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구는 사회·경제적 재난 현장"
안상미 피해대책위원장 "피해자 보호 나서야"
주거·시민·사회단체,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 행진
"전세사기는 정부의 정책 실패를 발판으로 한 사회적 재난입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안상미 위원장은 9일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강조하고 "더 이상 사인간의 거래로 여기지 말고 정부가 신속하게 피해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은 이른바 '건축왕'으로 불리는 남 모씨와 임대인, 부동산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인, 건물관리업체 등 50여명이 조직적으로 공모해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가로챈 사건이다. 피해자는 2700여 세대 5000여명에 달한다.
이 사건으로 보증금 7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A씨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빌라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안 위원장은 "지금 피해자들은 자신의 주택에서 이미 쫓겨났거나 쫓겨날 상황에 처해있다"며 "미추홀구 일대는 전례 없는 참혹한 사회·경제적 재난 현장"이라고 했다.
안 위원장은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고 강조했다. 남씨 일당들이 거래가 없어 시세가 없는 빌라와 나홀로 아파트들을 독점하듯 소유해 조직적으로 시세를 조작했기 때문에 임차인들은 사기를 당하는 것을 알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남씨 일당의 사기 행각이 가능했던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허그(주택도시보증공사)가 공시지가의 150%까지 시세로 인정해주고 감정평가사까지 이용하면 더 높은 시세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해 시세 부풀리기가 가능했다는 것. 그 결과 깡통주택이 됐고, 피해는 고스란히 임차인에게 돌아왔다는 얘기다.
안 위원장은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주도적으로 전세사기 사건을 수사하고 피해자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대책으로 긴급 주거지원과 저리 대출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의 긴급주거는 6개월 마다 갱신해야 하고, 저리 대출은 새로운 주거지로 이동할 때만 이용할 수 있는 등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안 위원장은 "정부의 긴급주거는 피해회복이 되도록 거주기간을 늘려주고 저리 대출의 조건과 용도도 더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깡통주택 경매시 낙찰 의사가 있는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해줄 것을 요구했다. 한편 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와 참여연대, 민달팽이유니온 등 53개 주거·시민사회단체·정당 등은 8일 전세사기로 극단적 선택을 한 A씨를 추모하는 행진을 진행했다. 이들은 서울역 12번 출구 앞에서 용산 대통령 집무실까지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전세사기 피해, 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 등이 적힌 손팻말과 국화를 들고 추모행진을 했다.
행진 이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전세사기는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며 "전세사기는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재난"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수년간 이어진 집값과 전세값 폭등, 그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이어진 전세대출과 묻지마 보증, 등록임대주택 관리 부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절규와 시민사회단체의 대책 요구에도 시간을 허비한 여야 정치권과 전임 그리고 현 정부 책임자들은 고인이 외로이 희망의 끈을 놓을 때 무엇을 했느냐"며 정치권과 정부에도 책임을 물었다.
이들은 "더 이상 전세사기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지 말라"며 "이제라도 전세사기를 사회적 재난으로 인정하고 국가가 책임있게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