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장벽 사라진다
학과 벽 없앤 '무학과 선발' 늘어난다
교육부 시행령 개정, 융합학과 학과통합 선발 지원 … 영남대 계명대 '무전공 선발' 논의
최근 고교 교육과정의 화두는 진로에 맞는 과목 선택이다. 대학들도 계열에 따라 권장과목을 발표하며 선택과목 가이드를 제공했다. 어떤 과목을 왜 선택했고 어떻게 진로 역량을 확장해나갔는지는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중요한 평가요소다.
그런데 최근 대학에서는 계열 선발, 광역 선발, 무학과 선발에 대한 고민이 한창이다. 교육부도 대학지원사업에서 융합학과, 자유전공 운영을 유도하거나 학과 통합 선발 등의 방식으로 학과 전공 간 장벽을 허물라고 요구하고 있다. 포항공대를 비롯해 과학 특성화대학은 이미 단일학과로 선발하고 있고 한동대는 개교 때부터 무학과로 선발하며, 2020학년부터 덕성여대도 광역 단위로 모집하고 있다.
2024학년부터 일부 인원이라도 계열선발이나 광역선발을 계획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서울대도 작년 8월에 발표한 중장기발전계획보고서에 2040년까지 모든 신입생을 별도의 소속 학과 없이 선발하겠다는 안을 담았다.
광역선발의 의미는 무엇인지 짚어보고 현재 대학들의 학과 장벽 허물기는 어느 단계까지 왔는지, 종합전형 서류평가에서 진로 역량은 어떻게 평가되는지 살펴봤다.
최근 교육부는 '대학에는 학과 또는 학부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시행령 제9조 2항을 개정했다. 대학이 융합학과(전공) 신설이나 자유전공 운영, 학과통합 선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 조직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그동안 전통적인 학문 분류체계에 기반을 둔 학과 학부 중심에서 서로 계열이 다른 전공들이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도록 규정을 없애겠다는 의미다.
따라서 대학은 학과 학부의 칸막이 없이 자유롭게 통합선발할 수 있으며, 무학과 융합학과 등을 자율적으로 신설하거나 운영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대학지원사업에도 학과 간 벽을 허물고 학사구조를 개편해 교육과정을 운영하는지를 중요하게 본다(표).
특히 교육부는 지역대학을 대상으로 한 '글로컬대학 30' 사업 선정조건으로 6가지 해외대학 혁신사례를 제시했다. 6개 사례 가운데 3개가 무학과 단일계열로 학생을 선발해 적성에 맞게 전공을 선택하고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팀 프로젝트 형태의 교육을 받는 미국 올린공과대 등 학과와 전공의 벽을 허문 통합선발에 관한 것이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학생 선발과 재정 위기에 처한 지역대학으로서는 학과 단위의 선발에서 통합선발로 변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경상지역 사립대인 영남대와 계명대는 전공간 벽 허물기를 통해 무전공 선발을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임진택 경희대 책임입학사정관은 "교육부의 학과 전공 통폐합 요구는 사회 변화, 학령인구 감소, 계열구분 없는 통합 교육과정 상황에서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경희대도 일부 인원을 통합·광역 단위로 선발하고 있는데 더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한다.
◆일부 대학 이미 계열·광역 선발 = 지난 4월 이기정 한양대 총장은 "학생 맞춤형 교육으로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해 특정 전공에 갇히지 않고 여러 분야를 탐색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학년 때는 다양한 교양과목을 듣고 3학년부터는 여러 소단위 전공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주겠다는 것이다. 한양대는 학교 내 저항을 고려해 일단 인원의 50% 정도만 전공 없이 선발할 계획이다.
서강대와 동국대의 경우 외부에 구체적인 상황을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대학 내에서 학과 통합선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2022년 8월에 서울대가 발간한 '중장기발전계획보고서'에도 2040년까지 모든 신입생을 별도의 소속학과 없이 선발하겠다는 안이 담겨있다.
현재 모집정원의 일부를 개별 학과가 아닌 계열, 광역선발 모집단위로 선발하는 대학이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대도 일부 계열에서는 광역 모집단위로 선발한다. 인문대학은 인문계열 모집단위로 수시와 정시에서 선발 중이며 공과대학도 2023학년부터 정시에서 광역 단위로 선발한다. 공과대학의 광역 모집단위 선발인원은 기계공학부 전기·정보공학부 컴퓨터공학부 화학생물공학부 산업공학과 항공우주공학과의 일부 인원을 통합 선발한 인원이다.
광역 모집단위로 입학한 신입생들은 1학기 진로탐색과정을 거쳐 학과(부) 선택권을 보장받는다. 2024학년에는 첨단융합학부를 신설해 수시모집에서 선발한다. 3학기 이수 후 학부 내 차세대지능형반도체전공 지속가능기술전공 혁신신약전공 디지털헬스케어전공 융합데이터과학전공 등 5개 전공 중 하나를 주전공으로 선택해야 한다.
성균관대는 오랜 기간 학부 모집단위 선발을 유지했다. 학과 단위 선발과 별도로 인문과학·사회과학·자연과학·공학 계열로 선발한다. 선발 전형도 학생부종합전형 학생부교과전형 수능위주전형 등 다양하다. 인문과학계열은 수시 105명·정시 204명을 선발한다. 사회과학계열은 수시 120명·정시 229명을, 자연과학계열은 수시 106명·정시 163명, 공학계열은 수시 288명·정시 300명을 모집한다.
◆광역 선발 확대, 무엇이 달라질까? = 계열별 통합선발, 나아가 더 많은 모집단위를 통합해 광역 단위로 선발하는 대학이 확대되면서 현재 고교 교육과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은 상당수 대학이 서류평가를 하는 종합전형보다 정량적인 평가가 가능한 교과전형이나 수능 위주 전형에서 광역 단위로 선발하기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소장은 "전공 적합성이 강조되던 시기라면 크게 달라지겠지만 현재는 진로 역량이라는 평가요소를 반영한다"며 "진로 역량은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 노력 등을 폭넓게 평가하는 것이어서 모집단위가 바뀐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김지윤 덕성여대 입학사정관도 "고교 교육과정의 핵심 역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평가항목을 변경했다"며 "진로를 정한 후 학교활동을 진로에 끼워맞추지 않아도 학교활동 속에서 학생들의 진로탐색을 읽어나가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한동대는 1995년 개교 때부터 무학과로 선발하고 있다. 소성호 한동대 책임입학사정관은 "무학과 선발이라고 해서 서류평가에서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배우고 싶은 과목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등 충실하게 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특정 학과 쏠림이나 대학 내 반발 해결 과제 = 이 입시평가소장은 "광역 모집단위로 선발할 경우 대입에서 전공보다는 대학 위주로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사회가 특정 대학이나 선호 전공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쏠림현상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현재 대학은 제2전공이나 복수전공을 의무적으로 선택하는 분위기라 특정 전공 쏠림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김지윤 입학사정관은 "제1전공에서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지 못했을 경우 우선 유사전공을 택하고 제2전공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대학이 광역 단위의 선발을 확대한다고 해도 한동안은 계열 단위의 선발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수도 있다. 소 책임입학사정관은 "한동대는 개교 때부터 무학과 선발로 교수를 채용했기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기존 학과 단위로 운영하는 대학들은 여러 갈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에게 소속감을 어떻게 줄 것이냐하는 문제도 해결할 과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