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탈취 당한 스타트업들의 호소
"대기업은 갑질, 법은 허점투성이 … 누가 창업하겠나"
청년창업가들 "협력 미끼로 정보 빼내" 성토
CES 혁신상 수상 스타트업도 분쟁으로 고통
형사처벌 규정 신설 등 법·제도 개선 필요
공익 재단법인 경청(이사장 장태관)은 1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 청년창업가들이 모였다. 잔뜩 긴장한 이들은 대기업과 공방을 벌이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들이다.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는 롯데헬스케어, 윤태식 프링커코리아 대표는 LG생활건강, 방성보 키우소 대표는 농협경제지주, 송제윤 닥터다이어리 대표는 카카오헬스케어, 홍성남 팍스모네 대표는 신한카드와 분쟁하고 있거나 소송 중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대기업이 상생협력하자며 접근한 뒤 아이디어와 기술을 탈취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대기업의 막강한 로펌 앞에서는 법도 무용지물"이라며 "허술한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강력한 처벌규정을 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업 상생협력의 민낯 = 이들 5개사 분쟁은 '대기업의 상생협력 제안'이 시발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알고케어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으로 사물인터넷(IoT) 기반 개인맞춤 영양관리 솔루션을 개발했다. 세계 최대 소비자가전 전시회 CES에서 3년 연속 혁신상을 수상해 유명세를 탔다. 롯데지주 헬스케어팀은 2021년 알고케어에 투자와 사업협력을 제안하며 만남이 시작됐다.
프링커코리아는 삼성전자 사내벤처 출신으로 세계 최초 1초만에 완성되는 타투프린터 '프링커'를 상용화했다. CES 혁신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LG생활건강은 2019년 프링커코리아에 협업가능 여부와 공동개발을 제안하며 연결됐다.
닥터다이어리는 연속혈당측정기(CGM)와 모바일 앱을 연동하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앱은 100만 다운로드를 넘어섰다. 2020년 카카오인베스트먼트와 카카오브레인은 닥터다이어리에 투자와 협업을 제안했다.
키우소는 농림식품부 지원으로 축산업 선진화를 위한 목장관리플랫폼 '키우소'를 출시했다. 이 플랫폼은 농협중앙회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장관상)을 수상했다.
팍스모네는 2007년 신용카드 회원간 신용카드 결제에 대한 핀테크를 구상해 특허를 받았다. 미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도 특허를 등록했다. 2015년 신한카드와 신한데이타시스템(현 신한DS)은 팍스모네에 서비스 내용과 특허에 관한 설명을 요청했다.
◆협력 결렬돼자 늑대로 변신 = 모두 대기업이 먼저 스타트업에 손을 내밀었지만 협력은 무산됐다. 대기업은 협력이 결렬되자 곧바로 스타트업과 유사한 서비스나 제품을 내놓았다. 스타트업들이 "아이디어와 기술을 탈취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알고케어는 협력논의 과정에서 롯데지주 헬스케어팀 요구로 알고케어 시제품을 최초 공개했다. IoT 디스펜서 구동 구조를 3회에 걸쳐 시연했다. 2021년 사업협력 협상이 결렬되자 롯데지주는 2022 롯데헬스케어 법인을 공식 출범시켰다. 롯데헬스케어는 2023년 CES에 영양제 제공 디스펜서 시제품을 공개했다.
LG생활건강과 프링커코리아도 기밀유지협약(NDA) 체결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NDA 체결 후 실무자들과 연락 두절되면서 2019년 협업이 무산됐다. 협업 무산 이후에도 LG생건은 프링커코리아 제품을 구매했다. 세계 최대 모바일전시회 'MWC 2023'에서 LG생건은 타투프린터 임프린투 시제품을 공개했다.
키우소와 농협경제지주도 2021년 업무협약 체결과 서비스설명회 개최 등 협력을 넓혀갔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갈등을 딛고 협력방안을 모색했지만 결렬됐다. 방성보 대표는 "농협경제지주는 2022년 키우소와 매우 유사한 'NH하나로목장'을 출시하고 키우소의 한우종합개체이력 DB 접속을 차단하면서 분쟁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닥터다이어리는 카카오 계열사와 2022년 상반기까지 협력을 이어갔다. 닥터다이어리는 NDA와 MOU 체결한 후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제공했다. 카카오헬스는 3월 유사한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알고케어 정지원 대표는 "대기업이 지식재산권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는 스타트업 기술개발 의지를 꺾는 일이자 사회적책임을 저버리는 처사"라고 성토했다. 닥터다이어리 송제윤 대표는 "스타트업의 영업비밀보호와 특허침해 방지에 속수무책"이라며 제도개선을 촉구했다.
◆답답한 건 허술한 법 = 스타트업들을 더 답답하게 하는 건 법의 허술함에 있다.
재단법인 경청 소속의 박희경 변호사는 "부정경쟁방지법 상 아이디어나 성과물 침해행위도 형사 처벌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부정경쟁방지법에는 아이디어나 성과물 침해 행위와 데이터 부정사용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박 변호사는 "상표나 상호, 영업비밀 등의 침해는 형사처벌 조항을 두고 있는 반면 아이디어나 성과물 침해는 피해자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본질이 동일한데도 형사처벌 규정에서 제외돼 있다"고 설명했다.
행정조사의 한계도 지적됐다. 현행 법상 아이디어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행정조사를 하더라도 강제성 없는 '시정권고'만 가능하다. 박 변호사는 "행정조사 범위를 성과물 침해까지 확대하고 아이디어 침해와 데이터 부정사용으로 위법성이 인정되면 시정권고를 넘어 시정명령까지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K-디스커버리(증거수집제도) 도입도 주문했다. 대기업 기술탈취를 피해기업이 입증하는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기나긴 소송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게 형벌이나 다름없다.
홍성남 팍스모네 대표는 "신한카드는 특허법원의 결정까지 무시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며 "이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소송으로 괴롭히는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LG생건은 윤태식 프링커코리아 대표를 개인정보보호법위반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다.
장태관 경청 이사장은 "아이디어와 기술만 믿고 창업했는데 대기업이 협업을 이유로 기술자료를 확보하고 동일한 사업을 한다면 누구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대기업이 열린 자세로 상생방안을 마련하고 국회와 정부는 제도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