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표 한계에 신기술 확산 시간차

2023-07-28 10:53:40 게재

BBC "생산성 경쟁에선 기술을 잘 활용하는 국가나 기업이 최종 승리할 것"

"'기술혁명→생산성 제고' 왜 더딜까" 에서 이어짐

영국은 가장 큰폭의 하락을 겪었다. 1995~2005년 연 평균 2.1% 노동생산성이 늘었지만 2005~2019년엔 0.5%에 그쳤다.

BBC는 "우리는 엄청난 혁신과 기술발전의 시기를 지속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동시에 생산성은 느려졌다. 이 명백한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며 2가지 가설을 살폈다.

첫번째는 기술의 영향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기술혁명이 다소 느리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까지는 수십년이 걸릴 수 있다.

엄청난 혁신인데 생산성은 둔화

영국 케임브리지대 베넷 공공정책 교수이자 생산성 측정방법 전문가로 인정받는 다이앤 코일은 "현재 디지털을 사용하지 않는 분야는 없지만, 통계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기술의 영향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자체적으로 컴퓨터서버와 IT부서에 투자하던 기업들이 이제 이 두가지 모두 해외 클라우드 기반 제공업체에 아웃소싱할 수 있다. 아웃소싱을 한 기업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최고의 소프트웨어를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규모를 측정하는 방법의 관점에서 볼 때 이처럼 효율적인 조치는 회사를 더 크게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작아 보이게 만든다. 또 이전에는 경제성장의 일부로 측정되던 IT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더 이상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코일 교수는 19세기 산업혁명의 예를 들어 경제통계에서 생산성을 놓치는 경우를 설명한다. 그는 "120페이지 분량의 1885년 영국 통계연감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농업에 관한 내용이고 광산과 철도, 면화공장에 관한 내용은 12페이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시기는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초기 자본주의 때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 시기의 자본주의를 '악마의 맷돌'(dark satanic mills)에 비유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시기 수집된 데이터의 90%는 경제에서 중요성이 점점 하락하는 오래된 부문에 관한 것이었고, 현재 우리가 세계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제변화 중 하나로 꼽는 분야와 관련된 분량은 10%에 불과했다. 코일 교수는 "이처럼 우리가 경제를 보는 방식은 현재 시점이 아니다. 과거에 경제가 어땠는지를 통해 현재의 경제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주장은 현재 기술혁명이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느리게 진행되고 있을 뿐이라는 내용이다.

영국 서섹스대 경영대학원의 경제사 명예교수인 닉 크래프트는 "우리는 경제성과와 관련한 거대한 상전벽해가 마치 하룻밤 새 일어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십년이 걸렸다. 현재 벌어지는 상황도 비슷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1769년에 특허를 받았다"며 "하지만 최초의 상업용 철도인 리버풀-맨체스터 노선은 1830년에야 개통됐고, 핵심 철도 네트워크는 1850년에야 구축됐다. 특허가 나온 지 80년이 지난 후였다"고 말했다.

전기 보급에서도 같은 패턴을 볼 수 있다. 1879년 에디슨의 전구가 처음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선보인 이래, 각 나라들이 전기를 도입하고 제조업에서 증기동력을 대체하기까지는 최소 40년의 시간이 걸렸다. BBC는 "사실 지금 우리는 세계가 증기동력의 정점과 전기의 본격적인 발전 사이에 있을 때와 비슷한 공백기에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AI 확산과 생산성 향상

지난달 29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도 현재 가장 핫한 신기술인 생성형AI를 대상으로 비슷한 분석을 시도했다. 결론은 BBC와 마찬가지였다.

생성형AI 옹호론자들은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터넷 발명 이후 이처럼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신기술은 없었다는 것.

이 기술은 특히 소비자 친화적이다. 가장 유명한 AI 챗봇인 챗GPT는 대중에 공개된 지 며칠 만에 수백만명 사용자를 확보했다. 의사의 진단 정확도를 높이는 것부터 프로그래머가 소프트웨어 코드를 더 효율적으로 작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까지 모든 유형의 기업이 이 혁신을 통해 모든 유형의 업무를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기업은 이미 AI를 업무에 도입했다. 기술기업들은 이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수천개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일부 오프라인 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선 인공지능이 발견하고 설계한 약물로 인체실험을 진행하는 중이다. UBS 분석가들은 도미노피자가 AI를 사용해 '주문-배달 시간 예측의 정확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투자자들은 신기술 얼리어답터들에게 보상을 제공하고 있다. 연초 이후 S&P 500 지수에서 인공지능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기업의 주가 중앙값은 11% 상승했다. 반면 굼뜨게 움직이는 기업들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잠재력은 엄청나다. 하지만 AI가 경제전반에 걸쳐 진정으로 확산되려면 가장 앞서가는 기업들의 범주를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가 인터넷이다. 1990년대 초 일부 기업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미국 기업의 2/3가 웹사이트를 보유하게 됐다.

이코노미스트 분석에 따르면 S&P500대 기업 중 약 70개 기업은 여전히 AI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대기업 이하로 내려가면 그 추세는 더욱 초라하다. 최근 미국과 캐나다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1/3이 향후 1년간 생성형AI 도구를 사용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부 분석에 따르면 챗GPT와 경쟁사 제품 사용률이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사용해 본 후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기업들은 수년 또는 수십년이 지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뒤섞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가장 강력한 신기술이라도 확산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오래된 시스템을 교체하는 건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하며 고통스러울 수 있다.

게다가 의료와 교육, 건설 등 정부가 운영하거나 규제가 심한 많은 산업의 경우 노동자들은 신기술 도입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신기술 도입에 저항하는 경우가 많다.

이코노미스트는 "시간이 지나면 인공지능은 사람들의 삶과 업무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광범위한 확산과 그에 따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술 적응과 활용이 관건

하지만 생산성 경쟁은 또 다른 측면의 이야기다. BBC는 "신기술을 가장 빠르게 잘 활용할 수 있는 국가와 기업이 생산성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며 "이는 증기와 전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얼마나 잘 사용하고 적응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즉 얼마나 숙련돼 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케임브리지대 코일 교수는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그는 "어떤 회사든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도로 숙련된 인력이 있고,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정교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업무 프로세스를 변경해 사람들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생산성이 급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같은 부문에서도그렇게 할 수 없는 회사들이 있다"고 말했다.

BBC는 "겉으로 보기에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기술이 해결책도 아니다. 높은 생산성 성장은 기술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을 파악하는 기업에게만 주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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