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말하는 산재예방 ⑪

안전규칙을 넘어서야

2022-11-22 11:08:05 게재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

얼마 전, 한 대형 건설현장 내의 하천에서 수상 작업대(작업대)가 전복돼 타고 있던 작업자 2명 중 1명이 사망했다. 평소 물살이 잔잔한 한강 지천이어서 시공업체에서는 전복을 예상하지 못했다. 예측 불가능성은 모든 사고의 기본 속성이고, 예측된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사고가 발생한 작업은 하천에 가설되는 교량의 상부공사에 앞서 약 2~3m 아래의 하천에 작업자들의 추락방지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작업자들은 구명동의와 안전대를 착용하고 작업대 난간에 결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업대 전복과정에 난간에 결속된 안전대는 작업자들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역할을 했다. 1명은 물속에서 안전대를 벗고 수면으로 탈출했다. 다른 1명은 물속에서 난간에 체결된 안전대 고리를 푸는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전규칙의 속성과 한계

현장 관계자들에 의하면 가설교량의 직접 시공을 맡은 전문건설업체는 추락방지망을 설치할 계획이 없었으나 건설사의 지시로 추락방지망을 설치하기 위해 작업대를 제작해 사용하게 됐다. 또 사고발생 며칠 전에 건설사 본사의 안전점검에서 현장 작업자들의 안전대 미체결 적발에 따른 작업중지 조치가 있었다. 이는 사고 작업자들의 안전대 체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과적 관점에서 추락방지망을 설치하지 않았거나, 안전대를 체결하지 않았다면 작업자가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안전규칙)을 확실하게 지키려는 노력을 잘못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사고예방을 위해서는 생산과 별개의 안전활동이 아닌 생산관리에서 위험이 조성되지 않도록 작업방법을 결정했어야 한다. 안전규칙 준수로 모든 사고가 예방 가능하다는 착시와 이에 따른 부적절한 규제가 산업안전을 법규 준수에 매몰시킴에 따른 경직, 형식화, 자원 낭비가 산업안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안전규칙은 사고예방에 도움이 되거나, 사고발생 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들이다. 사고는 개별 현장의 특수한 상황에서 예측 불가능한 요인들의 조합에 의해 발생된다. 그러나 현장마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작업조건이나 변화하는 생산환경을 법규에 모두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파트 발코니에 난간이 있어도 드물기는 하지만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것과 같이, 매우 드문 확률적 사건인 사망사고의 전부를 안전규칙 준수만으로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안전규칙을 완벽하게 준수한다는 것은 생산중지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같은 대한민국 사업장이지만 규모에 따라 안전수준은 매우 다르다. 통계 상 대형 사업장은 이미 안전선진국인 독일의 평균 수준 이하로 진입했으나,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도 없는 소규모 사업장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이다. 대형 사업장은 이미 안전규칙 준수가 일정 수준 규범화돼있다.

안전규칙의 한계 극복

따라서 산업안전 분야의 공적자원은 주로 의지도, 능력도 취약한 소규모 사업장에 투입하고, 대형 사업장에게는 별도의 안전활동이 아닌 생산에서 안전이 확보되도록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최근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5년 안에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다. 사고의 속성과 현장의 생리를 심도 있게 고려해 안전규칙 준수가 중소규모 사업장을 포함해 산업사회 전체의 규범으로 자리잡고, 대형 현장들을 선두로 안전규칙 준수를 넘어선 사고예방을 이끌어내는 섬세한 전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