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쟁, 에너지전환 5~10년 앞당겨

2023-02-17 11:16:01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추산 … 에너지위기가 신재생엔 오히려 기회, 각국 보조금 경쟁도 한몫

기후변화 대처와 관련해 우려할 만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의 석탄 생산과 소비량이 상승하고 있다. 퇴역 예정이던 화석연료 발전소는 계속 돌아간다. 에너지위기를 맞은 유럽 각국은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기 위해 가스 생산국들과 장기거래를 맺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아드녹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등 에너지기업들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수천억달러를 비축하고 있다. 주요 민간 석유·가스 생산기업들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상당수 국가들이 자국민의 겨울나기를 돕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며 화석연료 소비를 장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촉발된 이같은 상황으로 글로벌 녹색에너지 전환은 물 건너간 것일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15일 온라인판 기사에서 당장의 현실을 벗어나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단기적으로는 고통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큰 이득이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녹색에너지 전환을 더욱 앞당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시장의 격변이 녹색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하는지 방해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화석연료 소비량, 에너지 효율성, 신재생에너지 구축 등 요소를 살폈다. 이 매체는 "그 결과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대란은 녹색에너지 전환을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 앞당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단기적으론 고통, 장기적으론 이득

전세계가 우려하는 주요 이유는 석탄소비량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전쟁 전만 해도 2013년 정점에 달한 석탄 수요는 장기적으로 지속 하락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하지만 지난해 글로벌 석탄 소비량이 1.2% 늘어 사상 처음 80억톤을 넘었다. 가스 가격이 치솟으면서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석탄 소비량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각국은 기존 석탄발전소 수명을 늘리거나 폐쇄했던 발전소의 문을 다시 열었고 생산제한량을 풀었다. 특히 중국과 인도의 2022년 석탄생산량은 각각 8%, 11% 늘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글로벌 석탄수요가 2025년까지 지속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를 계속 줄여갈 것이고, 글로벌 LNG 공급은 수요를 맞추기에도 빠듯하다. 결국 석탄은 유럽의 최후 보루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25년 이후엔 상황이 달라질 전망이다. 미국과 카타르 등 대규모 신규 LNG 프로젝트가 시작돼 글로벌 가스시장에 숨고를 여지를 제공한다. 게다가 풍력과 태양광 발전 호황으로 화석연료의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 특히 중국이 주목할 국가다. IEA는 중국이 2025년까지 1000테라와트시에 달하는 신재생에너지 용량을 확충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현재 일본의 전체 전력생산량과 비슷한 규모다.

반면 전세계가 현재 생산하는 석유와 가스량은 이미 최대치에 근접하고 있다. 러시아는 가스 수출 루트를 쉽사리 다각화하기 어렵다. 석유생산시설에 투입할 인력과 부품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곧 현재 생산량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화석연료를 생산하는 민간기업들은 지난해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하지만 신규 프로젝트 투자는 감소하고 있다. 10년 전 수준보다 크게 낮은 상황이다. 게다가 1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데 따른 자본지출액은 2017년 이후 30% 상승했다.

향후 석유와 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 가격은 높은 상태를 유지할 전망이다. 이는 화석연료에 대한 가계와 기업의 의존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전세계 각국의 에너지집약도는 2% 감소했다. GDP 한 단위를 생산하는 데 투입된 에너지 양이다. 한해 2% 감소는 지난 10년 동안 가장 큰 하락세다. 유럽의 에너지 절약 노력이 특히 두드러졌다. 올 겨울 이례적으로 온화한 온도가 유럽에 순풍이 됐다. 유럽의 올 겨울 전력소비량은 지난해 대비 6~8%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은 에너지 효율성 제고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전세계 정부와 가계 기업이 에너지 효율성에 투자한 액수는 5600억달러에 달한다. 특히 두가지 부문에 집중됐다. 전기차와 열펌프다. 전기차 판매량은 2021년과 2022년 각각 두배 가까이 늘었다. 그리고 지난해 전세계 가정과 기업이 건물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수는 전년 대비 50% 상승했다. 또 지난해 시작된 육상 풍력발전 프로젝트 용량은 128기가와트로 역대 최고치였다. 전년 대비 35% 늘었다.

지난해 풍력과 태양광에 대한 글로벌 투자는 4900억달러로 전년 3570억달러에서 크게 늘었다. 사상 처음 석유와 가스에 대한 기존·신규 프로젝트 투자를 넘어섰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라이스타드 에너지'는 "향후 2년 동안 풍력과 태양광에 대한 투자가 지속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요국의 청정에너지 보조금 경쟁도 한몫한다. 미국은 '인플레감축법'(IRA)을 통해 녹색에너지 기술에 3690억달러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는 '탄소중립산업법'을 공개했다. 최소 2500억유로(약 2700억달러)를 청정기술 기업들에게 제공한다.

EU는 또 태양광 발전용량 목표치를 두배 늘리는 시한을 기존 2030년에서 2025년으로 5년 앞당겼다. 개별국가들도 청정에너지에 진심이다. 독일은 2030년 기준 총 전력생산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65%로 잡았지만 지난해 7월 이를 80%로 상향 조정했다. 중국은 지난해 6월 공개한 '14차 5개년 에너지계획'에서 2023년까지 전력생산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3%로 맞추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사상 처음이다. 중국 지방정부들 역시 녹색에너지 보조금을 크게 늘리고 있다.

물론 청정에너지 보조금 경쟁은 비효율성을 낳을 우려가 있다. 미국의 IRA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 단서가 붙었다. 이에 대응해 EU 집행위는 유럽 각국의 보조금 규정을 완화할 계획이다. 각국의 경쟁적인 산업정책은 가뜩이나 어려운 인플레이션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바로 비용 인플레이션이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알루미늄 구리 철강 등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다. 이들은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필수부품인 케이블과 터빈, 패널의 주요 원자재다.

일부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이긴 하지만, 주요국 기준금리 인상은 비용상승을 더 압박할 수 있다. 이는 특히 태양광과 풍력 발전단지 개발기업들에게 문제가 되는 지점이다. 신재생에너지 기반 발전은 기존 화석연료 기반 발전보다 선투입 자본 비중이 크다. 게다가 인력 부족 문제도 있다. 컨설팅기업 맥킨지의 나미트 샤르마는 "EU가 2030년 청정에너지 목표치를 맞추려면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개발하고 구축하고 운영하는 인력의 숫자가 현재보다 4배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신재생에너지 기업들이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최근 주요 해상 풍력발전 기업들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상당 부분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론상 기업들은 프로젝트 입찰에 더 높은 가격을 써내는 방식으로 소비자에 비용상승분을 전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각국의 입찰 관련 국가규정은 최저가를 유도하고 있다. 게다가 유럽은 신재생에너지 발전기업들에 횡재세를 부과하고 도매전력가격에 상한선을 뒀다. 사실상 수익을 제한하는 조치다.

각종 난관에도 전문가들 낙관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에너지 전환 시기가 5~10년 단축될 것을 낙관한다. 글로벌 투자가 몰리고 각국의 목표치가 상향되면서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커진다는 전망이다. IEA는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용량이 2022~2027년 2400기가와트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중국의 현재 발전능력과 맞먹는다. 우크라이나전쟁 이전인 2021년, IEA가 추산한 것보다 약 30% 높아진 수치이기도 하다. 또 같은 기간 신재생에너지는 글로벌 발전용량 증가분의 9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녹색전력 생산량이 많아지고 화석연료 소비가 줄어들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우크라이나전쟁이 있기 전 예상치보다 더 큰 폭 줄어들 전망이다. 데이터기업 S&P글로벌은 "에너지연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2027년 정점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라이스타드는 "전기와 난방발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올해 정점에 달할 수 있다"고까지 내다본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예상의 근거는 최근 각국의 화석연료 확보 러시가 오래 지속될 수 없고 신재생에너지 붐을 압도하기에도 역부족이란 분석을 반영한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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