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영역 평가강화

대학 '교과영역 평가 강화' 기대와 우려

2023-04-19 11:12:18 게재

전공 연계 권장 과목제시 확대 … 5개 대학 공동 연구로 자연계열 권장 과목 제시

2024학년 대입부터 학생부종합전형의 주요 평가자료인 학생부 항목이 축소되고 자기소개서도 폐지된다. 대학은 이같은 평가 환경의 변화와 고교학점제 도입, 성취평가제 확대에 대비해 평가 변별력 확보가 과제다. 교과 영역의 다면평가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최근 전공 연계 권장 과목을 제시하는 대학의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학문의 특성상 인문·사회계열보다 자연계열의 경우 전공 연계 과목이 좀 더 뚜렷한 편이다. 고등학교 수학, 과학 과목이 곧 대학 전공 공부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대학의 권장 과목 제시가 확대에 대한 긍정과 우려의 시선이 공존하는 가운데, 이런 추세가 고등학교 교육과정 편성과 학생들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출처 이미지투데이

 


동국대가 낸 '2024학년 학생부 위주 전형 가이드북'을 보면 학생부를 평가할 때 이수과목이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국대는 학생부가 주요 평가자료인 학생부종합전형 외에 학생부교과전형에서도 서류평가를 30% 반영한다. 배점에 차이가 있을 뿐 평가 항목은 동일하다.

◆수학 물리 외에 화학이 중요한 반도체 전공 = 동국대는 이번 가이드북에서 물리·반도체과학부에 지원한 두 학생의 과목 이수 사례를 비교했다.

동국대 물리·반도체과학부는 물리학전공과 반도체과학 전공으로 구성된다. 물리학전공은 수학과 물리 역량을 중시하며 반도체과학전공은 수학 물리 외에도 화학 역량이 바탕이 된다.

반도체에는 화학반응을 이용한 다양한 공정이 사용된다. 이를 통해 반도체 내부의 전기적 특성을 조절하고 다양한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동국대 물리·반도체과학부는 학제 개편으로 올해부터 물리학과와 시스템반도체학부로 나뉠 예정이다. 시스템반도체학부의 경우 화학 과목의 중요성이 더 커질 전망이다. 동국대의 학생부 위주 전형에 지원한 학생들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수능 준비를 이유로 소홀히 한 3학년 2학기가 대입 전형 자료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재원 동국대 책임입학사정관은 "과목 선택에서 요구되는 태도에는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주도성뿐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의한 책임도 포함된다"며 "선택의 결과에 따라 대입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한 학업 역량을 주어진 교육과정 안에서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공 연계 과목, 지원자 대비 합격자 이수 비율 대체로 높아 = 경희대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는 최근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으로 공동 연구한 '대학 자연계열 전공 학문 분야의 교과 이수 권장 과목 안내' 자료를 발표했다.

자연계열의 학문 특성상 학습단계가 비교적 뚜렷해 5개 대학의 전공 모집 단위를 14개 학문 분야별로 범주화한 뒤 수학·과학 교과를 중심으로 핵심 과목과 권장 과목을 제시한 것이다.

모집 단위별 전공 연계 교과 이수 과목을 제시한 서울대에 이어 주요 대학의 연구 결과여서 주목된다. 이들 대학은 이 연구 결과를 2024학년부터 학생부종합전형 평가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서는 실제 종합전형 지원자의 과목 이수 현황을 분석한 자료도 공개됐다. 광역 모집 단위로 선발하는 성균관대를 제외한 경희대 고려대 연세대 중앙대 4개 대학의 2022학년 종합전형 학과별 지원자의 수학 과학 과목 이수 현황을 파악한 것으로, 조사 대상은 지원자 29만766명, 합격자(충원 합격자 포함) 3580명이었다.

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우선 '간호/보건 분야'는 '미적분'과 '생명과학I' '화학I' '생명과학Ⅱ'가 90%를 넘는 높은 이수 비율을 보였다. 합격자 이수 비율이 가장 높은 과목은 '생명과학I'이었다.

'건설/건축 분야'는 90% 이상의 이수 비율을 보인 '미적분'과 함께 '기하'의 경우 지원자 대비 합격자 이수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학의 경우 지원자 이수 비율은 70~80%대로 다소 낮았지만, 합격자 이수 비율은 증가했다. '기계 분야'는 '미적분' '물리학I' '물리학Ⅱ' 이수 비율이 90% 이상으로 높았다. '산업 분야'는 97%의 이수 비율을 보인 '미적분'과 함께 '확률과 통계' 합격자 이수 비율이 지원자 대비 14%나 상승한 89%로 나타났다.

'약학 분야'는 90% 이상의 이수 비율을 보인 '미적분' '화학Ⅰ' '생명과학Ⅰ'과 함께 '화학Ⅱ'는 이수자 대비 합격자 비율이 6%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의학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재료/화공·고분자·에너지 분야'는 '미적분' 94%, '화학I'이 94%로 가장 높은 이수 비율을 보였고, '전기·전자 분야'는 '미적분' 92%, '물리학I'이 90%로 가장 높았다. '컴퓨터 분야'는 '미적분' 94%, '물리학I'이 88%로 가장 높았다.

14개 학문 분야별 권장 과목은 5개 대학의 자연계열 교수 412명과 고교 교사 47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종합전형 평가 경험이 있는 학과별 위촉교수사정관 132명의 델파이 조사, 교육청과 타 대학 입학사정관 등 전문가 자문회를 통해 도출했다.

우선 '핵심과목'은 학과(부)에서 수학하기 위해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며, '권장과목'은 '가급적' 이수를 권장하는 과목이다.

수학에서는 전반적으로 '미적분'과 '확률과 통계' 과목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특히 선택형 수능이 도입되면서 자연계열 지원 학생들이 '확률과 통계'를 이수하지 않거나 이수할 수 없는 교육과정을 편성한 학교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4개 학문 분야가 모두 '확률과 통계'를 핵심과목이나 권장과목으로 제시해 주목된다. 서울대도 수능과 별개로 상당수 자연계열 모집단위에서 '확률과 통계' 이수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연구팀은 "세부 전공이 아닌 14개 학문 분야별로 범주화한 것은 교사 수급 등 교육 환경에 따른 학교 간 차이, 지나친 세분화로 인한 학생의 과목선택에 따른 준비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학교 현장에서 나오는 우려의 반응 =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한 학교 현장의 반응은 모집단위에 필요한 이수과목을 분명하게 제시한 데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교과 중심의 권장과목이긴 하지만 지역의 작은 학교들은 이들 과목조차 온전히 개설하지 못한 곳이 많다. 공동 교육과정을 활용하더라도 정규 교육과정만큼 내실있게 운영되기는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서울 배재고 장지환 교사는 "지역의 소규모 학교들은 수학에서 '기하'뿐 아니라 '물리학Ⅰ·Ⅱ' 과목도 제대로 개설하지 못한 곳이 많다"며 "수능에 때문에 원하는 학생들이 많아 '지구과학Ⅰ'을 개설하려고 해도 기간제 교사를 구하는 것조차 '하늘의 별따기'인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온·오프라인 공동 교육과정을 대안으로 말하지만 실제로 전국의 공동 교육과정 개설 수업들이 내실있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된 게 없는 상황이다.

권장과목으로 제시된 수학 과학 과목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과정은 학교의 영역인데 선택형 수능에 이어 대학의 권장과목 제시가 자꾸 늘어나면 현재 교육과정의 취지인 '학생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대학들이 재갈을 물린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기수 기자 · 정애선 내일교육 기자 as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