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검증됐는데' 지역화폐 예산 전액삭감
2022-10-24 12:28:22 게재
중앙정부 주도 온누리상품권만 증액
소상공인 "골목경제 활성화에 필요"
정부가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삭감하면서 자체 산하기관이 실시한 '효과 검증' 조사 결과를 무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동주(민주당) 의원이 소상공인진흥공단(소진공)으로부터 제출받은 '온누리상품권과 지역사랑상품권 간의 상보관계에 관한 연구(2020)' 보고서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과 지역사랑상품권 간에는 경쟁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 영역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공통 목적으로 자기 몫을 담당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온누리상품권과 지역화폐가 서로 독립적으로 공급되고 소비되면서 온전히 지역 전통시장의 매출 증대로 이어지며 산업 유발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온누리상품권의 경우 △생산유발효과 1110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540억원 △취업유발효과 1081명으로 나타났으며 지역사랑상품권은 △생산유발효과 837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407억원 △취업유발효과 816명으로 확인됐다.
특히 보고서는 두 상품권이 서로 경쟁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으로 각자 기능을 수행할 때 산업유발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온누리상품권이나 지역사랑상품권 중 어느 하나라도 통화량이 축소되거나 지역경제에서 사라지게 되면 그만큼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진공은 또 전자상품권과 플랫폼이 활성화되어 있는 인천광역시와 부산광역시, 경기도 시흥시를 선정해 전통시장 상인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상품권 간의 상호보완 관계가 적용되는지 심층조사를 진행했다. 상인들은 전통시장에서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 모두가 매출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매출 효과를 높여주는 지역화폐와 절세 효과가 있는 온누리상품권 모두 필요하고 반드시 유지돼야 할 정책이라고 응답했다.
지역화폐의 효율성에 대한 연구결과는 이뿐이 아니다. 지방행정연구원의 '경기도 지역화폐의 소상공인 활성화 효과 분석(2021)'에서는 지역화폐가 현금 카드를 이용한 추가 소비로 이어지고 경제효과는 음식점부터 문화·취미 업종으로 확장되고 있어 지속적인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코로나19로 소비활동이 위축된 가운데 소상공인 지원에 효과가 있는 정책으로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2020년 1분기부터 3분기까지 지역화폐의 점포 매출액 회복 및 증가 도움 정도를 살펴본 결과 긍정응답이 부정보다 모두 높게 나타났다. <표 참조>
이에 앞서 경기연구원은 2019년 1~4분기 지역화폐의 매출액 영향분석을 하면서 소상공인 매출액 증대 효과를 확인했고 제도를 장기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또 대전세종연구원에서도 2020년에 지역화폐인 '온통대전'으로 인해 대형마트에서 소상공인 상점으로 전환된 금액이 1953억원이라고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를 설명했다.
◆서울·경기 등 지자체도 반발 =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올해 6000억원 규모였던 지역화폐 예산을 내년에 전액 삭감했다. 반면 정부 주도의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3조5000억원에서 4조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지역화폐와 지역사랑상품권은 없애고 온누리상품권 예산만 증액한 것은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공약과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 한 관계자는 "그동안 중앙 정부는 지역이 자율적으로 만들고 유통시키는 지역화폐에 정부 예산이 쓰이는 것을 노골적으로 못마땅해했다"면서 "충분한 효과가 검증됐는데도 정부가 모든 걸 하겠다는 중앙 중심 사고의 전형적 폐해"라고 지적했다.
지역화폐의 효과를 체감한 지자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경기도는 전국 시·도 가운데 지역화폐 발행량이 가장 많다. 올해 기준 지역화폐 관련 예산 중 국비가 약 1060억원을 차지한다. 이를 없애면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축소하거나 도 또는 시군 부담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경기도민들 생각도 다르지 않다. 도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 의뢰해 지난 9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민 77%는 경기지역화폐사업이 계속돼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달 시의회에서 "정부는 예산을 삭감했지만 서울시는 기존에 발행한 액수만큼 (지역화폐를) 계속 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동주 의원은 "상인들 의견도 듣지 않은 채 지역화폐 예산을 일방적으로 전액 삭감한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기인한 편협한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정부 기관인 중기부 산하 소진공은 물론 지자체, 소상공인들까지 모두 효과를 인정하는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은 전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이라는 이유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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