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 초·재진 범위 해외사례 공방
의사업계 "초진 불허" … 스타트업 "정부가 기준 정하지 않아"
시범사업 후 의료현장 혼란은 복지부 졸속정책 탓
의료정책연, 주요 국가 비대면진료 현황 발표
원산협 "대부분 초진 허용, 의료인이 결정해야"
비대면진료 갈등이 다시 커지고 있다. 1일부터 보건복지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시행된 후 의료현장에 혼란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의사협회나 비대면진료 스타트업 등 비대면진료 이해당사자들 모두가 불만을 토로하는 실정이다.
7일 비대면진료 스타트업으로 구성된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에 따르면 환자의 비대면진료 요청이 의료기관으로부터 거부 또는 취소된 비율은 50% 이상이다. 원산협이 시범사업 이후 자체 조사한 결과다. 원산협은 "거부나 취소율은 시범사업 전의 5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시범사업 혼란은 윤석열정부가 깊은 고민없이 졸속처리한 결과다.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안에 따르면 비대면진료는 △30일 이내에 △동일 병원에서 △동일한 질환으로 △1회 이상 대면진료를 받은 이력이 있어야만 받을 수 있다.
특히 복지부는 환자가 시범사업 대상인지를 의료기관이 직접 확인하도록 권고했다. 의료현장이 '진료 접수→시범사업 대상 여부확인→결과 통보'로 북새통을 겪은 이유다.
예외적으로 초진을 허용한 섬·벽지 환자, 거동이 불편한 사람 등도 병원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어 비대면진료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원산협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은 초안 발표부터 확정까지 2주밖에 걸리지 않은 졸속 추진"이라며 "제도허점이 국민과 의료기관 불편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는 5월 17일 당정협의회에서 시범사업 초안을 발표한 뒤 2주 만에 최종안을 확정했다.
◆정부 졸속정책이 혼란 원인 = 비대면진료 논란 핵심은 '초진허용 여부'다. 시범사업 혼란도 정부가 의료업계 눈치를 보며 비대면진료 기준을 '재진 중심'으로 짜면서 발생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이었던 지난 3년여간 허용했던 비대면진료는 초진과 재진 구분 없이 진료가 가능했다. 일상생활로 복귀한 지금 정부는 안전성 우려를 제기한 의사단체와 협의해 '재진 중심 원칙'에 합의한 것이다.
비대면진료 스타트업들이 "3년간 비대면진료 상당수는 초진이었다"면서 "재진으로만 제한하는 것은 비대면진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최근에는 주요 선진국 사례를 놓고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재진 중심' 기조는 의료정책연구소의 G7 국가 비대면진료 초진현황'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자료 핵심은 '주요 선진국은 비대면진료에 초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다. 의료정책연구소는 대한의사협회 산하 기관이다. "G7 가운데 6개 국가가 비대면진료에 초진을 허용하고 있다"는 원산협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영국 캐나다는 주치의나 단골의사에 한해 초진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미국은 비대면 진료 초진을 2024년 12월 31일 이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해 공표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재진만 비대면진료가 가능하고 프랑스도 재진이 원칙이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원산협 주장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 국가 초·재진 정의 안해 = 원산협은 5일 해외 주요국가의 비대면진료와 의약품 판매 및 배송 제도를 분석한 내용을 공개했다.
조사는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등 G7 중 6개국을 대상으로 해당 국가로펌을 통해 진행했다. 미국은 주별로 세부 정책이 상이해 이번 조사에서는 제외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주요 국가들은 재진 여부, 거주지, 연령 등 세부조항으로 대상을 한정한 사례는 없다. 오히려 의료현장에서 의료인이 전문적 판단을 통해 결정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현재 쟁점으로 논의되는 초진-재진의 경우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초진과 재진을 정의하고 있지 않았다.
원산협은 "의사단체가 첫 진료를 대면으로 권고하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정부가 나서 규제로 강제한 국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나라별로 살펴보면 일본은 주치의 제한이 없고 2020년 4월부터 초진이 가능하다. 단골의사가 아닌 의사도 온라인 초진을 허용하고 있다. 영국도 초진을 허용하고 있으며 주치의 제한이 없어 원격진료가 가능하다. 독일은 2018년 5월부터 초진이 가능하고 별도 규제법이 없다. 프랑스는 초진 원격진료에 사회보장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일본 영국 독일 등 다수 국가에서는 의료전문가단체가 직접 자율규제 방식의 원격진료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의료인의 전문적·자율적 판단을 통해 환자를 위한 결정을 하도록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장지호 원산협 공동회장은 "우리나라 역시 코로나19 기간에 일선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환자이익을 최선으로 한 안전하고 효용성 높은 의료서비스 체계를 운영한 바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서 "보건복지부는 당장의 편익보다 국민에게 도움되는 보건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원산협 조사에서 주요 국가들은 비대면 의약품 관리체계를 갖추고 있다. 일본 캐나다 독일 등 다수 국가에서는 의·약사의 전문적 식견에 따라 비대면 방식으로도 의약품의 처방, 복약지도, 배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절한 관리체계를 마련했다.
일본과 독일 등에서는 안전성이 입증된 처방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제도를 도입해 환자들이 안전하게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