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안전의 문화화, 안전선진국으로 가는 필수과정

2023-08-25 11:20:06 게재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

안전문화라는 표현은 산업안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용어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이젠 보편적이다. 그러나 낯설지도 않은, 보편적인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문화의 형성은 아직 미개척지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다각도로 문화를 바라보는 통찰은 실로 대단하다. 상당 기간 안전문화를 업무로 대하면서도 여전히 안전문화는 쉽지 않은 영역이다. 누가 물으면 겨우 안전의 문화화라는 관점에서 경험적 의견 정도를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국내 상당수 대기업에서 안전을 기업문화로 조성하기 위해 DNV(다국적 품질·안전 컨설팅 기업) 등에서 개발된 안전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안전문화를 조성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전제가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문화적 기반이라는 면과 중간 전달자들의 안전과 문화에 관한 이해부족이 기대한 성과를 거두기보다 오히려 안전문화의 중요성을 훼손시킨 것 같다. 그러나 안전의 문화화는 안전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필수다.

서구 사회의 안전문화 단면

2016년 독일 출장 중에 건설현장을 방문했다. 공사 중인 건물 외부에 설치된 가설 통로에 몇 가지 결함들이 보여서 당시 나를 안내하던 현장 책임자에게 그 결함들을 얘기했다. 그는 내게 '저런 상태의 통로에 근로자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는가'라며 되려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0년 독일 아우디 자동차공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조립 중인 자동차를 이송하는 컨베이어 벨트를 가로질러 건너가도록 되어있는 통로가 있었다. 그 통로 상부에는 천정에서 머리 위 높이까지 주의를 유도하는 붉은색 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또 컨베이어 벨트 속도를 늦춰 주기 위한 인체 감지센서가 통로 전후에 각각 2개씩 설치돼 있었다. 센서의 감지 오류 확률 때문에 이중으로 설치했다고 했다. 컨베이어 벨트는 작업장 바닥과 같은 높이였다.

작업자들이 벨트에 오르내리며 조립작업하기에 무리없어 보이는 느린 속도로 운전되고 있어서 '이런 조치까지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안내하는 사람에게 이와 유사한 모든 상황에 이처럼 안전조치를 하는가를 물었더니 그 사람은 '무슨 안전조치?'라고 반문했다.

이 거다. 우리의 눈엔 안전을 위한 조치이나 그들에게는 마치 밥상에 수저 올리듯 안전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습관화된 일상적 조치인 것이다. 이것이 문화화된 안전의 한 단면이다.

이렇듯 서구 사회는 우리보다 150여년 앞선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산업재해를 대응하는 과정에 형성된 생활화된 안전의식이 사회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선진화 과정에 여러 나라의 선진 신기술들도 도입했다. 건설업 경우에도 도카폼(DOKA FORM), 슬라이딩폼(SLIDING FORM) 등 여러 신공법이 도입됐는데, 초기에 꽤 많은 사고들이 발생했다.

사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공법 자체의 문제보다 안전확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 누락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수받는 우리측 기술자들의 관심은 생산성과 품질에 있고, 전수하는 그들은 그런 조치가 누락될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분명 문화의 차이다.

안전확보가 생산의 결과이어야

2019년 7월 중국 출장 때 생산현장마다 '안전제일'과 같은 구호가 적힌 많은 현수막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중국 상해를 방문했을 때다. 퇴근 무렵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에 파란 신호가 들어와 있음에도 자동차들은 아랑곳없이 지나가고 보행자들이 차들을 피해 사이사이로 도로를 건넜다. 그 광경을 보며 현장의 많은 현수막과 결의대회 구호는 '문화화되지 않은 안전의 고백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성장 중심의 산업화 과정에서 뒤쳐진 안전수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의대회와 같은 전시용 행사 실적을 성과로 착각해선 안된다. 현장의 벽에 붙여놓은 안전수칙을 떼어낼 수 있는 실질적 상황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 중 한가지는 안전확보가 생산의 결과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은 생산과 별개인 현재의 안전활동을 생산활동에 화학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

정부 지도감독은 교육의 경우, 교육일지와 같은 형식이 아닌 작업자가 작업 방법과 재료, 설비의 속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와 같은 내용과 성과를 확인해야 한다. 이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기업과 정부 정책 입안자들의 많은 고민과 학습이 필요할 것 같다. 안전의 문화화는 필수이나 어려운 과제다.