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자율선택권
"월 단위 연장근로시, 주 90시간 장시간 노동"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극단적인 가정" … 직장갑질119 "노동현장 자체가 극단적"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에 대해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주 52시간 상한제' 유연화에 대해 노동계가 반발하면서 논란이다.
윤석열정부 노동시장 개혁과제를 발굴해 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연구회)의 권고대로 연장근로시간 관리를 현재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확대하면 최대 주 90시간까지 가능해진다는 노동시민단체의 극단적인 분석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연구회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해 제도 남용을 우려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동시민단체는 "노동자의 교섭력과 결정력이 없는 상황에서 중소·영세 사업체 노동현장 자체가 극단적이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정부는 권고문을 최대한 존중해 노동시장 개혁을 신속히 추진해 나가겠다"며 "임금과 근로시간 개혁 과제는 가급적 이른 시일 내 입법안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에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21일 간격으로 하루를 쉬었고 주휴일은 없었다. 월~토요일은 1일 7.5시간, 일요일 7시간으로 1주 52시간 근무시간이 짜여 있으나 실제로는 1일 8시간 이상 일했다. 명절 등 공휴일도 수당으로 대체할 뿐 휴일이 없다.(중견기업)
#. 토·일요일에도 일한다. 쉬는 날은 한달에 고작 5~6일이다. 법정공휴일에 쉬지도 않고 대체휴무를 주지도 않고 별도 추가 수당도 없다. 주·야간으로 돌아가는데 주간에는 1주에 52시간 이내지만 야간에는 73.5시간 일한다.(식자재마트)
#. 새벽 1~2시까지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수당도 없었다. 평일은 통째로 헌납하고 휴일도 거의 없어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전자제품제조업)
올해 4월과 지난해 4월, 1월에 시민단체 '직장갑집119'에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며 제보한 노동자들이다.
윤석열정부의 노동시장 개혁과제를 발굴해 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연구회)의 권고대로 현재 1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 단위로 확대하면 주당 근로시간이 최대 90시간을 넘는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는 주장이 나왔다.
고용노동부와 연구회가 "극단적 상황을 가정해 제도 남용을 우려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는 "노동현장 자체가 극단적이다"는 비판이다.
◆사실상 '주 80.5시간 상한제' = 직장갑질119는 18일 연구회 권고문대로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재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확대하면 1주 최대 90시간 30분까지 근무해도 적법하다는 분석됐다고 밝혔다. '월·분기·반기·연'으로 관리 단위를 넓히면 특정 주에 무려 107시간 30분까지 일해도 된다는 것이다.
앞서 12일 연구회는 "법정 근로시간 '1주 40시간제'을 유지하되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관리해 노사의 선택권을 확대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연구회는 관리단위가 길어짐에 따라 초래될 수 있는 장시간 연속 근로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장근로시간 총량을 비례적으로 감축하자는 것이다.
월 단위 연장근로시간은 1주 연장근로시간 12시간에 월 평균 4.345주를 곱해 월 52시간이 된다. 이 월 단위(52시간)을 기준으로 분기는 156시간 대비 90%인 140시간, 반기는 312시간 대비 80%인 250시간, 1년은 625시간 대비 70%인 440시간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연구회는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과 주 1일 휴무를 고려하면 주당 최대 69시간(하루 11.5시간씩 6일) 근무가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직장갑질119는 "현재 '주 52시간 상한제'가 휴일을 포함한 1주 7일 최대 52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므로 연구회 안은 '주 80.5시간 상한제'(하루 11.5시간×7일 근무)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일관성이 있다"며 반박했다.
근로기준법(제55조 1항)은 1주에 1일 이상의 휴무를 보장하도록 했지만 주휴일 근로를 금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일차 21.5시간, 6일간 11.5시간 근무 가능 = 직장갑질119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연구회 권고대로 하면 첫째날(1일)은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24시간 근무도 가능하다"며 "1일차 24시간 근무에서 휴게시간(근로시간 4시간당 30분) 2.5시간을 제외하면 21.5시간을 일하고 근로일 간 11시간 휴식시간을 고려하면 2~7일차까지는 매일 11.5시간 일을 시킬 수 있으니 1주 최대 90.5시간이 된다"고 설명했다. 설령 1일차에 11.5시간 근무한다고 해도 1주 근로시간은 80.5시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회는 이날 반박자료를 통해 "주 7일 근무를 상정하더라도 '근로일 간 11시간 휴식'은 8일째, 15일째에도 적용되므로 7일 노동시간이 모두 11.5시간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라며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제도의 남용을 우려하는 것은 상식과 통계에 부합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도 15일 20·30 자문단과 호프미팅에서 "법정 휴무 등 법이 강제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를 가정해 장시간 근로를 조장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연구회는 "외국과 비교해 높은 수준의 가산수당 할증률(50% 이상)을 통해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직·간접적으로 규제하고 있다"며 "지난해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 상용직 근로자의 주 평균 근로일수는 4.7일, 쉬는 날은 2.3일이고, 5인 이상 사업장 월평균 연장근로 52시간 초과 사업장은 1.4%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시간 근로 개선, 근로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포괄임금 등의 오남용 방지 △야간근로 및 야간근로자에 대한 보호 조치 △투명한 근로시간 기록·관리 △재충전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휴가사용 패러다임 전환 등도 권고했다"고 강조했다.
◆'자율적 선택' 사용자 선택권 강화 = 직장갑질119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현장 자체가 극단적 사례 천지"라고 재반박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접수한 근로시간 관련 제보 279건을 분석한 결과 현재 '주 52시간 상한제'에서도 주 80시간이 넘는 초장시간 노동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 동의없는 강제노동 △무제한 공짜노동 포괄임금제 △노동시간·휴가 관련법이 지켜지지 않는 위법천지 △퇴근 후 SNS 업무지지와 휴식권 박탈 △악용되는 유연근무제 △노예노동의 현장 5인 미만 사업체 등의 문제점을 꼽았다.
직장갑질119는 "전체 노동자 약 80%가 일하는 100명 미만 중소·영세 사업체는 위법천지 현장임에도 노조도 없어서 일체의 교섭력과 결정권 없이 시키는 대로 강제근로를 하고 있는 것이 노동자들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분석에 참여한 박성우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노동과 인권)는 "노동시간 관련 핵심문제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므로 논의의 목표도 장시간 노동체제의 실질적 종식이어야 한다"며 "한국처럼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사회에서 실근로시간을 단축하는 현실적인 방법은 표준이 되는 법정 기준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연장근로가 사실상 강제근로로 행해지는 상황에서 '자율적 선택권'이라는 미명 하에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확대하면 그 자율적 선택은 결국 사용자의 일방적인 노동시간 결정권 강화와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시간 노동, 고용창출 막는 수단 = 또한 박 노무사는 작업량이 몰리는 특정 기간에 '집중 노동'이 고용창출을 막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노무사는 "장시간 노동 사례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높은 업무강도에 따른 고충을 호소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인력충원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면서 "대다수 사업장에서 장시간 노동이 행해지고 있다는 자체가 대다수 사업장이 인력 부족 상태라고 평가하기에 무리가 없다"면서 "그럼에도 신규 채용이 아니라 기존 인력에 대한 연장근로체제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연구회는 "고용의 증감은 근로시간 제도만이 아니라, 급격한 고령화 추세 등 인구구조 변화, 경제 상황, 산업발전 등 다양한 요인의 복합적 영향을 받는다"면서 "연장근로 총량관리, 선택적 근로시간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 노사의 효율적인 근로시간 운영으로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면, 생산성이 제고돼 기업의 투자와 창업이 증가하고 일자리 창출로도 연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