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는 이유
2022-12-13 11:17:12 게재
올해 상반기 -3.2%, 신흥국에 뒤져
생산성 향상, 노동분배에 반영 안돼
파이낸셜타임즈는 최근 칼럼을 통해 "미국의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생산성 향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의 경제정책 입안자와 경제계 리더들은 임금 상승에 우려를 보이지만 평균적인 노동자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달 말 발표한 '세계임금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세계 실질임금은 전년 동기에 비해 0.9%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실질임금이 전년 동기에 비해 하락한 것은 2008년 이후 처음이다.
국가와 지역별로 살펴보면 20개 선진국의 실질임금 하락률이 2.2%로 20개 신흥국(-0.8%)에 비해서 폭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는 전년 동기에 비해 3.2%나 하락해 다른 나라와 지역에 비해 실질임금이 더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등 정책 당국자들은 임금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30일 브루킹스연구소 강연에서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의 혼선은 어느정도 안정화되고 있지만 임금상승이 향후 인플레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며 "고용의 수급관계에 심각한 불균형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안정을 절대적인 목표로 하는 중앙은행으로서 임금상승이 물가상승의 주된 원인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한 인식이다.
미국의 노동인력 수급이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서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파월 의장이 말한대로 미국은 현재 구직자 1명당 구인배율이 1.7명에 이를 정도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보다 인력을 찾는 사업주가 1.7배나 많다는 의미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코로나19의 대확산으로 미국의 노동자층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미국은 지금까지 9941만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됐고, 이 가운데 108만명이 사망했다. 코로나19에서 완치된 사람도 다양한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정상적인 노동활동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상당하다. 아예 노동시장에서 은퇴하는 사람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추산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최근 인력부족은 35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은 원가상승 등에 따른 부담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고 있어 인플레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은 가격을 직접적으로 올리는 것과 함께 상품의 양을 줄이는 방법 등 다양하다. 특히 기업은 인플레에 의한 임금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술투자에 매달리고, 일부는 인간이 할 일을 로봇 등 기계로 대체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대부분의 나라가 국내총생산(GDP)에서 개인소비가 70% 가까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개인소비가 위축되고 기업실적도 거시경제도 강력한 성장의 발판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실질임금을 끌어 올리는 일은 경제전반의 활력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변수이다.
하지만 미국의 임금상승폭은 노동생산성 향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ILO 분석에 따르면, 올해 노동생산성 향상은 실질임금 인상분을 웃돌고 그 차이도 1999년 이후 가장 큰 것으로 집계됐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유럽은 미국보다 에너지 가격 급등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지만 각국 정부가 고용유지제도와 임금보조금 등을 통해 미국보다 실질임금 레벨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다"면서 "생산성 향상과 임금상승률의 격차를 고려하면 미국의 기업들이 노동소득분배율을 더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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