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오겜' 스토리의 힘

2022-09-15 10:48:57 게재
박종권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미국 CNN도 애플사의 로고가 궁금했다. 사과는 알겠는데 왜 한 입 베어먹은 모양일까. 게다가 로고 색깔이 까맣다. 잘 익은 붉은 색도, 윤석열 대통령이 "빨개지는 건가?"라고 물었던 아오리 사과의 연녹색도 아니다. 까맣거나 하얗거나 무지개색이다.

그래서 2011년 10월 7일 '애플 로고의 비밀을 벗긴다'는 리포트를 낸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이틀 뒤 방송이다. 사실 그때까지 한 입 베어먹은 사과의 탄생 스토리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단 한번도 로고의 배경을 언급하지 않았다.

가장 일반적인 추측은 성경의 아담과 이브 얘기다. 인간이 신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 선악과의 상징인데, 알다시피 아담이 한입 베어먹고 목에 걸렸다고 한다. 선악과는 서기 405년 라틴어로 번역할 때 '말루스'(malus)로 했는데, 여기엔 '악(惡)'과 함께 '사과'와 '돛'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컴퓨터가 사람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연산을 척척 처리하면서 인공지능 시대를 열고 있지 않나. 알파고가 입신(入神)의 경지인 이세돌 9단을 이기면서 그야말로 신의 뜻을 엿볼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고 기대 또는 우려하는 상황이다. 베어먹은 선악과 로고가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잡스가 애플 로고에 입닫은 이유

다른 추측은 제법 심오하다. 영국의 앨런 튜링과 관련된 스토리이다. 튜링은 제2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독일군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풀어낸다. 자신이 고안한 '튜링 머신'으로.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데, 오늘날 모든 컴퓨터의 아버지로 일컫는다. 튜링은 컴퓨터의 아버지의 아버지인 셈이다.

그가 암호를 푼 덕분에 전쟁이 일찍 끝날 수 있었다고 한다. 독일군 U보트의 위치와 비행 편대 움직임을 영국군은 손바닥처럼 보고 있었으니까. 2차대전이 끝나고 연구에 몰두하던 튜링은 동성애자인 사실이 들통나 화학적 거세치료를 선고받는다. 당시 영국은 동성애가 범죄였다. 튜링은 2년 후 음독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됐는데 침대에 한 입 베어먹은 사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의 아버지인 앨런 튜링을 기리는 차원에서 로고를 만들었다는 추측이 나돌았다. 사과가 검은 이유는 독사과라는 점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무지개색 사과 로고도 있는데, 이게 바로 차별금지를 부르짖는 동성애자들의 상징이 아니냐는 거다.

이런 설이 퍼지면서 영국정부도 곤혹스런 처지에 놓인다. 영국 왕족과 고위 관리가 아이폰과 맥북을 쓰면서 엄지 척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결국 최근 타계한 엘리자베스 여왕도 2013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튜링의 동성애 죄를 사면한다.

정작 도안을 그린 로브 재노프는 사과 로고에 싱거운 설명이다. 로고를 작게 그리는 경우 체리와 헷갈린다는 거다. 사과는 베어먹고 체리는 한 입에 넣는 점에서 차별 포인트를 주었다는 거다.

호사가들은 베어먹는다는 뜻의 영어가 '바이트'(Bite)인 점을 주목한다. 컴퓨터 정보단위는 '바이트'(Byte)인데, 철자 하나만 다르고 발음은 같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겠느냐고 유추한다.

여하튼 그럴듯한 '전설'이 사실처럼 퍼져 나가는데도 스티브 잡스는 절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이런 '전설'이 사실이라면 로고로 인해 불필요한 논란과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 선악과라고 해도 종교적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아마도 잡스는 전략적 모호성을 택해 전설을 로고 탄생의 '아름다운 비밀'로 간직하려 했는지 모른다고 CNN은 분석했다.

앨런 튜링의 일대기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소재가 됐다. 시나리오 작가 그레이엄 무어는 제87회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다. 그의 수상소감이 화제가 됐는데 핵심은 "좀 삐딱해도, 달라도 괜찮다!"(Stay weird, stay different)였다. 바로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를 패러디한 것이다.

어쩌면 잡스 시대에는 그게 맞았는지 모른다. 1등만 살아남는 시대 말이다. 하지만 2015년 무어의 시대는 '삐딱하고 별난' 방식이 통하는 것 아닐까. 이렇게 로고에 얽힌 스토리 하나가 시대를 품고, 견인하며, 정의한다.

K-컬쳐를 초일류로 날게 하려면

마침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인 에미상 6개 부문을 수상했다. 기생충-미나리-오징어로 이어지는 K-스토리의 힘이다. 모두 볼품은 없어도 생명력은 질기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져온 면면약존(綿綿若存) 한국처럼. 마침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부터 이야기 천국 아닌가.

고 이건희 삼성회장의 명언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도 보완하자. 빠진 1류에 K-컬쳐가 딱 맞다. BTS도 있지 않나. 그대들 멋대로 맘대로 창조하라. 관료와 정치는 나서지 마라. 조장하지 말라. 그러면 K-컬쳐는 초일류로 날아오를 것이다.

박종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