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말하는 산재예방 ⑦

위험불감증

2022-07-19 11:07:09 게재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

이천 냉동창고 화재, 광주 주상복합건물 붕괴 등 대형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많은 언론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용어가 '안전불감증'이다.

그리 잘된 조어가 아니다. 말은 의사소통 도구여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같은 것을 머리에 떠올리면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의미를 갖는 단어들을 조합한 용어가 각 단어들의 의미를 더한 것과 조합된 용어 전체의 의미가 부조화되는 것은 의사소통의 정확성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 중 하나가 '안전불감증'이다. 문자적 의미 합은 '안전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인데,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그와 반대로 너무 안전하다고 느끼는 즉,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위험불감증'이라는 조어가 더 적절할 것 같다. 이런 생각에서 '위험을 보는 것이 안전의 시작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위험 불감 사고

꽤 시간이 흘렀지만 같은 기제의 사고들이 여전히 반복되는 사망사고가 있다. 충북 청주시의 한 농지개량공사 현장에서 농지의 테두리에 수로를 만드는 작업 중에 발생된 사고였다. 공장에서 제작된 2m 길이의 ㄷ자형 콘크리트 수로관들을 농지 테두리 수로의 위치로 펼쳐놓는 작업을 굴삭기 1대로 기사와 보조작업자 2명이 수행했다.

한 구석에 쌓여 있는 수로관들을 보조작업자가 1개씩 와이어로프로 묶어 굴삭기 버킷 뒤편에 있는 걸이용 후크에 걸어주면 굴삭기로 수로의 해당 위치까지 운반한다. 굴삭기 기사가 운반한 수로관을 지면에 내리면 보조작업자가 굴삭기 버킷 후크에 걸어놓은 와이어로프를 풀어내 마무리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쌓아놓은 수로관을 각각의 위치로 굴삭기로 운반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작업이었다. 같은 작업의 반복이 7일째 되는 날에 사고가 일어났다.

수로관을 매달고 내려놓을 위치로 운반한 굴삭기 기사가 수로관을 지면에 내려놓을 때, 수로관이 미처 지면에 닿기도 전에 보조작업자가 굴삭기 버킷 하부에 들어와 내려오던 굴삭기 버킷에 머리가 부딪혀 사망했다. 사고 순간 굴삭기 기사는 굴삭기 버킷과 운반 중이던 콘크리트 수로관에 가려진 보조작업자의 움직임을 정확히 볼 수 없었다.

작업 초기에 기사와 작업자는 작업자와 장비의 부딪침에 대해 상당한 사고 위험을 인식하게 마련이다. 이후 작업이 반복되면서 작업에 익숙해짐과 반비례해서 위험에 대한 인식수준은 떨어지게 되고, 두 사람의 위험 불감이 겹쳐지는 위치와 시각이 사고발생의 조건이 된다.

나의 직업적 습관 탓인지, 생산현장에 가면 작업자들의 태도와 분위기를 민감하게 관찰하게 된다. 다녀온 대형터널 현장을 2주 만에 다시 나간 일이 있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터널 내에서 낙석 위험이 있는 천정부를 두리번거리던 들어가던 작업자들이 2주 후에는 터널 내에서 서로에게 농담을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위험 인식은 그렇게 해소되어가는 것이 인간 본성이다.

안전의 문화화

얼마 전 살기등등한 흉악범들에게 몰려 죽기살기로 도망치던 꿈에서 깨어났다. 깨어나서 심하게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을 손으로 느끼며 이렇게 심장마비에 이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과 마음은 뇌에서 일어나는 생리현상이고 다른 신체부위와 상호작용을 한다. 스트레스가 많은 병리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험 인식은 불안감과 더불어 아드레날린 분비로 흥분과 함께 인체를 긴장 상태로 만드는 스트레스다.

이를 고강도로 장시간 유지하는 것은 건강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생존 기제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또 되도록 빠른 속도로 이를 감쇠시킨다. 이런 기제로 인해 사고 예방을 위해 단순히 노동자들의 안전의식을 높이려는 많은 노력들은 구호에 그치고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거론되는 대안이 안전문화, 즉 안전을 문화화하는 것이다.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도심의 행인들이 속옷 차림으로 대로를 활보하지 않는다. 이것이 문화의 통제기능이다. 문화라는 개념에는 시킨 사람도 없고, 본인이 고민하지 않아도 작동되는 통제기능이 포함되어있다. 국가적 안전 수준의 향상을 위해서 기업경영에서 작업현장까지 문화가 관계자들의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안전의 문화화를 범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