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잡으려면 이민정책 바꿔야

2022-12-26 10:59:34 게재

미 하버드·다트머스대 교수 "외국인 노동자 늘려 노동력 부족 해소해야 물가 안정 가능"

올해 10월 미국 소비자물가가 연율로 7.7% 상승했다. 9개월 연속 물가상승률이 7%를 넘었다. 수요는 높은데 공급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관심은 수요를 낮추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에 쏠렸다. 연준의 통화정책은 미국 1억2240만 가계, 1억6450만 노동자, 3510만개 기업을 얼어붙게 했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오랜 시차를 두고 가변적인 효과를 낸다.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정부가 할 수 있는 게 따로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고든 핸슨 교수와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 매튜 슬로터 교수는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숙련, 비숙련 외국인노동자들을 보다 많이 유입시켜 미국경제의 공급능력을 늘려야 한다"며 "이민이 늘면 현재의 노동력 초과수요를 따라잡는 데 도움이 된다. 임금과 물가상승을 제한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9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시 한 슈퍼마켓에 진열된 버터 등 유제품. 유가공 공장의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으로 9월 버터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25% 상승했다. 사진 AFP=연합뉴스


올해 10월 미 전역의 구인 규모는 1030만명이었다. 반면 실업자는 430만명이었다. 저자들에 따르면 숙련노동자에 대한 H-1B비자, 비농업 계절노동자에 대한 H-2B비자를 늘리면 단기적으로 고용주들이 겪는 극심한 노동력 부족상황을 해소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난 10년 미국 이민자수 정체

미국으로의 이민은 지난 10년 간 사실상 정체됐다. 2011~2021년 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 비중은 13.0%에서 13.6%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에 극적인 감소가 있음을 의미한다. 2001~2010년 미국으로의 순유입은 연간 89만명에 달했으나 이후 10년 동안은 절반인 48만명에 그쳤다.

이민감소의 부분적 이유는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뒤이은 경기침체 때문이다. 미국에 유입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줄었다. 하지만 미국정부의 이민정책 역시 이민을 원하는 노동자들에게 걸림돌로 작용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앞서 미국은 불법이민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펼쳤다. 하지만 합법이민에 대한 비자 공급은 정체됐다.

2019년 미정부가 발급한 H-1B, H-2B비자는 10년 전과 비슷했다. 미국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한 교환방문 J-1비자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이후 유의미하게 늘어난 유일한 범주는 농업부문 노동자에 대한 H-2A비자였다.

하지만 코로나19 발생 이후 모든 이민프로그램이 일시적으로 멈췄다. 전세계 미국 대사관이 대부분의 영사업무를 중단하면서다. 현재 대부분의 미 대사관이 비자업무를 재개하고 있지만 영사담당 직원들은 아직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충원되지 못했다.

핸슨 교수 등은 "이민자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미국 노동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했다. 이민자들은 미국 출생률의 장기적 감소를 상쇄하는 것을 넘어 기동력도 갖추고 있다. 한 지역의 일자리가 늘어나거나 줄어들면 이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게 외국에서 태어난 노동자들이다. 노동력 공급과 관련한 지역적 불일치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노동자들이 없다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처럼 미국경제는 곤경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미국 환대산업(hospitality industry)이 적절한 사례다. 2019년 숙박 식음료 엔터테인먼트 등의 노동자 중 22.0%가 이민자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분야다. 기업들은 노동자를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미국정부의 비자 공급이 정체됐기에 이민노동자를 찾을 수도 없었다. 결국 2021년 말 엔터테인먼트와 숙박 식음료 서비스 노동자들 중 외국인의 비중은 18.4%로 하락했다. 반면 환대산업 일자리 공백률은 크게 상승했다. 올해 10월 기준 숙박, 식음료서비스 일자리 중 9.2%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미국경제 전반의 6.3%보다 훨씬 높았다.

이민 노동자와 미국 노동자 공존 가능

이에 대한 확실한 해법은 비농업 외국인 노동자들이 9개월까지 일할 수 있게 하는 H-2B비자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다. H-2B비자 소유자들의 일반적인 일자리는 식당이나 육가공 공장, 건설현장 등이다. 미국 기업들이 노동력 부족을 가장 절실히 호소하는 분야다.

하지만 미의회는 H-2B비자를 연 6만6000개로 한정하고 있다. 현재 건설과 식음료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공백 180만개에 비하면 너무 적은 수치다. 2021회계연도 2만2000개의 비자가 추가됐지만 미국 고용주들은 새발의 피라고 지적한다. 현재보다 최소 10배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H-2B비자 수를 늘린다 해도 미국에서 태어난 노동자들을 밀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글로벌개발센터'의 경제학자 마이클 클레멘스와 다트머스대 노동경제학자 이선 루이스의 연구에 따르면 H-2B비자를 가진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은 미국인 노동자 수를 늘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매출도 오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H-2B비자를 가진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숙련 미국 노동자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충한다는 의미다. 이 연구결과는 이민노동자들이 미국에서 태어난 노동자들의 임금에 별다른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다른 연구결과들과 공명한다.

고학력 외국인들을 3~6년 동안 고용할 수 있는 H-1B비자 프로그램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정부는 H-1B비자를 연 8만5000개로 한정하고 있다. 6만5000개는 학사 이상 학위소지자, 2만개는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로 제한된다. 지난 수십년 H-1B비자 수요는 공급을 크게 상회했다. 2022회계연도 30만8613명의 외국인이 H-1B비자를 신청했다.

H-1B비자의 발급 수가 적으면 미국 노동력뿐 아니라 생산성 성장도 제한된다. 고숙련 이민자들은 여러 측면에서 혁신성을 높인다. 이들은 특허출원 가능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기업을 찾기보다 기업이 이들을 찾는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숙련 이민자 고용을 늘리는 기업은 미국에서 태어난 노동자의 고용도 늘리는 경향이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미국노동자들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시사한다. 게다가 숙련 이민자들은 미국의 숙련 노동자뿐 아니라 비숙련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는 경향도 있다.

결국 H-1B비자 발급수를 늘리면 노동력 부족 대처와 생산성 성장 자극 두가지 측면에서 미국의 공급역량이 늘어난다. 이를 위한 가장 단순한 방법은 고숙련이면서 미국에서 살기 원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H-1B비자를 공급하는 것이다. 바로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외국계 학생들이다. 지난 학년도 미국 대학에 등록한 외국인 학생은 91만4095명이었다.

이민 관련 여론도 긍정적

미국 여론은 이민과 관련해 정치적으로 갈라진다. 특히 불법이민의 이미지가 강조되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사람이 많은 상황이다. 하지만 합법이민에 대한 여론은 놀랍게도 긍정적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민을 찬성한다.

갤럽은 올해 7월 미 전역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이민은 오늘날 미국에게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물었다. 전체적으로 70%의 응답자가 '좋은 일'이라고 답했다. 긍정적 답변은 전반적으로 나타났다. 남성 71% 여성 68%가 긍정적이었다. 모든 나이대에서 좋은 일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지만 특히 18~34세 젊은이들 83%가 긍정적이었다. 또 모든 학력집단에서 긍정반응이 높았지만 대학학위가 없는 응답자에서도 64% 찬성이 나왔다.

정치적으로 공화당 지지자들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46%가 좋은 일 45%가 나쁜 일이라고 답했다. 반면 무당파 75%, 민주당 지지자 86%가 좋은 일이라고 답했다. 저자들은 "하지만 이런 차이는 H-1B, H-2B 등 합법적 이민이 아니라 공화당이 특히 강조하는 불법이민에 대한 이미지가 투영되면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고숙련 이민자들에 대한 지지는 더 높고 초당파적이다. 올해 8월 경제혁신그룹(EIG)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 71%가 숙련 이민자들의 입국을 찬성했다. 민주당 지지자 83% 공화당 지지자 60% 무당파 72%가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공화당 지지자 82% 민주당 지지자 78%가 이민정책 개혁이 향후 12개월 동안 최고 우선순위 과제라고 답했다.

저자들은 "이민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잡는 도구가 돼야 한다. H-1B, H-2B비자 프로그램을 확대하면 미국 노동력 부족사태를 즉시 완화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들이 소비자에 전가하는 물가압력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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