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교적 보호권 행사해달라"

2022-07-20 11:24:15 게재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미쓰비시 등 직접 교섭 촉구 의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우리 정부에 대해 "(피해배상을 위한)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피해자측과 일본 기업 간 직접적인 협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달라는 의미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명시적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미쓰비시중공업 등 강제징용 피해자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4일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인정한 한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 발동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법원 판결 이후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에게 공개적으로 외교적 보호권을 요청한 것은 최초이며, 구체적으로 피해자측과 일본 기업 간 직접 협상이 성사될 수 있기 위한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회견 하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 |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가 14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민관협의회 2차 회의를 마치고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외교적 보호권'이란 자국민이 외국에서 위법·부당한 취급을 받은 경우 그의 국적국이 외교절차 등을 통해 외국 정부를 상대로 자국민에 대한 적당한 보호 또는 구제를 요구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권리다. 대법원은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대한민국 개인의 일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않았다"고 결론냈다. 그러나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미쓰비시중공업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외교적 보호권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고 일본에 대한 개인적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봤는데, 반대의견에서 "청구권협정으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외교부가 공식적 입장을 낸 것은 아니지만, 최근 외교부 관계자는 강제동원 관련 2차 민간협의회에서 "외교적 보호권 성립요건에 해당하지 않지만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관계자는 "불법행위의 주체가 국가(일본 정부)가 아닌 기업(미쓰비시중공업 등)이기 때문에 외교적 보호권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외교적 보호권은 △가해국의 위법행위에 의해 손해가 발생하고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는 국가와 피해자인 개인이 손해발생 시점부터 외교적 보호권 행사 시점까지 동일한 국적으로 연결되고 △개인이 국내법상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구제 절차를 완료한 경우 행사될 수 있다. 국민이 외교적 보호를 청구하는 경우에도 국적국은 외교적 보호를 개시할 국제법적 의무는 없고, 외교적 보호 요청이 없어도 국적국은 재량으로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결국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인정되는 사안일 경우에도 행사 여부는 재량이다.

임 변호사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요건이 충족함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바가 없고, 일본 최고재판소까지 소송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결국 외교부가 강제동원 한국 내 판결이 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중공업과 같은 일본 기업을 피고로 선고됐기 때문에 '가해국의 위법행위'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임 변호사 의견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일본 기업들과 공동불법행위를 한 사실이 명백하다는 것이 임 변호사 주장이다. 2012년과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비추어보면 일본 정부가 전쟁 수행을 위해 한반도 각 지역에서 관 알선을 통해 인력을 모집하고, 직속기구인 철강통제회가 일본정부와 협력해 한국인을 동원했고, 일본기업에서의 강제노동 과정에서도 일본 경찰이 공장을 방문해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에게도 협박했다. 그는 "사법부는 사실인정 측면에서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의 공동불법행위라는 것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2018년 10월과 11월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판결했지만 일본 기업들은 배상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경우 법원의 한국 내 자산 매각명령에 불복해 4월 대법원에 재항고한 상태다.

안성열 기자/변호사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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