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경북 농업의 대전환 - (상)농업강국 네덜란드의 교훈

간척지에 스마트팜 도입 '선진농업' 실현했다

2022-10-05 10:51:48 게재

농산품 수출 강국 네덜란드에서 배운다

끊임없는 기술혁신 지속가능 농업 추진

지난달 21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북쪽 베르허스켄훅(Bergschenhoek)의 한 농가를 찾았다. 파프리카를 생산하는 스마트팜이다. 농장 앞은 관개수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대형 컨테이너트럭이나 대형 버스가 통행할 수 있는 포장된 도로가 쭉 뻗어 있다. 농장 입구에는 잔디밭과 잘 관리된 정원이 있는 전원주택이 있고 그 뒤쪽으로 끝이 가늠되지 않는 대형 파프리카 재배 농장이 있다. 얼핏 보아서는 공장인지, 농장인지 쉽게 식별하지 못할 정도다.

경북도는 지난달 20일 농업대학 부문 세계 1위 대학인 네덜란드 와게닝겐대학(WUR)과 상호교류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경북도 제공


전체 농장의 규모는 자그마치 5.6㏊다. 농장 입구에는 직원 사무실, 샤워장을 갖춘 화장실, 휴게실, 기계제어실 등이 있고 파프리카 선별장과 자동세척실도 갖추고 있다. 농장입구 한편에는 대형 축열탱크와 양액탱크가 있다. 축열탱크는 2㎞ 이하 지하에서 뽑아 올린 물을 적정온도로 식혀 작물에 공급하는 기능을 한다. 온실유지에 필요한 대부분의 열을 신재생에너지인 지열 순환시스템으로 해결한다.

이 농장의 책임자는 25세 청년농업인 루트커 그룬(Rutger Groen)씨다. 루트커 그룬씨는 정부 산하 농업교육기관인 렌티즈에듀케이션그룹에서 농업교육을 받은 재배사(grower)다. 이 농장은 작물 식재와 수확을 제외한 모든 재배과정이 자동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컴퓨터를 통해 온실 온도 관리는 물론 물과 양액투여 등 전 과정이 자동이다. 각종 센서는 작물 성장에 필요한 최적의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공급한다.

루트커 그룬씨는 "작물을 심을 때와 수확할 때 소규모의 인력이 투입될 뿐 평소에는 재배사와 작업관리자 한두 명이 전체 농장을 책임지고 운영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농번기마다 일손이 부족해 영농이 힘든 우리나라 농촌의 사정과 딴판이다. 네덜란드는 현재 인력을 대신해 로봇이 수확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루트커 그룬씨의 농장주는 20여년 전 4㏊로 시작해 현재 5㏊ 규모 스마트팜 10개 즉 50㏊에서 파프리카를 생산해 연간 1500만유로(약 2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루트커 그룬씨는 "월 2500유로의 월급을 받지만 시간 여유가 있어 여가를 즐기며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20대 청년농부가 5㏊ 농장 관리 = 네덜란드가 농산물 수출에서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농업강국으로 발전한 배경에는 정부의 농업정책과 교육·연구 기반이 있다. 네덜란드는 국토면적 4만여㎢에 1700만명이 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한국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높다. 국토면적은 한국의 절반에 못 미치고 인구는 1/3보다 조금 많다. 농업환경은 우리나라보다 열악하다. 국토면적의 약 40%가 제방(댐)을 쌓고 펌프 등으로 물을 빼내 굳은 땅이다. 농지는 국토의 54%인 182만㏊다. 이 중 2/3는 초지와 사료재배지다.

네덜란드는 불리한 농업환경을 기술혁신과 교육, 전문화와 규모화로 극복했다. 우선 무엇보다 잘 할 수 있는 농업에 집중했다.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인 곡물은 포기하는 대신 구근류 화훼, 원예작물, 낙농업, 농식품가공업 등을 선택했다. 네덜란드 농업은 국내총생산(GDP)의 2%에도 못 미친다. 대부분은 항만 물류 무역 등에서 나온다. 그런데도 네덜란드 농산품 수출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다. 2013년 이후 매년 300억유로에 육박하는 무역흑자를 기록해 농업강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50년 90억 지구인구 식량 책임 목표 = 네덜란드도 1990년대까지는 생산량 증대에 집중했다. 이후 최근 20여년 동안은 투입재 축소 등 농업환경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향했다. 2050년 세계 90억명 인구의 식량을 책임진다는 목표로 환경오염은 최소화하고 에너지 저소비형 첨단유리온실을 집중 육성했다.

다음은 유기농 육성이다. 농업과 원예협회 유통업계 등과 공동 협정을 맺고 매년 10% 이상 유기농산물 소비 비중 확대를 추진 중이다.

태양광 지열 조명 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 이용확대, 에너지 효율 및 절감기술 확대 촉진 등을 통한 농업혁신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매년 2500만유로의 혁신보조금을 지원한다.

바이오매스 경제실현도 농업의 주요 목표다. 중장기적으로 2030년까지 화석연료의 30%를 바이오매스로 대체하는 혁신프로그램이 추진 중이다.

이 같은 목표를 위해 농업교육, 푸드밸리, 수출농업. 종자산업, 첨단농업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농업교육은 중등 기초교육에서 고등 직업전문교육까지 체계적이다. 110여개 농업계 학교가 고등학교 단계에서 7만여명의 학생을 교육한다. 농업연수원(AOC)은 중등수준의 예비농업교육을 비롯해 전일 시간제 성인농업교육 등을 실시한다. 농업관리자 양성을 위한 대학교육은 5개 실용중심대학이 하고 연구중심교육은 와게닝겐대학이 맡는다.

푸드밸리는 와게닝겐대학을 중심으로 주변 8개 도시에 조성된 대규모 식품클러스터다. 약 1440개 식품업체와 70여개 식품과학업체, 20개 연구기관이 활동한다. 네슬레 유니레버 하인즈 하이네킨 프리슬레 캄피나 등이 입주해 있다.

네덜란드 첨단농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불리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유리온실과 수경재배를 택했다. 첨단 IT를 접목한 스마트팜으로 재배환경을 조절하고 에너지와 노동력을 관리했다. 이를 통해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고 안전하고 더 좋은 농산물을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네덜란드는 1994년부터 순환식 수경재배 방식을 법제화, 폐기되는 양액을 재사용해 폐양액의 90% 이상을 절감했다. 시설원예 중 유리온실은 99%, 가온재배는 92%다.

종자산업도 네덜란드가 강국이다. 약 300여개의 종자·종묘 업체가 있다. 노트루 홀란드주를 중심으로 시드밸리가 조성돼 35개 종자회사가 입주해 있다. 몬산토 듀폰 신젠다 라익즈완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에 유통되는 채소종자 35%, 화훼 43%, 씨감자 60% 정도가 네덜란드산일 정도로 종자산업이 수출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세계 1위 수준이다.

임기병 경북대 원예학과 교수는 네덜란드 농업과 관련 "네덜란드는 산업혁명을 이룬 영국, 기계산업발전에 성공한 독일, 농업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농업을 필수적으로 선택했고, 해수면보다 낮은 간척지에서 소금기를 빼고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구근류와 원예작물을 시설에서 키울 수밖에 없었다"며 "여기에 정부의 시장자율성 보장에 기반한 연구개발 중심 재정지원, 폐업농가 인수합병을 통한 기업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또 "경북도가 스마트팜을 통해 농업대전환을 추진하려면 기술 자본 시설 등의 집약을 통한 규모의 경제화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헤이그 =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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