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정년연장 | 일본 정년제도 변화와 시사점

일본, 30여년에 걸쳐 점진·단계적으로 정년연장

2023-08-04 11:32:13 게재

노력 의무화→법정 의무화로, 사회적 합의 수준 높여 … 계속고용시 '근로조건 악화, 근로의욕 저하'가 문제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인구구조 변화와 함께 급격한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에 직면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025년 20.6%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35년에는 30.1%, 2050년에는 4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생산가능인구는 2020년 기준 전체인구의 72.1%에서 2050년에는 51.1%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빠른 초고령사회 진입 속도, 현행 60세 정년제와 국민연금 수급연령의 괴리 문제 등을 고려해볼 때 관련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돌입한 일본의 경우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방식의 정년연장을 통해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전진호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난달 31일 '일본 정년제도의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주요 선진국 중 노동관계 법령에 민간부문 종사자에 대한 별도의 정년규정을 두고 있는 국가가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일본의 정년연장 방식은 향후 우리나라의 입법과정에서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늘어난 60대 취업자 수 | 고령화 추세와 맞물리며 60대 취업자 수가 20대 취업자 수를 넘어섰다. 60대 인구 10명 중 6명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시민이 지난 6월 서울 마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게시된 일자리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단기적으로 생산연령인구 감소에 따른 산업현장의 인력난 심화가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는 노동인구 급감으로 국가의 잠재성장률 하락, 노년층 부양비 증가로 인한 재정 건전성 저하 등이 우려된다.

정부는 2021년 9월 '고령자 고용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주된 일자리에서의 계속고용 확대 △노동이동 촉진 및 재취업지원 활성화 △기술창업 지원 확대 △직무역량 및 고용안전망 강화 △고령자 고용인프라 확충 등이다.

특히 정부는 법적 정년연장 방식이 아니라 사업주에게 △정년연장 △촉탁직 등을 통한 계속고용(재고용) △정년폐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이는 일본의 정년연장 방식과 유사하다.

지난 1월 정부는 올해 말까지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 연계한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김문수) 산하에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를 발족하고 본격 논의에 들어갔다.


◆일본, 1994년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 = 일본은 '고연령자 등의 고용안정 등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해 1994년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를 한 뒤 최근 70세까지 '취업기회 확보 노력 의무화'에 이르렀다. 먼저 30여년에 걸쳐 '노력 규정'을 의무화한 이후 '법정 의무화'로 나아가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방식의 정년연장을 통해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일본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1970년대부터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1994년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는 최초 노동계가 요구를 시작한 이후 제도화에 이르기까지 40여년이 걸렸다.

전진호 입법조사관은 "일본정부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민간이 자율적으로 정년연장을 추진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며 "또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정년연장 장려금, 고령자 고용장려금, 계속고용 장려금 등의 각종 보조금 제도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60세 정년이 법적으로 의무화되기 이전에 대부분의 일본 기업에서 이미 60세 정년제가 도입됐다.

전 입법조사관은 "정년연장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시책들이 노사의 이해 속에 안착될 수 있도록 노사가 공동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제도화함으로써 일본의 60세 정년 도입에 따른 노사 간의 갈등은 크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2012년, 65세까지 고용의무화 = 60세 정년제가 실시된 후 15년이 지난 2012년, 일본에서는 사업주가 희망하는 근로자 전원을 65세까지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은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희망하는 고령근로자 전원을 65세까지 고용할 의무를 가진다.

사업주가 65세까지의 고용확보 조치로 △정년연장 △계속고용제도 도입 △정년 폐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계속고용제도의 의무를 지는 기업의 범위를 '개별기업'에서 '기업그룹'으로 확대했다. 예를 들어 60세 정년에 이른 A기업의 근로자가 B협력업체로 이직해 고용되더라도 계속고용된 것으로 인정한다.

이어 근무태도가 현저히 불량하거나 정상 직무수행이 어려운 근로자에 대해서는 계속고용제도의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업의 부담을 완화했다.

후생노동성 '고연령자 고용상황'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65세까지 고용의무화 조치를 실시한 기업은 전체의 99.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70.6%의 기업은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했다. 정년연장 25.5%, 정년제 폐지 3.9%로 집계됐다.

계속고용제도는 일반적으로 근로자를 우선 퇴직시킨 후 매년 계약직으로 재고용하는 형태가 많다. 이 같은 '계약직 재고용'은 평균 30~50% 수준의 임금감소로 이어졌다.

전 입법조사관은 "법은 계속고용 의무를 규정하면서도 구체적인 고용형태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노사간 자율로 결정하도록 했다"면서 "신속하고 안정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 근로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낮아질 수 있는 측면을 사실상 허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1년, 70세까지 '취업기회 확보' 의무화 시행 = 2020년 일본은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해 65세까지 고용의무화에 더해 65세 이상 고령자가 희망하는 경우 70세까지 '취업기회 확보'를 사업주의 노력 의무로 규정했다.

기존 65세까지 고용의무화 3가지 조치 외에 △다른 기업 재취업 지원 △창업지원 △프리랜서 계약 △사회공헌활동 지원 등을 추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 추가된 '취업기회 확보' 조치는 사업주가 계획서를 작성해 근로자 대표의 동의와 그 계획을 사업장에 게시하도록 했다.

2021년 4월부터 시행된 70세까지 취업기회 확보는 사업주의 '노력'의무이므로 노사협의를 통해 대상자를 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상자 선정 기준은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업주가 자의적으로 일부 고령자를 배제하거나 다른 노동관계 법령에 위배되는 기준을 설정하는 것을 금지했다.

후생노동성의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70세까지 취업기회 확보 노력 의무화 조치를 실시한 기업은 전체의 27.9%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정년제 폐지 3.9% △정년연장 2.1% △계속고용 제도 도입 21.8%였고 2021년부터 새롭게 도입된 취업기회 확보 조치는 0.1%였다.

전 입법조사관은 "70세까지 취업기회 확보 '노력 의무화'는 앞선 일본의 정년연장과 같이 노사의 준비 상황과 실시 경과에 따라 완전 '의무화' 단계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10년새 일본 고령자취업률 크게 상승 = 최근 일본의 고령자 취업률을 살펴보면 60~64세 고령층의 경우 2012년 57.7%에서 2022년 73.0%로, 65~69세 고령층의 경우에도 같은 기간 37.1%에서 50.8%로 상승했다. 각 단계별 정년연장 조치가 외형적인 측면에서 성과를 거둔 것이다.

전 입법조사관은 "연공성 임금체계 및 기업별 노사관계 등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부분이 많은 일본의 정책 성과는 본격적으로 정년연장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임금체계 및 인사제도의 개편 등 정년연장과 관련해 첨예한 갈등과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을 노사간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 일본의 노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의 고령자 고용연장 정책에는 일부 한계도 있다. '계약직 재고용' 형태가 주를 이루는 기업의 계속고용제도 선호는 고령자의 근로조건 악화와 함께 근로의욕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도입된 '취업기회 확보'조치의 경우에도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고령근로자를 개인사업주화 또는 프리랜서화 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중소기업 80% 60세 정년제 미도입 = 우리나라는 2013년 60세 정년제를 의무화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을 개정하고 2016~2017년에 걸쳐서 시행됐다. 하지만 60세 정년제가 완전히 안착됐다고 보기 어렵다.

통계청에 2022년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60세 정년제 도입 이후에도 실제 퇴직연령은 49.3세로 법적 정년과 10년 이상 차이가 있다. 게다가 고령근로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실제 은퇴하는 연령은 72.3세다.

또한 통계청 2021년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60세 정년제를 운영하지 않는 중소사업장이 80% 가까이 된다. 중소기업에서 정년제를 운영하는 비중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전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의 정년연장을 위한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기업의 경영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고령근로자의 빈곤이나 근로의욕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다양한 기업 특성과 근로자의 취업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 마련을 통해 정년연장의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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