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괴물'과 '변이'를 통한 유전학 알아보기

2022-08-12 10:29:15 게재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2009년은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인데다 '종의 기원' 출간 150년이 되는 해였다. 그해 열린 한 토크쇼에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과 DNA 구조 발견의 영웅 제임스 왓슨이 마주 앉았다. 윌슨 교수가 "앞으로 1000년 후 현대생물학의 가장 중요한 두개 랜드마크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1859년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1953년 왓슨과 크릭의 DNA 구조 규명 논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왓슨 박사는 다음과 같이 응대한다. "그건 맞는 말인데 제3의 랜드마크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레고르 멘델이다."

2022년은 그레고르 멘델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념우표를 냈으나 아는 국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체코 영토인 브루노라는 도시의 수도원 사제였던 멘델은 그 수도원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재배해오던 순종 완두콩들을 형질별로 분류해 체계적으로 교배하는 실험을 정교하게 시행했다. 멘델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완두콩들의 형질을 정량화하는 놀라운 실험을 수년 동안 진행해 정리한 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논문의 위대함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멘델은 유전법칙의 위대한 발견 이후 생물학자가 아닌 수도원 원장으로 은퇴했지만 그 후 재발견돼 '멘델의 유전법칙'으로 명명된 유전학의 기본을 제공한 '유전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200주년 생일인 2022년 7월 20일을 기념해 현지에서도 심포지엄과 다양한 축제가 열렸다. 필자가 그 현장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행운이었다.

괴물도 생물학에서는 유용하다

우리나라에서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부정 사건이 터졌을 때, 당시 우리 국민 대부분은 아주 어려운 생물학 용어인 '테라토마'를 알게 됐다. 테라토마는 기형종이라 부르는 암의 일종이다. 줄기세포의 분화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실험에서 면역력이 없는 생쥐에 줄기세포를 주입해 테라토마가 형성되면 다양한 세포로의 분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는 기준으로 쓰였다.

테라토마의 어원은 '괴물'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괴물을 통해 줄기세포 효능을 검증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 괴물은 암 종이기에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지만 유용한 연구도구가 되었으니 '괴물'도 그 용도에 따라 쓸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멘델이 조사한 완두콩의 형질을 보면 꽃의 색깔, 콩껍질의 주름, 콩깍지의 주름 등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은 차이들인데, 이들을 정교하게 분석한 멘델의 눈에는 다른 모양이나 색깔의 콩은 귀여운 '괴물'이었을 것이다. 이때 이들 괴물의 기본이 '변이'이다.

새로운 생물종의 진화는 개체들의 다양성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럼 개체들의 다양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다양성의 근본이 되는 것이 유전물질의 '변이'이며, 변이와 정확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동전의 앞면에 해당하는 게 세대를 이어주는 정확한 정보전달이라는 특징이고, 동전의 뒷면은 화학물질 자체가 가지는 내재적인 불확실성과 환경에 의한 손상으로 구조와 서열이 아주 낮은 빈도이지만 달라질 수 있다는 특징이다. 이렇게 달라진 부분을 변이라 부른다.

유전학은 이러한 변이를 연구해 생명의 신비를 밝혀가는 학문이다. 변이들이 '괴물' 표현 형질을 만들게 되므로, 다른 말로 표현하면 괴물을 보면서 정상적인 현상을 규명하는 것이다. 생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괴물'이 유용하게 쓰인다.

괴물 초파리로 발생과 진화 고리를 풀다

초파리는 늘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귀찮은 존재다. 하지만 하찮아 보이는 초파리도 생물학에서는 아주 탁월한 연구 소재로 벌써 100년이 훨씬 넘도록 모델 동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00년 전쯤 토마스 훈트 모르건(T.H. Morgan)은 초파리의 눈 색깔이 빨간색이 아니라 흰색인 개체를 발견하고 그 현상을 분석해 유전학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우연히도 이 흰 눈의 파리가 수컷이었고, 모르건은 교배를 통해 자손들의 형질을 조사한 결과 눈 색깔이 X염색체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형질임을 간파했다. 유전자가 물리적으로 염색체에 위치하고 있어야 하는 것임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빨간 눈의 초파리들이 볼 때 흰 눈의 초파리는 괴물이었으리라.

보다 심각한 괴물 초파리는 후대에 발견되었는데, 예를 들면 날개가 통상의 2개가 아니라 4개인 개체, 안테나가 만들어질 자리에 다리가 만들어진 개체 등이다. 흥미로운 발견은, 이 괴물들을 만드는 변이들이 호메오박스 유전자라고 불리는 진화적으로 아주 잘 보존된 유전자들의 발현 차이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이들 유전자들은 곤충에서뿐 아니라 인간에서도 비슷하게 존재하며, 특정 체질의 특성을 결정하는 역할 또한 보존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호메오박스 유전자는 진화 과정에서 새로운 특징 또는 형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도구상자'(tool kit)라는 애칭을 가지게 되었다.

도구상자에 들어있는 도구들의 다른 조합이 서로 다른 동물들의 발생 양상을 결정한다고 비유적으로 말할 수 있겠다. 괴물들이 사실은 괴물이 아니라 진화의 동력이자 흔적임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생물학에서는 크게 두 가지 질문, '어떻게'와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발생학이 수정란에서 성체에 이르는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풀고자하는 학문이라면, 진화생물학은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형질이 '왜' 살아남았는지, 사라진 형질은 '왜' 사라졌는지를 풀고자 하는 학문이다.

이보디보 생물학, 그리고 진화와 유전자

'어떻게'와 '왜'는 본질적으로 다른 질문으로 보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통섭으로 함께 풀 수 있는 질문이 되었다. 특히 발생과정의 진화가 화두가 되고 있는데 이는 발생의 기전을 분자생물학적으로 풀 수 있으면서 진화적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연구 분야를 '이보디보'(Evolutionary Developmental Biology, 진화발생학)라고 한다. 위의 호메오박스 유전자가 대표적인 이보디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생물학의 많은 분야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진화의 현장을 만나게 되고, 크게 보아 대부분의 생물학 연구는 그 분야에 관계없이 이제 이보디보를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의 연구 분야인 예쁜꼬마선충은 이보디보의 가장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연구실에서 오래 연구해온 주제 중 하나는 예쁜꼬마선충의 히치하이킹 행동이다. 특정 발생 단계에서만 하는 이 행동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기전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왜' 이 행동을 하는지를 연구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 전세계에 분포하는 다양한 예쁜꼬마선충 중 영국선충은 이 행동을 잘하고 하와이선충은 잘 못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이들 두 품종간의 잡종을 아주 많이 만들어 히치하이킹을 잘하는 현상과 항상 같이 발견되는 유전자 부위를 찾을 수 있었다. 영국형 유전자 부위를 가지면 히치하이킹 행동을 더 잘하는 결과를 보인다.

이런 차이는 오랜 시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남는 동안 환경에 적응한 적합한 형질을 DNA 속에 남겨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영국선충과 하와이선충의 유전자 전체를 비교해 보면 약 15% 정도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여 새로운 종으로 나아가는 중간단계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특정한 유전자 부위만으로 특정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보디보의 광범위한 예라 할 수 있겠다.

이 글에서는 멘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면서 괴물과 변이를 통해 보는 생명의 신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비정상적인 것들을 보면서 정상적인 것을 유추하거나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생물학이나 인간 사회나 마찬가지 아닐까. 어두움을 보면서 빛의 의미를 찾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