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석 칼럼

도전받는 세계화

2022-08-11 10:34:22 게재
조 석 현대일렉트릭 대표이사

토마스 프리드만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그리고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에서 멋지게 그려냈던 전 인류가 하나가 되는 세계화(Globalization)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세계화 시대는 개인이 국가보다 중요하며, 개인이 어느 국가에 속하는지보다 각자의 경쟁력이 얼마나 뛰어난지가 성패를 좌우하던 시대였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에는 개도국의 역량이 뛰어난 인재가 선진국의 평범한 시민보다 더 많이 누릴 수도 있었다.

국가는 글로벌 자본의 침투로부터 개인을 보호해 줄 수 없었고, 자유로운 경쟁만이 시대를 관통하는 규범이었다. 우리에게 세계화는 IMF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사회 전 분야가 국제기준(Global Standard)에 맞게 한 단계 올라가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시대가 저물고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가 당연히 받아들이던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한 결정적인 사건은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다. '하나가 된 세계'는 감염병이 전 인류를 위협하기에 너무나 좋은 여건이었고, '평평한 세계'는 오히려 인류에게 치명적 결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난 2년 간 인류는 감염병과의 싸움을 어느 정도 극복해냈지만, 새로운 팬데믹이 다시 올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씻어버릴 수는 없었다.

원자력이냐, 신재생이냐 다툴 시간 없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인류에게 변화된 삶의 방식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세계는 각자도생의 생존방식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세계화 이후 시대의 국가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서 볼 수 있듯이) 진영 간 편가르기가 깊어지고, 기업은 효율보다는 안정적 공급선 확보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될 것이다.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는 배터리 원료가 되는 리튬광산에서부터 자동차 판매망까지 직접 운영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포드자동차가 시작한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공정별 분업의 시대가 전 분야를 내재화하는 테슬라방식(Teslafication)으로 변하고 있다.

공급망이 무너져 돈이 있어도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필요해진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지금 도전받는 세계화 시대 이후에 나타날 새로운 세계를 대비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러한 징후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분야는 에너지 분야다. 러시아의 자원에 지나칠 정도로 크게 의존하는 유럽 국가는 지금까지 추진하던 에너지 수급 방식을 다시 검토해야 할 상황이 됐다. 유럽은 다가오는 겨울에 얼지 않고 지낼 천연가스를 확보해야 한다는 당장 풀어야 할 큰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은 셰일가스를 자산으로 에너지 독립을 할 수 있겠지만 상당 기간 전통 원유의 수급에도 정책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직접 방문해야 했던 이유다. 이제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는 주요국 대외정책의 공공연한 목표가 되고 있다.

도전받는 세계화 시대는 좁은 영토에서 무역에 의존해 국가를 운영하는 우리에게는 19세기 말 이후의 가장 큰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 시대 자유 무역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우리에게 '세계화 이후'라는 새로운 시대는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원자력이냐 신재생이냐"를 다툴 시간이 없다는 의미다.

화석연료를 포함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원을 선택가능한 대안으로 두고 최적의 믹스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수요 측면에서의 다양한 정책도 필수적이다. 폭발하듯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에너지가격 정책, 더 적은 에너지를 투입하고 더 큰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고효율 기술개발, 그리고 전 국민과 모든 경제주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에너지절감 정책 등이 조화있게 만들어지고 효과있게 집행되어야 한다.

역사 통해 배운 국가만이 미래 감당

작가 김 훈은 소설 '남한산성'에서 우리 역사의 치욕의 시간을 다시 그려낸다. 겉으로는 척화파와 주화파의 치열한 다툼을 그렸지만, 내면에는 그 안에 담긴 정치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명분과 이념보다는 백성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호소며,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명분에 빠져서 "나라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말로 다툴 때 진정한 "나라의 근본"인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는 역사를 보여준다.

시대는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역사를 통해 배운 국가만이 미래를 감당할 수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밑바닥에 숨어 있는 이해관계의 실체를 분명하게 읽어내고 그것을 조정하는 역량과 경륜이 필요하다. "이러다 다 죽어"가 되기 전에 적절히 타협하는 양보와 절제의 미덕이 필요한 시대다.

조 석 현대일렉트릭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