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시대, 이제는 디지털 문해력이다(상)

코로나19로 빨라진 디지털 전환에 곳곳서 격차 몸살

2022-10-27 11:00:54 게재

대중교통 이용도 어려워진 취약계층 사회적 소외감 … 기기보다 정보 활용으로 사회적 논의 중심 이동

#1. 충청권 한 사립대학 직원으로 정년을 앞둔 A씨는 어릴 적 꿈이었던 요리사로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이다. 몇 년 전부터 한식은 물론 양식, 일식 자격증을 따는 등 꾸준히 준비해왔다. A씨는 최근 한 프랜차이즈 업체 설명회에 참석했다 자신감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배달앱' '서빙로봇' '조리로봇' '테이블 오더' '소셜미디어' '네이버 플레이스' 등 그리 친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난무했다. 특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상권분석도 경험치가 아닌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모습에 당혹감까지 느꼈다.

#2. 전업주부로 살아온 70대 여성 B씨는 2주에 한번 친구들을 만나고 공과금 납부 등을 위해 은행에 가기 위해 자동차로 20분가량 떨어진 번화가를 찾는다. 다리가 아픈 B씨의 외출은 출발부터 고난의 연속이다. 스마트폰에 딸이 설치해준 앱이 있지만 혼자서는 자신이 없어 지나가는 택시가 잡힐 때까지 집 앞에서 기다린다. 은행에 도착해서도 문제다. 자식들이 보내준 용돈을 현금으로 찾기 위해 B씨는 은행 창구에서 많게는 1시간 이상 차례를 기다리기도 한다. 자동화기기가 있지만 자신이 없어 창구를 이용한다. B씨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창구 앞에는 동병상련을 겪는 노인들로 가득하다.

서울의 한 영화관 무인발권기에서 표를 예약하는 시민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일상 곳곳이 디지털 기반 사회로 전환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0년 이상 걸렸을 변화가 1~2년 만에 일상이 됐다고 분석한다. 이로 인한 소외계층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27일 전문가들에 따르면 온라인 공간뿐 아니라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고령자, 장애인, 저소득층과 같은 디지털 취약계층의 정보격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은 선택의 수준을 넘어 필수 영역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온라인 쇼핑, 음식배달 서비스 등 소비분야뿐 아니라 화상회의, 온라인 교육, 원격 근무, 온라인 공연, 메타버스 등 일상생활 자체를 변화시켰다.

급격한 변화는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디지털 정보 격차도 현실화했다. 다양한 디지털 기술에 쉽게 접근해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보다 발전한 삶을 만들어 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경제·사회적 소외가 발생했다. 이른바 '디지털 정보 격차'가 커진 것이다.

최근에는 디지털 정보 격차 논란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과거 PC보급과 이용 등 기기 접근성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콘텐츠의 이해와 활용, 정보공유, 소통과 참여 등 이른바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로 중심이 이동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도구와 기술의 활용,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이해와 활용 능력,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능력 등을 말한다.

실제로 정보화 사회 초기 우려했던 격차는 PC·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 가격 하락, 정보통신 기술과 알고리즘 발전으로 과거에 비해 줄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조사한 2021년도 정보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취약계층의 디지털정보화 접근 수준은 일반국민 대비 94.4%였다. 2018년 91.1%에 비해 큰 폭으로 개선된 수치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역량 = 하지만 접근성이 향상됐다고 디지털 정보를 이용하고 활용하는 격차까지 줄여주지는 못했다.

세계경제포럼은 2016년에 이미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 역량 중에 디지털 리터러시를 포함해 발표했다. 이후 핀란드 영국 프랑스 캐나다 미국 등은 이를 국가 차원에서 교육하고 장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이 경쟁국들에 비해 뒤떨어졌다고 평가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사회부총리 부서인 교육부가 학생들과 성인의 디지털 문해력 역량을 높이는 범부처 정책을 만들기 위한 토론회를 열어 눈길을 끈다.

지난달 23일 교육부는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등 사회 분야 연구기관 20곳과 '디지털 문해력 정책개선 방안'을 주제로 제3차 사회정책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은 우리나라 성인과 청소년의 디지털 문해력 역량을 끌어올리고 세대별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교육부는 "토론회에서 나온 다양한 정책대안과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범부처 차원의 디지털 문해력 정책 개선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은행 창구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 정부가 고민하는 사이 노년층, 장애인, 농어촌주민, 저소득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은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반 언택트(비대면) 사회의 상징으로 떠오른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를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은 노인들은 자녀나 손주들의 설명을 듣는 순간에는 알 것 같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대부분 디지털 사회의 상징인 스마트폰은 가졌지만 통화와 문자로 친구나 자식들 안부를 확인하는 수준인 이들 상당수는 철도, 택시, 지하철 등 대중교통은 물론 은행, 식당에서 당혹스런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주변의 도음이 없으면 택시를 잡기 위해 길거리에서, 자신의 돈을 맡겨 놓은 은행 창구 앞에서, 그리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찾은 식당 키오스크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이들의 소외감은 깊어만 간다.

장애인들은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너무 높거나 안내 방송이 없어 사용할 수 없는 디지털 기기들 앞에서 좌절하고 있다.

하지만 키오스크는 숫자는 물론 활용 영역도 계속 늘어난다.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윤영찬 의원(더불어민주당, 성남 중원구)이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9년 18만9951대였던 키오스크가 지난해 21만33대로 크게 증가했다. 키오스크는 터치스크린 등 전자적 방식으로 정보를 화면에 표시해 제공하거나 서류발급, 정보 안내, 주문·결제 등을 처리하는 기기를 말한다.

이에 따르면 공공부분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2019년 18만1364대에서 지난해 18만3459대로 약 2000대가 증가했다. 민간분야의 경우 같은 기간 8587대에서 2만6574대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일상 곳곳에 키오스크 설치가 증가하면서 사용 방법이 어렵다는 이용자 불만이 속출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60대 전업주부 C씨는 친구를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주변 커피 전문점에 갔다가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그곳에는 4~5명의 직원이 있었지만 주문을 받는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2대의 소형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었다. 키오스크가 익숙하지 않은 C씨는 화면을 확인하며 천천히 버튼을 눌렀다. 시간이 걸리자 길게 늘어선 줄 중간에서 툴툴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스런 마음에 서두르자 키오스크 화면의 글자가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A씨는 결국 주문을 포기하고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A씨는 딸과 손자에게 여러 차례 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웠지만 그때는 아는 것 같아도 금방 까먹는다.

C씨와 같은 경험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키오스크는 카페뿐 아니라 행정기관, 은행, 병원 등 공공영역부터 대형 유통시설, 식당, 카페, 편의점, 관광시설, 영화관 등 다양한 민간·생활 영역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카페와 식당, 무인매장 중심으로 그 숫자가 크게 증가했다. 요식업계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2019년 5479대에서 2021년 2만1335대로 늘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치 않은 노인들 대부분은 시력 저하, 기억력 감퇴 등 신체적 노화로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서울디지털재단의 '2021년 서울시민 디지털역량실태조사'에서 55세 이상 고령층의 54.2%가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없다'고 했다. 75세 이상은 86.2%가 키오스크를 써보지 못했다고 했다.

고령층이 키오스크를 못 쓰는 이유로는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33.8%)'였다. 키오스크 이용 능력은 전체 평균은 74.2점이었으나, 75세 이상은 41점에 불과했다. 사용하기 어려운 키오스크는 △관공서 등 행정 서비스(47.4%) △교통서비스(32.6%) △전시·공연장(31.8%) △종합병원(29%) △무인 매장(23.1%) △백화점·마트(21.6%) 순이었다. 해결하는 방식도 고령층은 '타인의 도움으로 해결(64.8%)'이 가장 많았다.

윤 의원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디지털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경제·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이 심화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모든 국민이 차별이나 배제 없이 평등하게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디지털 격차를 줄일 세심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너무나 더딘 격차 해소 방안 = 디지털 소외계층은 경제, 지역, 연령, 신체 여건 등으로 디지털 기기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에 생기는 디지털 정보격차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문제는 디지털 정보격차가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할수록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해마다 일반 국민 대비 저소득층·장애인·농어민·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의 디지털역량을 조사한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 국민 평균 디지털역량은 63.8%로 나타났다. 일반인의 역량(100%)을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다. 계층별로 보면 고령층이 53.9%로 가장 낮았으며 농어민(69.6%)과 장애인(74.9%)이 뒤를 이었다.

정부와 정치권도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변화 속도에 비해 너무 느리고 소극적이다.

지난해 국회에선 키오스크를 설치·운영하는 경우,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면서 진전이 있었다. 해당 법안은 내년 1월 28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행령이 구체적이지 않는데다 하위 지침도 정해지지 않아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내년부터 장애인이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를 설치해야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특히, 글자 크기를 키우는 등 취약계층을 위해 접근성을 강화한 국가표준도 만들고 있지만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장애인뿐 아니라 노령층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 기기에 대한 국가 지원을 대안으로 꼽는다. 하지만 현재 민간에서 개발 중인 배리어프리 기기는 1000만원 정도로, 200만~500만원 수준인 일반 키오스크보다 비싸다.

권금주 교수(서울사이버대 노인복지전공)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화교육인데 단순히 정보화에 대한 지식습득만이 아니라 소외를 극복하는 수단이어야 의미가 있다"면서 "정보화교육 콘텐츠가 노인의 눈높이에 맞춰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정보화교육이 다양하지도 않고 정보화 기기도 노인이 사용하기에 편리하지 않은 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또 "교육을 이수하고 활용할 수 있는 분들을 노인일자리 사업 대상으로 선정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키오스크 사용을 도와주도록 하면 장애인 등 다른 취약계층의 접근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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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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