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규수 교수
"한·일 역사, 있는 그대로 사실확인 중요"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 옮겨 …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식민지배 관련해 분석해야
"이 책을 쓴 저자는 아사히신문 학술전문기자로 40년 동안 취재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징용공(강제동원 노동자)' 소송에서 우리 법원의 판결을 보게 돼요. 그러면서 '일본인들은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사실은 무엇인지' 등이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해 기자 시절에 작성한 기사를 바탕으로 직접 사료들을 찾으며 재구성한 것이 이 책입니다. 직접 사료들을 찾아 다녔고 새로운 사료들을 발굴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독자들을 가르치기보다는 사실을 전달해주면 판단은 독자들이 한다는 신념으로 글을 썼다고 들었습니다."
24일 서울 광화문 강덕상자료센터 출범을 준비하는 사무실에서 만난 이규수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최근 출간된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와타나베 노부유키 지음, 삼인)을 번역한 역사학자다.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 언어사회연구과 한국학연구센터 교수를 지냈고 귀국 이후 전북대 고려인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은 동학농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을 둘러싼 역사의 진실을 연구한 책이다. 일본인 저자는 강제동원 노동자 소송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의 골격인 '한국병합은 무효이자 불법'이라는 논리가 일본인에게는 '헛소리'로 들리는 상황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 역사 인식의 간극은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되짚어나갔다.
■저자는 관동대지진에서 참혹하게 조선인들이 살해된 원인을 역사적으로 해석했는데 어떤 내용인가.
책의 부제가 '동학농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을 둘러싼 시선'이다.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은 관동대지진 당시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니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 과정 속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한다.
이는 본인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로 관동대지진을 주제로 평생을 연구했던 고 강덕상 선생이 강조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지면서 농민군들을 탄압하기 위해 일본에서 군인들이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참가했던 군인들이 일본에 돌아가 재향 군인회를 만든다. 이는 자경단의 핵심 세력이 된다. 자경단은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들을 학살한 세력이다.
그러니까 자경단은 동학농민운동에서 농민군들을 학살한 '학살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과 을사늑약 이후 본격화된 의병에 대한 대토벌 작전에 동원된 일본 군인들의 조선 체험을 바탕으로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조선에서 농민군과 의병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일본에 돌아가서는 숨겼다. 군 내부 규율로도 '발설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을 것이다.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은 3.1운동과도 관련이 있다. 관동대지진 때 치안 책임자들이 3.1운동을 탄압했던 사람들이다.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경무총감은 일본으로 돌아와 승진해 각각 내무대신과 경시총감으로 승진했다. 그런 의미에서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은 그 이전의 역사와 전부 연결돼있다고 볼 수 있다.
■관동대지진 때 왜 '한국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졌나.
이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자연발생적으로 유언비어가 발생했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군과 경찰이 조작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고 강덕상 선생의 주장에 의하면 조작설에 힘이 실린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급격하게 근대화 산업화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어마어마한 사회적 모순이 생긴다.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 도시빈민 문제 등이 나타난다. 그 당시 일본에 사회주의 단체가 결성되고 각종 노동 운동이 활발해졌다. 1918년의 쌀소동의 사회적 여파도 한몫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천황제 국가가 붕괴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가장 두려워했다. 많은 국가들은 자기 내부의 모순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외부로 눈을 돌린다.
관동대지진에서도 마치 조선인이 일부러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탄 것처럼 조직적으로 군과 경찰이 유언비어를 만들어냈을 것으로 본다. 고 강덕상 선생이 주장했듯이 조선에 대한 멸시를 스스로 체화한 일반 민중이 유언비어에 편승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본이 '일청전사' 등 역사서들을 왜곡했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왜곡하고 날조하는 내용은 청일전쟁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여러 주제에 대해 나타난다. 일본 군부가 불리한 내용은 왜곡하는 것을 저자가 지적했다. 저자의 사실확인 과정에서 역사서의 왜곡에 대해서도 밝힐 수 있었다. 저자의 집필 과정을 보면 사료를 치밀하게 읽어내는 작업, 다른 자료들과 비교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어떠한가.
강단에 서는 역사가들이 몰랐던 내용에 대해 기자의 시각으로 평가해 인정받았다. 40여년 동안 취재했던 역량을 발휘해 사실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료를 추적하고 진실을 찾아나간 측면을 평가받았다. 2021년 일본의 퓰리처상으로 꼽히는 '평화협동 저널리스트 기금상' 대상을 수상했다.
■한일 역사 인식의 간극은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일본의 경우 역사 교육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은 가해자 의식이 거의 없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미국에 의해 원자폭탄이 투하됐기 때문에 피해자라는 체감이 훨씬 크다. 가해자 의식이 상실되고 피해자 의식이 강조되는 형국이다.
자신들은 미국과 영국 제국주의에 대항해 아시아 해방을 위해서 싸운 거고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이후 이와 같은 역사 수정주의가 대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든 일본이든 사실 그대로를 확인하는 작업이 제일 중요하다. 또 한국인 혹은 일본인이기 이전에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에 대한 공동의 이해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굉장히 쉽게 쓰여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앞으로 와타나베 기자의 관련 연구는 2권이 더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