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MZ세대의 새로운 교육 말하는 최재천 교수

"방황은 10대의 특권, 자기 선택기회 빼앗기지 말라"

2022-08-24 11:12:39 게재
최재천 교수 | 서울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 학위를,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생태학회장,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사진 배지은

변화의 시대 새로운 학문의 흐름인 통섭을 말했던 과학자,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가 새로운 교육에 대해 입을 열었다. "시대가 변했다. 뭔가 좀 한다 싶은 사람들을 보라. 하나같이 엘리트 코스를 따르지 않은 비주류다. 부모세대의 시각을 강요해선 안 된다. 가르침은 최소화하고 배움은 극대화하는 교육이 필요한 때다." MZ세대에게 걸맞은 배움이 무엇인지 18일 그를 만났다.

■ 지금 대한민국 교육에서 희망을 찾기 힘들다고 한 이유는.

중·고교 시기는 두뇌회전이 가장 빠른 때다. 이 황금 같은 시간에 아이들은 오직 대입 맞춤형 교육만 강요받고 있다.

한술 더 떠 고3 교실에선 수능에서 한 문제만 더 틀려도 대학이 바뀐다는 이유로 문제 풀이 무한 반복 훈련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걸 과연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이 안된다. 교육으로 흥한 나라가 교육 때문에 망할 판이다.

■ 이상적 교육을 '가르침의 최소화, 배움의 극대화'로 표현했다. 어떤 의미인가.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중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게 얼마나 될까. 모두가 미적분의 대가나 영어의 달인이 될 필요는 없잖나. 그것을 뺀 나머지 시간은 우리 아이들에게 다 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스스로 선택한 공부를 '빡세게' 할 수 있다.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처음 수업을 하는데 학생들이 "우리가 이 수업만 듣는 줄 아느냐"며 "제정신이냐"고 되묻더라. 미국에서 가르칠 땐 제출할 과제의 양이 이보다 2배 더 많았고 미국 학생들은 이런 수업을 5개나 더 듣는다고 알려줬다. 미국의 좀 괜찮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잠이 부족할 정도로 '스스로 선택한 공부'를 '죽도록' 한다.

■ 힘들게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가.

스스로 선택한 배움에 최선을 다해 몰입해보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최대 과제다. 이상적인 삶이 뭔가? 한번뿐인 인생인데 하고 싶은 거 맘껏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러려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악착같이 찾아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이름깨나 날린다 싶은 이들은 하나같이 '엘리트 코스'를 따르지 않은 비주류들이다. 얼마 전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와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 피아니스트, 설명이 필요 없는 손흥민 선수와 방탄소년단의 공통점은 쓸데없는 것까지 모두 거쳐야 하는 틀에 갇힌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거다.

자유로운 성장 과정, 빡센 배움의 시간이 이들을 키워낸 힘이 아니겠나. 사회적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국가 경쟁력'이 여기 달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제 시장에서 돈을 벌어와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창의력이야말로 미래 먹을거리라고 하는데 창의력은 학습으로 키워지는 게 아니다.

■ 생태학자가 본, 동물에게 배울 점을 들려준다면.

동물 세계에는 선생님이 없다. 우린 학교를 만들어 좋든 싫든 가르쳐서 키워낸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성공하지만 뒤처진 아이들은 낙오자라는 멍에를 안고 산다. 물론 그런 가르침을 통해 여타 동물들보다 인간이 발전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각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과연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는가는 다른 문제다. 엄마 침팬지는 새끼가 도구 사용의 원리를 터득할 때까지 무한한 인내심으로 지켜본다. 계속 실패하는 새끼 옆에서 착잡한, 고뇌에 찬 얼굴로.

새끼는 배고프니까 어떻게든 기술을 익혀서 먹으려고 엄마의 행동을 더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러다 결국 해낸다.

■ 부모가 할 일은 '묻지마 투자'뿐이라고 했다.

학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자녀보다 20년 후를 더 잘 내다볼 수 있느냐고. 의사가 간절히 되고 싶은 아이라면 모를까, 왜 죄다 의사를 만들려 하나.

남들보다 두배를 벌면 두배 더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주변 의사 친구들을 보니 돈 쓸 시간도 없더라. 밤에 환자들 돌보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자게하고 좁은 진료실에 가둬놔야 직성이 풀리겠나. 제발 20년 전에 세상을 보던 잣대로 아이를 다그치지 말고 '묻지마 투자'만 하라. 그래야 아이도 진득하게 하고픈 걸 찾지 않겠나.

■ 마지막으로 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어쩌다 서울대에 합격했다. 운좋게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거기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서울대 성적표와 미국대학의 성적표를 비교해보면 동일 인물의 것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좋아서 한 공부였기 때문이다. 진로를 의탁하면 반드시 후회한다.

중·고등학생들에게 바라건대, 부모님 밑에 있을 때 방황해라. 그건 여러분의 특권이다. 꿈을 찾기 힘들다면 안되는 것부터 추려내라. 해보기 전에 알 수 있는 재주는 누구에게도 없다. 후회로 점철된 삶을 살지 않으려면 악착같이 찾아라.

김한나 내일교육 리포터 ybbnni@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