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에 진실 규명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실태

헌법 위반 강제수용, 약물 투여까지

2022-08-24 10:58:19 게재

진실위 '관계기관 대책회의' 문건 공개 … "국가 공식 사과, 피해회복 조치해야"

'국가에 의한 총체적 인권침해 사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 정근식 위원장은 24일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내용을 발표하면서 이 사건을 이렇게 규정했다.

부랑인 단속과 형제복지원 수용에서부터 부당한 공권력이 행사됐으며, 수용생활에서도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이어졌다는 것. 관계기관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 사실도 이번 진실위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강제노역 노임 착복도 확인 = 진실위는 우선 부랑인을 형제복지원에 무차별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 제 410호가 헌법과 법률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훈령은 부랑인이라 지목된 사람을 어떤 형사절차도 거치지 않고 수용시설에 보내 기한 없이 강제수용토록 하고 있다. 진실위는 훈령 410호는 법률유보 원칙,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적법절차 원칙, 영장주의 원칙, 체계 정당성을 모두 위반했다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000여명에 달했다.

이들 중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657명으로 확인됐다. 이는 기존에 알려졌던 552명보다 105명이 많은 수치다. 진실위는 최초로 확보한 사망자 통계와 사망자 명단 등 14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같이 확인했다.

1986년의 경우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135명으로 사망률은 일반국민(0.318%)보다 13.5배나 높은 4.30%에 달했다. 특히 결핵사망률은 0.41%로 일반인구 결핵사망률 0.014%보다 29.2배나 높았다. 형제복지원 수용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심지어 형제복지원이 수용자들에게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여해 '화학적 구속'이 이뤄진 정황도 드러났다. 1986년 형제복지원이 1년간 구입한 클로르프로마진(조현병 환자 증세 완화제)은 총 25만정. 1년간 342명이 매일 2회 복용할 수 있는 양이다. 진실위는 형제복지원이 수용자 가운데 부적응자나 반항자에게 임의적으로 약물을 투여해 정신요양원을 소위 '근신소대'로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수용자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고 노역 대가인 자립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실도 밝혀냈다. 1986년 1인당 평균 예입액은 55만819원이었으나 실제 지급액은 평균 20만4729원에 그쳤다. 진실위는 1인당 평균 차액 34만6090원은 형제복지원이 착복한 것으로 봤다.

국가보안법, 국방경비법, 반공법 위반자 등 공안사범 15명을 강제수용하고 감시한 사실도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관계기관 조직적 축소·은폐 시도 =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지자 정부가 대책회의를 가졌던 사실도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밝혀졌다. 진실위는 1987년 3월 24일 국가안전기획부 주재로 관계기관이 모여 형제복지원 대책회의를 했다는 보안사 문건을 최초 공개했다. 회의가 열린 날은 형제복지원 30여명이 집단 탈출해 복지원 실태를 폭로한 다음날이었다. 이틀 뒤인 26일에는 청와대 정무 2수석, 안기부 2국장, 내무부 차관, 대검 차장, 치안본부장, 총리비서실장, 부산시 부시장 등 고위급이 참석한 가운데 형제복지원 개편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정부 관계기관들은 조직적으로 축소·은폐를 시도했다. 보건사회부는 부랑인 강제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부산시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진정·소송을 회유하는 등 사건을 축소 은폐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거나 이들의 허가와 지원, 묵인 하에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단속해 장기간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으로 결론 냈다.

이에 따라 진실위는 "국가가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회복 및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국회는 강제실종 피해를 막기 위해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동의하고, 부산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조사 및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위해 예산과 규정,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2기 진실위 출범 후 1호 사건으로 접수했다. 이번 진실규명은 전체 신청자 544명 중 지난해 2월까지 접수된 191명을 대상으로 했다.

정 위원장은 "오랜 시간 고통과 상처 속에 살아온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분들과 가족분들께 위로를 드린다"며 "이번에 진실규명에 포함하지 못한 신청인과 추가로 접수될 사건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조사해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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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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