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현장 리포트

11월 중간선거 쟁점으로 떠오른 난민버스

2022-09-13 11:57:03 게재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 공익로펌 리걸서비스NYC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민정책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다시 전면에 떠오르고 있다.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봇 텍사스 주지사가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을 버스에 태워 대거 워싱턴DC 뉴욕 시카고로 보내고 있다. 타깃이 된 도시들은 시장이 민주당 소속이면서 또한 이민자 보호도시(Sanctuary City)로 선포된 곳이다.

텍사스와 마찬가지로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애리조나주의 공화당 소속 주지사도 텍사스의 '난민버스' 정책에 합류해 불길은 당분간 쉽게 꺼질 것 같지 않은 상황이다.

공화당 주지사들의 '난민버스' 공세

발단은 이렇다. 지난 4월 텍사스 주지사 애봇이 바이든정부의 '국경 개방 정책'에 항의하는 의미로 멕시코-미국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난민 신청자들을 버스에 태워 바이든이 있는 워싱턴으로 보내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외로운 별 작전'(Operation Lone Star)으로 명명한 이주민 강경 단속 정책의 일환으로, 워싱턴이 문제의 발단이니 워싱턴이 직접 해결하라는 것이다. 텍사스 주지사가 국경 개방 정책이라고 반발한 것은 바이든정부의 '42호'(Title 42) 정책 중단 결정을 말한다.

42호로 불리는 정책은 공공보건에 위협이 되는 전염병의 확산을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 2차대전 당시의 공공의료서비스법(Title 42 of the Public Health Services Act)에 근거한다.

2020년 3월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을 빌미로 트럼프정부가 국경을 봉쇄하고 멕시코-미국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난민신청자를 포함한 모든 이주민들을 멕시코와 본국으로 되돌려보낸 정책이다. 팬데믹 하에서 공공보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정책이라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트럼프정부가 취임 이후 계속 시도해왔던 난민에 대한 국경 전면봉쇄를 팬데믹을 핑계로 기정사실화 한 것이다.

42호는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이 난민심사를 마칠 때까지 안전하게 체류하는 것을 보장하는 미국법과 국제법 상 보장된 난민의 권리에 반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난민신청이 중단되면서 폭력적인 상황을 피해 온 난민들은 치안이 불안한 멕시코에 머물면서 여러가지 위협에 노출되었다.

뉴욕의 휴먼 라이츠 퍼스트(Human Rights First)라는 인권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올 3월까지 2년 동안 42호로 인해 멕시코로 되돌려 보내진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납치 강간 고문과 기타 폭력 사건이 거의 1만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바이든정부가 들어서면서 비인도적인 42호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남부 국경을 통해 미국에서 피난처를 찾으려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늘어난 것도 또다른 요인이 되었다.

원래 바이든정부는 42호가 이민정책이 아니라 공공의료 정책이라며 트럼프정부의 정책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다 올해 4월 '5월 23일자로 42호를 종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텍사스 주지사가 반발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국경의 난민문제를 직접 해결하라며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DC에 난민들을 보내기 시작했고, 곧 뉴욕시에도 난민을 실은 버스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텍사스주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4월부터 8월 말까지 워싱턴DC에 7500명, 뉴욕에 1800명의 난민을 버스에 태워 보냈다. 애리조나주도 이 대열에 합류해 두 도시에 1500명 이상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텍사스주정부는 버스 대절 비용만으로 1200만달러 이상을 썼다. 모두 텍사스 주민들이 낸 세금에서 충당되었다. 최근에는 이 난민버스의 종착지에 시카고도 포함됐다.

중간선거에 난민문제 이용하려는 의도

애봇 텍사스 주지사는 오는 11월에 치러질 중간선거에서 3선을 노리고 있다. 텍사스는 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주지사 자리를 단 한번도 민주당에 내준 적 없는 공화당 텃밭이다. 하지만 올해 선거의 경우 에봇 주지사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봄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 등 총 21명이 목숨을 잃은 유밸디 롭 초등학교 총격사건 이후 베토 오로크 민주당 주지사 후보는 총기 규제완화에 앞장서 온 애벗 주지사를 전면 비판하고 나섰다. 총기 규제 문제가 텍사스 주지사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된다면 총기 규제완화에 앞장서 온 에봇 주지사에게 불리한 상황이 펼쳐진다.

이런 상황에서 애봇 주지사 스스로도 "전례가 없다"고 인정할 정도의 과도한 정책을 무리해서 감행하는 것에 선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보수적인 유권자들을 결집시켜 지지기반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이주민 이슈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텍사스로부터 난민을 실은 버스가 도착하기 시작한 시카고 시장은 난민버스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텍사스주정부로부터 사전에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면서 "텍사스가 난민들을 인간이 아닌 화물이나 짐짝 취급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인도적인 처우를 위해 애봇 주지사가 미리 협조와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면서 그가 의도적으로 '인도적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했다.

뉴욕시장은 난민과 이주민들을 환영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시가 앞장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9월 개학을 앞둔 뉴욕시 공립학교들도 난민 아동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시에 텍사스주지사가 이주민들을 정치적 볼모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역겹고 잔인한 일이라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민자 보호도시' 선포한 대도시 선택

텍사스와 애리조나가 난민들을 버스에 태워 짐짝 버리듯이 보내는 세 도시들은 모두 '이민자 보호도시'를 선포한 곳들이다. 체류신분에 상관없이 각종 편의 서비스를 모두에게 제공하고 연방정부의 이민자 추방 정책에 공조하지 않겠다는 곳이다.

예를 들어 뉴욕시 시의회는 초강경 반이민 정책을 앞세운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6년 12월 결의안을 채택해 체류 신분에 관계없이 이주민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에게 필요한 각종 서비스와 복지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트럼프행정부의 이민자 추방정책에 협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이에 텍사스주지사는 이민자 보호도시들이 스스로 선언한 것처럼 이주민 문제를 모두 떠안으라고 하고 있다. 버스에 태워 보낸 난민들이 스스로 이 도시들을 선택했다는 주장과 달리 주지사가 일부러 민주당의 영향력이 큰 도시들을 선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뉴욕이나 워싱턴에서 난민들을 면담한 자원봉사자들에 의하면 난민들 상당수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버스에 태워 보내졌고, 심지어 도착지가 어디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일부는 가족들과 다른 버스에 태워져 생이별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난민을 정치적 게임 희생양으로 이용

40시간 이상 난민버스를 타고 대륙을 횡단해 워싱턴DC와 뉴욕에 도착한 사람들은 주로 베네수엘라 아이티 쿠바 니카라과 등에서 온 난민들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지난 몇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정치 경제 위기 속에서 약 600만 명이 본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불안정한 상황이 끝나지 않는 이상 난민 행렬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피난처를 찾아온 사람들이 정치적 게임의 희생양으로 화물처럼 이리저리 배송되는 비인도적인 일은 적어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