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사전협상제, 아파트 개발로 변질되나

2023-01-04 13:52:25 게재
"토지가치가 오른 만큼 차액을 모두 공공에 기여하겠다." 도시계획으로 묶여있던 토지를 풀어주면 1800억원 가까운 토지가치상승분 전체를 내놓겠단다. 최근 부산 사하구 옛 한진중공업 부지 개발사가 부산시에 한 제안이다. 부산시도 이 제안을 받아들여 일사천리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다.

얼핏 보면 모든 이익을 다 내놓고 다 받아낸 듯하다. 하지만 이면을 보면 사정이 다르다. 원래 이 땅은 공장용지다. 도시계획상 아파트 개발이 안되는 곳이다. 그런데 준주거지역과 일반상업지역으로 바꿔 최고 높이 49층 아파트 3600세대를 짓겠다고 한다.

박형준 시장 취임 이후 부산에는 이런 식으로 아파트를 짓게 허가해주는 사전협상제가 열풍이다. 1호 사전협상제 대상인 해운대 한진CY 부지는 준공업지역을 일반상업지역으로 바꿔 최고 66층 아파트 2076세대가 들어선다. 2호 사전협상제 대상인 기장군 한국유리 부지도 일반공업지역이 준주거지역으로 바뀐다. 최고 48층 아파트 2086세대가 지어지고 주거변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생활형숙박시설 570실도 예정돼 있다. 부산외대 이전 부지에도 아파트가 1300세대 들어설 계획이다.

개발이 어려운 곳에 아파트를 짓는다는데 누가 탓할까. 그런데 이 땅들이 단순 유휴부지로 보기는 어렵다. 부지들이 각 지역 핵심위치에 있고 대부분 바다조망이어서 아파트 분양도 손쉬울 전망이다.

반면 서울시는 어떤가. 서울시가 지금까지 완료한 7곳의 사전협상제 대상지들은 복합업무시설이 주목적이다. 아파트는 통틀어 3000세대도 되지 않는다. 강동구 서울승합차고지 400세대, 용산구 철도병원 685세대 등이다.

송파구 성동구치소는 아파트 600세대가 들어서지만 신혼희망타운 700세대도 함께 짓는다. 마포구 홍대역사나 용산구 용산관광버스터미널, 강남구 한전부지, 서초구 코오롱부지들은 아파트 없는 복합업무시설 위주다. 아파트 개발은 최대한 지양한다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이러다보니 부산시 사전협상제는 아파트 개발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다 그나마 받던 토지가치상승분마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게 최근 부산시 태도다. 시민단체들에서는 "사전협상제도를 전면 개혁하지 않으면 제2의 대장동 특혜를 생산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나 국회에 묻지 않을 수 없다. 토지가치 상승분 내에서만 공공기여를 받도록 한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자세는 안된다. 혹시라도 엇나갈 가능성은 없는지 지켜봐야 하고 허점은 빨리 고쳐야 한다. 이미 1년 넘게 대장동 개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나라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일이 아니다.
곽재우 기자 dolboc@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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