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와 식량 안보

밀 비축량 9일치, 국산 밀 생산량은 더 처참

2023-02-01 11:10:10 게재

보험처럼 챙겨야 할 식량 안보, 밀·콩자급률 높여야 … '논에 밀 생산단지 조성' 정부 대책 시험대

내일신문은 자유무역협정(FTA) 교육홍보 지원사업으로 '학교로 간 FTA' 사업을 진행했다.
'FTA 데이터를 활용한 통계 및 계량경제학 기초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수업에는 수도권 15개 고교, 총 450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수업 후 총 85개의 과제탐구보고서가 제출되었고, 이 중 1차 학교별 심사와 2차 서류평가, 3차 발표대회를 거쳐 수상 팀을 결정했다.
고등학생 수준의 탐구라 오류와 한계도 분명하지만, 학생들의 눈을 통해 우리의 FTA 관련 현안을 다시 보는 기회를 가져 본다.

국산밀 수확기 생육조사 모습. 정부는 지난해부터 수입밀과 국산밀 가격 차이의 30%를 보전해 국산밀 생산을 지원하고 있다. 사진 농촌진흥청 제공


시장 개방이 식량자급률 하락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산밀은 수입밀에 비해 가격이 3배 비싸 국산밀을 경작하는 농지가 줄었고, 그만큼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식량안보 위협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식량 생산이 부족한 나라는 시장개방으로 다른 나라에서 자유롭게 곡물을 사들일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물론 급격하게 진행되는 기후 변화로 식량 문제를 자유로운 무역에 의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식량자급은 국가별로 다급하게 안보정책으로 자리잡게 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식량자급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FTA 데이터 교실'에서 우수상을 받은서울 한양대사범대학부속고 학생들의 연구를 통해 FTA 시장 개방에 따라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하락세인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점검한다.


◆먹거리 80% 수입, 국제 정세에 민감 = 세계에서 모든 식량을 100% 자급하는 국가는 없다. 그런데 왜 지금 식량안보를 중요하게 이야기할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식량가격이 치솟았다. 두 나라가 전 세계에 밀 30%·옥수수 20%·해바라기씨 80%를 공급했는데 전쟁의 영향으로 우크라이나 수출용 곡물 98%가 통과하던 흑해를 러시아가 차단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비우호국을 향해 곡물 수출을 중단했다.

두국가로부터 밀을 수입하던 나라들은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로 눈을 돌렸지만 인도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작년 5월 갑자기 밀 수출 금지령을 내렸다. 유럽 최대의 옥수수 수출국인 루마니아는 지난해 가뭄으로 옥수수 생산량이 크게 감소해서 내수용을 먼저 확보하고 남은 물량만 수출했다. 비슷한 시기에 인도네시아는 팜유, 말레이시아는 닭고기, 파키스탄은 설탕 수출을 제한했다.

콩·설탕·커피·오렌지 수출 1위국인 브라질에서도 가뭄과 홍수가 반복됐다. 기후 변화는 세계의 식량 질서를 크게 흔들고 있다. 세계 식품 가격이 급속히 오른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지만 식량 문제는 그 이전부터 심상치 않았다.

◆농업 기반 유지가 관건 = 세계 식량위기는 우리나라 식량안보 위기를 부른다. 곡물 수급에 대해 불안감이 높지 않은 것은 쌀 식량자급률이 84.6%로 높아서 일어난 착시 현상이다. 2021년 밀자급률은 1.1%, 콩은 23.7%, 보리는 33.3%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021년 2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1970년대만 해도 곡물자급률이 80.5%에 달해서 국내 농촌에서 생산한 곡물로 대부분 소비가 이뤄졌으며 수입 농산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안동환 서울대 농생명과학대 교수는 "곡물자급률 저하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며 "FTA 등 국가 간 협상에 따른 시장 개방이 그중 하나고 우루과이 라운드 등 WTO 주도의 다자간 협상 또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FTA 체결 국가 간에는 사실상 자국의 농산물을 지킬 보호막은 사라졌다.

정부가 찾은 해결책 중 하나는 직불금이다. 전략작물직불제는 쌀 대신 밀과 콩 등 전략 작물을 재배하면 정부가 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부터 전략작물직불제를 시행해 기존 쌀을 재배하던 농가가 겨울에 밀이나 여름에 콩을 이모작하면 1㏊ 당 250만원씩 지원한다. 작물 전환을 유도해 쌀 재배 면적을 줄이고 밀과 콩의 생산량을 높여 식량 안보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정부는 전략작물직불제 예산으로 올해 1121억원을 편성했다. 정부 예측대로 쌀 재배면적이 줄어든다면 밀과 콩의 자급률도 늘어날 수 있다.

◆자급률·해외공급망·비축량 높이는 삼박자 접근법 = 식량안보를 위해서는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해외 조달 능력을 키우고 비축을 늘리는 삼박자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023년 국산 밀 전문 생산 단지로 74곳을 선정했다. 지난해부터 국산 밀 가공업체를 대상으로 수입 밀과 국산 밀 가격 차이의 30%를 보전해 국산 밀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정부의 밀자급률 목표치는 2027년까지 8.0%로 올리는 것이다.

정부는 국내기업이 해외 곡물유통망을 확보하도록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곡물을 건조·저장· 분류·운송하는 유통시설인 곡물 엘리베이터를 2027년까지 다섯곳으로 늘리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곡물 엘리베이터는 곡물 주산지 인근이나 강·항만·철도 부근에 자리 잡으며 현재 포스코가 우크라이나에서, 팬오션이 미국에서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밀소비량이 2021년 36.9kg인데 비축량은 9일분에 불과하다. 지금 제대로 비축하는 것은 쌀뿐이며 밀과 콩은 유사시에 대비한 비축 물량이 충분하지 않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예산이 많이 들어가지만 위기가 오지 않으면 예산 낭비라는 말을 듣는 것이 곡물 비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이 참가하고 있는 비상 쌀 비축제(APTERR)에 밀도 포함시켜 비상시 활용할 수 있는 체재를 구축하기 위해 회원국들과 적극 논의할 예정이다.


제작지원 2022년 FTA 분야 교육홍보사업

[탐구보고서 팩트 체크]
싱가포르 식량안보지수 1위 기록한 적 있다
싱가포르는 2019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식량 안보 지수(GFSI)에서 1위를 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농산물 재배에 이용하는 토지가 전체의 1%밖에 안 되며 식량 자급률도 10%에 불과하다.

식량 안보 지수는 '여러 평가 지표 중 실질적으로 얼마나 식량을 잘 조달할 수 있는가'라는 가용성 지표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지표는 국산과 수입산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력이 좋아 수입에 문제가 없으면 가용성 지표가 높게 잡힐 수 있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로 인한 물류 제한과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수입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며 "공급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외부로부터의 공급에 높은 비중을 두는 지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2030년까지 식량 자급률을 30%로 높이는 '30 by 30' 정책을 추진한다. 식량 '조달' 능력만으로 식량 안보를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해외에서 농경지 개발해 곡물 수입하면 어떨까
농사짓는 땅은 매년 줄어들고 농촌은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기후가 안 맞아 국내 생산이 어려운 품목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자본으로 외국에서 농경지를 개발해 들여오면 되지 않을까.

2007~2008년 세계식량위기를 계기로 우리나라 자본은 해외에서 본격적으로 농업 개발을 추진해왔지만 한계가 있었다. 2021년까지 해외농업자원개발을 신고한 기업 206곳 중 실제 경영이 이뤄진 곳은 75곳뿐이다. 국내로 반입된 곡물량은 2021년 63만 톤으로 전체 수입량의 3.8%에 불과하다. 생산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해당 국가가 농산물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리면 국내 반입이 어려워진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까지 식량안보를 위한 해외 농업개발은 효과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손희승 리포터 sonti1970@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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