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김경범 교수의 공공장(Public Factory)

9월 수시모집을 폐지해야 하는 까닭

2023-08-09 11:16:47 게재
김경범 서울대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교수

교육부가 2028학년도 대입제도 발표를 앞두고 있다. 교육부는 대입 미세조정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대입제도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예정된 발표를 연기하고 지금이라도 새로운 안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부가 정말로 학생이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길 원한다면, 학교 교육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대학입시를 만들겠다면 무엇보다 9월에 시작하는 수시모집을 폐지해야 한다. 9월 수시모집을 폐지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직 시간이 있으니 교육부는 2028학년도 대학입시 논의를 여기서 새롭게 시작하길 바란다.

학교 교육과정의 파행·교실 황폐화

대입제도 논의는 내신과 수능 두 축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2025학년도부터 적용되는 내신평가의 변화(1학년 공통과목 9등급 상대평가 + 2·3학년 선택과목 성취도평가)는 학교 교육과 대학입시에 매우 큰 파장을 일으킨다. 학교 교육과정은 파행하고 교실은 지금보다 더 황폐해진다.

상대평가가 적용되는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나면 내신으로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하는 학생이 사실상 구분된다. 1학년 내신 1등급 대의 최상위권은 대학입시를 위해 학교 안팎에서 제공되는 선택과목을 풍성하게 듣고 수능 최저기준을 맞추는 선택을 하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1등급이 아닌 학생은 2학년 이후에는 성취평가제가 적용되어 1학년 내신을 회복할 방법이 없고, 만약 그 학생이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면 수능에 매진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학교를 자퇴할 수도 있고, 학교에 다니더라도 교육과정과 무관하게 수능 응시과목 문제풀이만 반복해야 한다. 그 학생들에게는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의 핵심이 되는 진로선택 과목과 융합선택 과목을 적극적으로 이수할 필요가 없어진다. 수시모집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반면 미래(고3 11월)에 치르는 수능은 높은 점수만 얻을 수 있다면 이로 인한 기대 이익이 분명하고 확실하다.

그래서 학생들은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기보다는 수능 응시과목만 공부하게 된다. 현재도 고등학교 3학년 교육과정이 파행하는데 2025학년도 이후에는 2학년 수업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다. 1학년 내신 최상위권이 아니라면 누가 심화과목이나 융합과목을, 그리고 공동교육과정과 온라인교육과정과 학교 밖 교육과정을 듣겠는가.

새로운 내신의 변별력과 타당성이 낮아져서 수시모집 교과전형은 상위권 대학이 시행하지 않거나 높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설정해 결과적으로 교과가 아니라 수능으로 선발하는 전형이 된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블라인드 평가 및 자소서 폐지와 맞물려 교육과정이 특화되어 있거나 선택 폭이 다양한 특목고와 자사고가 유리해지고 합격과 불합격은 학생부가 아니라 대학별 고사인 면접이 결정한다.

논술전형은 수능 점수가 잘 나오는 학생에게 유리하다. 이렇게 수시모집은 학교 교육 중심의 대입전형을 지향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확대되었지만 취지와 달리 수능과 대학별 고사가 중심이 되는 전형으로 변질한다. 그렇게 되면 수시모집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대학 입장에서는 학생을 선점하는 기능이 있지만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다양한 능력의 학생을 선발하는 기능은 사라진다.

불가능한 미래학교 교육개혁

학교에서 선택형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수능 한줄세우기를 멈추고 수능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이 분리된 구조에서는 정시모집에서 모든 학생을 줄세울 수 있는 수능의 변별력이 필요하므로 변별력을 줄이기 어렵다. 따라서 학생부(교과)와 수능이 각각 독립된 변별력을 갖지 말고 이 둘을 통합해 선발해야 수능의 과도한 변별력을 줄일 수 있다. 이미 내신과 학생부의 변별력이 줄어들었으므로 이제 수능의 변별력도 적정 수준으로 줄이지 못하면 학생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처럼 수능 문제 풀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9월 수시모집 폐지다. 그래야 수능 변별력을 줄이기 위한 논의가 가능해진다. 현재처럼 수시와 정시가 구분된 대입구조에서는 학교 교육개혁이 불가능하고 수능을 개편할 명분도 없다. 수능과 충돌하는 고교학점제도 작동하지 않는다. 수능 문항을 교육과정에서 출제해도 학생이 반복적인 문제풀이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학교수업에서 문제풀이를 해주지 않으면 학생은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학교 교육과정과 대학입시가 따로 놀아서 학생과 학부모들도 이중의 대입 부담을 져야 하고 사교육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대학입시는 계속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입시를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마무리된 이후에 시작해야 학교 교육 중심의 대학입시를 논의할 수 있고, 그래야 미래를 위한 학교 교육개혁이 실효를 거둘 수 있다. 현재의 대입체제에서 수업 혁신, 새로운 교과목 제공, 교과 선택의 다양성은 뜬구름일 뿐이다.

11월 말 혹은 12월 초에 시작하는 새로운 통합 정시모집이 미래학교를 위한 출발점이다. 일부 대학은 전형 기간의 부족이나 학생 모집 기회의 축소를 문제로 삼을 수 있으나, 이는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수시모집 폐지와 새로운 정시모집 설계는 우리 사회의 대학입시 변천사에서 처음 시도되는 학교교육 중심의 대학입시라는 패러다임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