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디지털 전환 시기, 학교의 교육적 책임 높여야

2023-06-07 11:39:10 게재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의 등장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인간과 유사한 수준으로 창의성과 창조력을 발휘하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등장해 챗GPT가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의 공저자로 등장하기도 하고, 미드저니(Midjourney)로 만든 작품이 세계적인 미술대회와 사진대회에서 인간의 작품과 경쟁해 수상을 했다. 교육 분야에서도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 활용과 관련해 다양한 이슈가 등장하고 있다.

생성형 AI기술이 상용화되면서 교육 분야에서 제기되는 가장 큰 이슈는 '지식교육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가'이다.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답을 알려주는 AI를 두고 굳이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교육에서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과정'(knowing)은 여전히 중요하고, 이에 더해 '지식을 기반으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수행의 과정'(doing)의 중요성이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학교는 '아는 것'과 '하는 것'을 모두 잘 가르쳐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에듀테크 학업성취도 향상과 웰빙 지향

코로나 팬데믹의 경험과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학교는 큰 변화의 중심에 섰다. 기존 학교 시스템의 균형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다. 새로운 시대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시스템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학교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으로 질문에 대응해 새로운 미래교육 방향으로 학교의 교육적 책임을 두가지로 명확하게 재설정해야 한다. 첫째, 모든 학생이 학습에 성공할 수 있는 교육적 지원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인별 맞춤형 학습지도가 필요하다. 둘째, 학생들이 성장기의 상당 부분을 지내고 있는 학교생활에서 모두가 행복함을 느끼도록 보호해야 한다. 학교폭력의 위험이 없고 심리·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에듀테크 박람회 벳쇼(bettshow)에서도 학생들의 데이터를 활용한 에듀테크 시스템의 지향점을 '학업성취도 향상'과 '웰빙'으로 제시한 것도 일맥상통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적 성장을 위해 한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는 맞춤형 학습 지원이다. 역량을 높이는 교육혁신을 위한 기본전제는 기초학력을 보장하는 것이다. 발달 단계에서 중요한 시점을 설정해 학력을 진단하고 역량이 부족한 학생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계에서는 '3R's'라고 표현하는 '읽기(Reading) 쓰기(wRiting), 셈하기(aRithmetic)' 능력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서 완성된다고 본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기초학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이후 대부분의 교과에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해외에서도 이 시기에 기초학력을 진단하고 이를 보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단평가를 실시하고 한명의 아이도 뒤떨어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생애에 걸친 자기주도 학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는 점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학교의 책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1학년 시기에 새로운 학교급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력보장 책임학년, 책임학기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가장 학력격차가 심화된다고 분석되고 있는 방학기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중학교 1학년 자유학기제 시기에도 학력 보정을 위해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미래교육에서 교사가 주체가 되어야

학생들의 학력을 보장하는 학교의 책무를 높이는 한편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자율성과 인센티브를 최대한 보장하는 제도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현재 교사 업무체계에서 개인별 맞춤형 교육의 실현이 어려운 상황이다. 맞춤형 진단과 처방에 AI 기반의 에듀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자율성 부여와 재정지원이 함께 제공돼야 한다.

이미 민간에 상용화된 AI 튜터링 시스템은 지식교육에서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학생의 개별적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은 역시 교사의 몫이다.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 제도를 재구조화하고 행정업무를 경감할 있는 AI 보조교사 시스템도 적극적으로 보급해야 한다.

더 열심히 일하는 교사에게 더 많은 보상이 제공될 수 있도록 행정적 재정적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

학생의 웰빙을 위해서는 수업시간에 본인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관계 형성에 새로운 틀을 제시해야 한다. 디지털 시민성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활동을 포함해 '삶의 과정에서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시민의로서의 역량'을 의미한다. 자존감을 갖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디지털 시민성 함양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생성형 AI시대를 맞이해 학교와 교사의 역할과 책임을 새롭게 정의하고 강조해나갈 필요가 있다. 교육 과정에서 정답을 알려주는 도구와 방법은 변했지만 학생이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도록 지원하는 교사의 역할은 중요성이 더 높아졌다. 디지털 대전환을 맞이해 새로운 미래교육으로 나아가는 길에 교사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교사의 자존감을 높이고 자율성을 부여해 학교의 교육적 책임을 높이는 정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