번 선거기간 최대 쟁점은 치솟는 물가 문제였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등 야당은 '기시다 물가'라는 프레임을 통해 정권 무능을 생활물가 급등의 원인으로 꼽았다. 집권세력 내부에서도 물가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중대한 현안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통계상 2.1% 수준이지만 전기 및 가스요금, 식탁물가, 교통비 등 서민생활과 직결된 물가는 두자릿수 안팎에 이르는 수준이다.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적인 물가상승률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잃어버린 30년' 동안 물가와 임금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던 일본인 입장에서 최근 물가는 폭등 수준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치권과 금융시장에서는 급격한 엔저와 고물가를 불러오는 현재의 초저금리 금융완화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 달러당 140엔이 넘어서면 일본은행이 장기금리를 연 0.25% 상한으로 유지하는 정책을 바꿀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해외투자자를 중심으로 일본 10년물 국채를 내다파는 등 금리인상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기시다 총리가 2023년 4월 임기인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후임인사에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드러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11일 "내년 4월 구로다 총재 임기를 앞두고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차원이 다른 금융완화'를 지속할 것인지 출구전략을 찾을지 관심"이라며 "일본은행 총재 후임인사가 큰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외정책의 향방도 관심이다. 기시다정권은 기본적으로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위한 쿼드체제의 강화, 인도 및 동남아, 남태평양 섬나라 등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기존 노선을 지속할 전망이다. 방위비를 2027년까지 GDP의 2%까지 늘리는 문제도 지난 6월 재정운영방침에서 확정했다. 아베 전 총리 등 자민당 우파세력의 강력한 주장이 관철된 결과다.

다만 구체적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아베 전 총리와 같은 거친 방식은 자제할 가능성이 있다. 대한국 및 대중국 외교에서도 상대적으로 대화를 중시할 수 있다. 특히 한국과 어떤 속도로 관계개선에 나설지 주목된다. 예컨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동의 대표적 장소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역사문화로 신청하는 과정에서 기시다 총리 등 온건파는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유보할 것을 검토했지만 아베 전 총리가 앞장서 이를 바꾸기도 했다.

대외관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기시다파 2인자인 하야시 마사요시 외무상이다. 하야시 외무상은 중의원 야마구치 3구 출신으로 아베 전 총리(야마구치 4구)와는 가문 차원의 전통적인 라이벌 관계다.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하면서 하야시 외무상의 외교노선 입지가 커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 분열하나

내각제 권력구조인 일본은 집권 자민당의 권력 향배가 중요하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총리를 선출하는 자리다. 따라서 자민당 총재 자리를 놓고 벌이는 파벌간 권력투쟁의 역사가 전후 일본 정치의 가장 큰 상수였다. 아베 전 총리는 자민당에서 가장 큰 파벌인 세이와연구회(국회의원 약 95명)를 주도하면서 퇴임 이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에 비해 기시다 총리의 파벌은 당내 제 4파벌(약 45명)에 그친다"며 "아베 전 총리나 아베파를 무시하고 자민당의 정책과 인사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은 구조였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당내 역학구도에서 아베 전 총리의 갑작스런 죽음은 향후 자민당 권력구도의 변화를 동반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향후 진로에 관심이 집중된다. 일본언론은 차기 리더가 뚜렷하게 부상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아베파의 분열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아베 전 총리는 지금까지 파벌 내부의 2인자를 키우지 않았다는 평가다.

자민당 권력지형도 변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 수혜자는 기시다 총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퇴임 후에도 인사와 정책 등에서 시어머니 역할을 하던 아베 전 총리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당과 내각에서 인사권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아베파를 각개격파하거나 다른 파벌과 물밑으로 연대하는 등을 통해 세력을 확장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아사히신문은 11일 "아베 전 총리는 7년 8개월 총리를 하면서 90명이 넘는 당내 최대파벌의 영수를 맡은 보수세력의 상징적 존재로, 기시다의 리버럴 파벌과 대척점에 있었다"면서 "그런 존재가 돌연 사라지면서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내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또 "'황금의 3년'을 손에 쥔 기시다 총리가 그 입구인 당과 내각의 인사에서 어떤 메시지를 낼지 주목된다"면서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 총리가 그간 하고 싶었던 것을 하려는 것이 총리관저의 동향"이라고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11일 기시다 총리가 8~9월쯤 내각개편과 자민당 고위당직자에 대한 인사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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