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혼인 파탄 후에도 외도로 인한 불법행위가 성립할까

2023-08-10 11:12:10 게재
박재현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부부는 상대방에 대해 동거·부양·협조의무에 더해 성적 성실의무를 부담한다. 이를 바탕으로 부부는 공동생활을 유지·존속시켜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부부 일방이 부정행위를 한 경우 민법 제840조에 따라 재판상 이혼사유가 되고, 부부 일방은 그로 인해 배우자가 입게 된 정신적 고통에 대해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그렇다면 이미 부부공동생활이 파탄돼 혼인공동체의 회복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제3자가 부부 일방과 부정행위를 한 경우에도 이를 불법행위로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4. 11. 20. 선고, 2011므2997)의 다수의견은 "비록 부부가 아직 이혼하지 아니하였지만 이처럼 실질적으로 부부공동생활이 파탄되어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다면,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성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이를 두고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하거나 유지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고 또한 그로 인하여 배우자의 부부공동생활에 관한 권리가 침해되는 손해가 생긴다고 할 수도 없으므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시했다.

한편, 별개의견은 "혼인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부공동생활의 실체가 소멸되고 이를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서 부부 일방이 배우자로부터 이혼의사를 전달받았거나, 그의 재판상 이혼청구가 민법 제840조 제6호에 따라 이혼이 허용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실제 재판상 이혼을 청구하여 혼인관계의 해소를 앞두고 있는 경우에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다수의견은 법률혼주의 훼손 우려

그러나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의문이 있다. 첫째, 이혼 절차에 의해 혼인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부부는 법적인 권리의무를 갖는 것인데 다수의견에 따를 경우 법률혼주의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혼인관계가 파탄됐다는 사정만으로 법률상 부부가 갖는 권리의무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처럼 판시해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아니한 채 법적권리의 소멸을 긍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제시한 근거마저도 유동적 개념에 불과하다.

둘째, 다수의견은 '실질적으로 부부공동생활이 파탄돼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인 경우'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개념은 유동적·불확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혼인관계 등 가정생활은 복잡다단한 성질을 갖고 있어 제3자가 보았을 때는 이미 파탄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곧 관계를 회복해 평생을 함께 사는 경우도 존재한다.

또한 특히 우리 사회에서 혼인관계는 그 당사자인 부부 외에도 자녀 등에 의해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즉, 부부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자녀문제 부양문제 등으로 인해 이혼은 하지 않고 사실상의 경제적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혼인관계의 파탄 여부를 기준으로 부정행위로 인해 다른 배우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가정생활의 복잡다단한 성격 고려해야

그러므로 부정행위로 인해 손해가 생길 수 없다고 보기 위해서는 단순히 혼인관계가 파탄된 상황만으로는 부족하고 별개의견과 같이 '이혼의사를 표시한 경우' 또는 '이혼청구가 있는 경우'가 요구된다고 보는 것이 법리적 측면 내지 현실적 측면 모두에서 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